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시
코스모스 성장기
맑음 전숙
저는 코스모스랍니다
짙푸른 하늘 아래
화사하게 꽃댕기 엮어서
하늘하늘 실바람에도 흔들리니
키 크고 속없어 보이지만
저도 남모르는 고민이 많았답니다
봄밤이었어요
아마 꽃샘바람이 심하게 불었을 거여요
몸부림치며 지구 껍질을 뚫고 나와 보니
세상은 온통 꽃축제였어요
아무도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데
오히려 꽃구경하는 우악스런 발길에
뭉개질까 가슴 졸였지요
남의 잔치에 무대배경으로 덧칠해진
누구도 듣지 않는 작은 허밍이었죠
여름 사춘기를 지나며
날마다 쑥쑥 크는 키로
우쭐거려지는 것을 여름꽃 친구들 땜에
겨우 참아내었지요
조숙한 친구들은 벌써 여름꽃 친구들 틈에서
꽃망울을 터뜨려버렸어요
요즘 꽃은 때도 없다니까
은근한 비아냥을 들으며
성질 급했던 친구들은 홍당무가 되더라고요
나는 참아내었어요
독무처럼 혼자 피어 예쁜 꽃도 있지만
우리는 군무가 딱 어울리잖아요
더욱 푸르게 숙성된 가을 하늘님도
우리들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고추잠자리도
일 년 내내 수고하시고
이제 점잖게 고개 숙인 황금 들판도
모두 저에게 칭찬을 하셨어요
잘 참아내었다
이제 너의 때가 되었다
마음껏 피어나렴
우리 모두 네가 피어날 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단다. 주인공인 네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니? 스타가 스케줄 펑크 낸 거나 마찬가지래요. ‘집으로’의 김을분 할머니나 ‘죽어도 좋아’의 박치규 할아버지, 이순예 할머니께서도 모두 그 전에는 세상의 조연으로만 사시다가 그 때에 이르러서 드디어 주연을 하게 되신 거래요. 만약 그 어르신들께서 남의 조연만 하시는 것이 억울하고 서러워서 세상을 하직하셨다면 어떻게 그 두 편의 영화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겠어요? 우리 친구 동백과 매화도 ‘꽃도 못 피우는 바보’라고 놀림 받으면서도 저희들이 피어날 제 때를 위해 자존심을 굽히고 지그시 참고 있음을 저는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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