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시

보건진료소의 기도-전숙

전숙 2009. 8. 29. 08:02

보건진료소의 기도/전숙
비록 이름 없는 풀꽃의 작은 마음이라도
나이든 산의 웅크린 적막을 깨닫게 하시고
홀로 천년을 견디는 주목의 외로움을 살피게 하소서
상처받은 가슴의 흉터에는 
순한 연고처럼 스며들게 하시고
온몸으로 통곡하는 소낙비의 비애를
암탉의 날개로 품게 하소서
소나무 껍질처럼 부르튼 손바닥을 끌어안고 
열두 이랑 막막하던 노동의 시간을 읽게 하소서
진료소로 향하는 발걸음에 
혹여 라도 머뭇거림 없게 하시고
내 집처럼 편히 머물다 가게 하소서
기댈 곳 없는 등들의 등받이가 되게 하시고
휘청거리는 걸음의 지팡이가 되게 하소서
돋보기가 되고, 보청기가 되고 
신문이 되고, 편지가 되고, 전화가 되게 하소서
실금하는 세월의 지린내는 향기로 기억하게 하시고
이슬 한 방울의 눈물까지도 더듬게 하소서
손톱까실이 만큼의 섭섭함도 없기를
우리 아버님들 굽은 등허리 근심
뒷산 삼나무처럼 바르게 펴지기를
우리 어머님들 앞길 아득한 관절염 
아침이면 눈뜨는 새싹의 미소처럼 환해지기를
날마다 기도하지요
날마다 꿈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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