☆˚ 맑음시

여름밤 꽃밭 사랑방

전숙 2005. 8. 27. 20:10

동화시

여름밤 꽃밭 사랑방



         詩/전 숙 (맑음)


 

여름날 저녁 작은 꽃밭에 살며시 귀 기울여보셔요.

밤늦도록 도란도란 정다운 이야기 소리 들려요.


봉숭아는 뽐내듯이

요즘 나는 너무 바빠.

꽃을 피우자마자, 아가씨들 손톱으로 시집보내느라 정신없어.

분꽃은 부러워서

언니는 좋겠수. 나도 옛날에는 동네 아낙네들

내 씨앗에서 분가루 받는다며 줄 섰었는데

지금은 명품만 찾는다나봐.

샐비어도 샐쭉해서

나도 그래, 내 꽃 꽁지 단물이  꼬마들에게 인기 짱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채송화 한숨 쉬며

언니들은 그래도 나처럼 할머니 지팡이에 뭉개지지는 않잖우.

장미가 거만하게

꽃이라면 나 정도는 돼야지. 나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꽃의 여왕이잖아.

해바라기 하품하며

장미야, 화무십일홍이란다. 잘난 체 그만 하고 잠이나 자자.

나는 해님 오시면 종일 따라다니며 수발 들어야해.

나팔꽃 어리광부리며

언니 쬐끔만 더~, 나는 해님이 너무 뜨거워서

꽃잎 도로롱 말고 낮잠 실컷 잤더니 날밤 샐 것 같아.

별님 놀러 오시면 하늘나라 이야기 듣고 자자. 응?

그때 달님이 구름 밖으로 얼굴 내미니

달빛다리 건너서 별님들 여름꽃밭 사랑방에 마을 오시네요.

나팔꽃 반기며 콧소리로

별님, 언능 하늘나라 이야기해주세용. 별님 기다리느라 눈 빠지는 줄 알았어용.

별님 흠흠 헛기침 한 번하고

오는 칠월칠석에 견우왕자와 직녀공주 상봉시키려고

까치들이 머리 다듬고 있어. 나도 도와주고 오느라 늦었단다.

연못의 비단 잉어들 졸린 목소리로

흥, 이삿짐 싸야겠네. 칠석 날 방생한답시고 사람들이 우리 모시러 오겠구먼.

개울 건너 산비탈에서 배롱나무 아저씨 호통 치며

얘들아, 잠 좀 자자. 낮 동안 내내 새 꽃 피워내느라 피곤해 죽겠다.

달맞이꽃 사랑스럽게

먼저들 주무셔요. 저는 우리 달님 별님 배웅해드리고 잘게요.

접시꽃은 기지개켜며

해님이 곧 오실 것 같아요.

새벽이슬 배달 오면 목축이고 예쁘게 단장해야겠어요.

여름밤 꽃밭, 끝없는 수다에 시원한 산들바람 아주머니는 살포시 미소 지어요.

여름밤이 소록소록 깊어가요.

                            

별님도 하늘 집에 돌아가 꾸벅꾸벅 졸면                                   

뒤꼍에 인자하게 서계시던 무궁화 할머니

자장가에 온 세상은 꿈나라여요. 


                                             


- 흐르는 곡 : 여름날의 추억(Le Temps d"un ete) 피아노 연주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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