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시

효천 역에서

전숙 2005. 8. 27. 17:44

효천역에서

                               맑음 전숙

 

 

효천역에서 기차를 기다립니다

기차는 제 시간에 올 것입니다

하여도 떠나버린 사랑은 기다릴 곳이 없습니다

늦가을 비가 저리도록 스산합니다

쪽 떨어진 낙엽들 설핏 젖어듭니다


효천에서 나주 지나 목포까지

사랑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역마다

제 주인의 몸에서 잊혀진 낙엽이 흩날립니다


잊혀진 낙엽을 되살려가며

그리움 한 장, 회한悔恨 한 장

미움 한 장, 사랑 한 장

추억의 지우개로 지워갑니다

다 지우면

영원이라 믿고 꽃봉오리 키웠던

우리 사랑 가슴에 봉인封人하렵니다


그대 생각에 열에 떠서 날 밤 새던 사랑

예쁘게 보이려고 가슴 뛰며 화장하던 사랑

만날 날 기다리며 손꼽았던 사랑

보름달처럼 가슴 벅차오르던 그 사랑이

오늘은 나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날아 내리는 낙엽 아쉬워 잡아보니

어느새 말라버려

잠자리 날개로 부서져 내립니다


효천역에서 기차를 기다립니다

늦가을 고추바람에

하늘로 떠오르는 노오란 은행잎 따라

쪽 떨어진 내 사랑도 날아오릅니다


기차는 저 혼자 갈 길을 떠납니다

나는 사랑도 떠나보내고 기차도 보냈습니다

비인 가슴에 재로 날리는 사랑을 추억하는 것은

흘러가버린 강물처럼 덧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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