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시

원탁시회 등 2009 발표작품1

전숙 2009. 7. 8. 13:50

 

백운로타리의 효사랑 솔낭구

                                                                전숙


 그랑께 말이시, 아래뜸 솔낭구밭 양주가 광주광역시 백운로타리에 있는 아파트로 업혀간 지가 솔찬히 되부렀네 잉. 지금쯤 잔뿌렁구 내리고 잘 살고 있을랑가 모르겄네. 즈그들이 바빠서 엄니랑 아베랑 뵈러 다니기 어렵다고, 효도해야 쓰겄응께 올라오시라고 그랬다는디. 아무리 그랴도 그집 할메가 흙도 설고 물도 선디서 어찌 살것냐고 못 가겄다고 버팅겼다드만, 어느 밤중에 포크레인이 들이닥쳐서 삽장을 밀어불고 두 냥반을 보쌈질을 해부렀었단 말이제. 아이고 참말로 얼척없는 일이었제 잉.


 그때가 섣달허고도 그믐께라 달빛 이장은 마실 가불고, 시간마저 자(子)시를 넴겨 쥐새끼까지 퍼질러 자느라고 암도 몰랐당께. 할메가 업혀감시롱 달구똥 같은 눈물을 하도 훔쳐쌍께 할배가 허시는 말씀이, 효도 받으러 가는 길이네. 다 내 자식 좋자고 허는 일 아닌감. 할메는 깝깝한 가심을 두딜겨감서, 자꼬 미끄렁져 내리는 혈연의 끈탁지를 옭아맸다더랑께. 그랑께 고것이 나중에 알고 봉께 손주들이 할메할배 얼굴도 몰라볼깨미 그랬다는디 요런 싸가지 없는 새깽이들, 긍께 갈케노면 대그빡들만 커갖고 뭐든지 즈그 맘대로만 할라고 한당께 말이시.


 나어린 별들이 은하수 젖줄을 물고 목구녁을 적실 3경이면, 무명걸럭지 질끈 짠 듯한 설움이 낭창낭창 풀리곤 한단디, 시방 할메할배는 사통팔달 백운로타리의 화단아파트에서 무신 꿈을 꾸까 잉. 풍문에 들응께 할메가 고가도로 옆퉁가리 쪽밭에 고구마를 심궈갖고 효사랑 동민들 항꾼에 모타서 찌먹었다드만. 그 인심 어데 가겄어? 쪼까 껄쩍지근하기는 혀도 어쨌거나 산목숨은 다 살게 마련이제,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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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보법

                             전숙


꽃 두 송이 걸어간다

걸음나비 맞추어 나란히 걸어간다

키 큰 꽃은 허리를 굽히고

키 작은 꽃은 깨금발을 했다

일곱 살 딸내미꽃 재잘대는 향기에

아빠꽃은 수술을 흔들어 일일이 답한다

엄마꽃은 지난 가을 유방암으로 그들 곁을 떠났다


꽃 세 송이 피었다가 한 송이 먼저 졌다

그래도 두 송이 남아

 

참 다행이다


맞잡은 두 손에

살그머니 포개는 햇살 손바닥


아지랑이 뭉클

치밀어 오르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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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에게

                                                            전숙


 이른 봄날 아침에 냉이나물을 먹는다. 냉이의 뿌리를 씹자 냉이가 뿌리에 간직해둔 향기가 풀려나오고, 이내 온몸이 상큼해진다. 냉이는 흙속의 캄캄절벽을 뚫고 어떻게 그 여린 뿌리에 향을 담았을까? 손발이 얼어붙을 때마다 주저앉아 한바탕 통곡했으리라. 그래도 한두 번쯤은 겨울비가 내려서 꽁꽁 언 땅을 녹여주기도 했으리라. 어쩌면 지렁이가 삽을 들고 와 가로막힌 바위를 들어내 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칠백 날에 육백구십 날은 홀로 걸었을 것이다. 육백구십 날의 밤마다 은장도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아픔에 집중했으리라. 외로움보다는 통증에 기대기가 더 수월했으므로. 향기를 고스란히 뿌리에 담아내기 위해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수록 가뭇한 길을 더욱 모질게 닦달했으리라.


 물속에서는 쉬지 않고 발을 놀리면서도 수면 위에 고요히 떠있는 고니처럼 냉이는 기어이 제 고통의 행로를 의연하게 향기로 바꾸어냈다.


 그리고 그 향기 아낌없이 풀어 늦잠 든 봄의 후각을 흔들어 깨우고, 햇빛과 바람에게도 몇 올쯤 맛보이고, 오늘 아침 속곳주머니에 아껴둔 마지막 향기로 내게 행복한 봄날을 열어주고 있다.


 하여도 저를 위해서는 한 올도 차마 아까워 풀지 못했음을 나는 안다.


나도 과연 내 생의 고통으로

상큼한 향기를 지어

그 누구를 위해

아낌없이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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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나이든 호미, 그 무딘 눈빛

                                                전숙


 내가 누군지 알고 싶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려는데 광속의 속도감에 떠밀려 끝도 없이 흘러오고 말았다. 아무리 멈추려 해도 빠른 유속으로 인하여 어느 언덕에도 발 딛을 수 없었다. 뿌리내리지 못한 장돌뱅이 같은 유랑의 계절이었다. 그러던 언제부턴가 내 신발 끈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 있었다. 급브레이크 밟는 발바닥에 아스콘 타는 냄새가 배어들었다. 그래도 멈출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한 눈금 앞에는 붉게 충혈 된 돌부리가 잔뜩 겁먹은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


 나이든 호미란 오랜 동안 땅을 파면서, 처음의 날카로웠던 날이 뭉툭하게 닳고 덕지덕지 녹이 슨 볼품없는 낡은 세월이다. 나는 어느 날 나이든 호미가 너무 낡아서 새 호미를 샀다. 새 호미로 밭일을 하는데 젊은 호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풀뿌리든 고구마줄기든 막무가내로 끊어버렸다. 젊은 지식의 날카로움이 얼마나 빠르게 이웃에게 상처를 입히는가를 목격하고서야 나는 나이든 호미를 다시 찾게 되었다. 눈과 귀가 낡아서 무뎌진 오감의 반응으로 한없이 느려진 나이든 호미는‘쯧쯧’혀를 차며 허기진 가슴들을 달래주었다. 바로 그 뭉툭한 덕성이 바람과 햇빛과의 오랜 우정 끝에야 비로소 우러나오는 묵은 장맛 같은 지혜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덕성은 나의 시의 영원한 화두인 모성으로 다가왔다.

 

- 원탁시회 동인집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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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아프다

                              전숙


땅이 왼다리를 전다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몸

강한 오른손에 밀려 움츠러든 왼손

주방보조처럼 제대로 된 음식 만들어 본 적 없다

길 왼쪽에 몸을 푼 작은 저수지

오랜 봄가뭄에 자궁이 열려 있다

낙태의 흔적일까

자궁내벽 생살 움푹 패어있다

군무를 추며 상처를 핥는 하루살이무리

치맛자락을 잡아당겨 흉터를 덮어주려는 듯

깊은 골을 따라 애잔한 물줄기 서넛

긴 자락을 끌고 있다

형제 중 공부가 뒤처진다고

왼손처럼 자꾸만 움츠러들었던 작은 언니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왼 무릎이 운다며

앉기만 하면 왼 무릎을 왼손바닥으로 쓸어주었다

모든 애잔한 것들은 왼쪽으로 몰리는 걸까

왼쪽 하늘이 붉게 충혈 된다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염증이 서럽도록 붉게 번진 어머니 왼 무릎이

산등성이로 풀썩 꺾이고

아픈 살이 떠나자

남아있던 몸도 이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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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의 세례

                         전숙


내 살이 빨아먹은 너의 멍자국을 보아라

멀쑥한 키로 긴 그림자 만들어

작은 풀꽃의 눈 가린 죄

천방지축으로 뛰다가

함부로 찬 뒷발질에 방금 눈뜬 새싹 뭉개버린 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너의 허물

내 피부에 각인되고

나는 블랙홀처럼 너의 죄를 빨아먹는다

네가 죄의 검은 발자국을 뗄 때마다

나는 강력한 세제로 몸을 정화하고

너를 기다린다

걸레의 세례를 통해

너는 거듭날지니

그러나 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네 죄의 검은 눈물을

누군가 대리모처럼 흡수하고 있다


검은 십자가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 시에 200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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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냉이 꽃

                            전숙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가슴

좁쌀냉이 꽃이 피었다

꽃이 먼 별처럼 너무 시려서

콕 찍어서 맛을 보았다


좁쌀냉이 가슴에 매운 하늘이 들었는가

혀끝이 금세 얼얼하다


모든 작은 것들이 별을 기다리며

얼마나 울었는지

어쩌다 찾아와 하늘을 들이키는

눈 밝은 벌은 안다


우리 마을 곱사등이 부녀회장님

작은 키 사이사이

켜켜이 접힌 오지랖은

지나는 그림자까지 불러들여

기어이 밥숟갈을 쥐어주어야

고추장 푼 매운탕처럼

속내가 칼칼하게 개운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매운 하늘이

가장 작은 가슴에 가을배추 속처럼 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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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목 꽃잎의 무게에 대하여

                                 전숙


목련을 잃고 하염없을 때

태산목이 전화도 없이 꽃을 들이밀었다

향기와 후각세포가 손깍지를 끼고

재채기처럼 그리움을 쏟아냈다


 진료소에 월송양반이 급하게 들어섰다. “아이고 가슴이 절려죽겄당께라. 밤새 삼순이가 첫배로 암송아지를 낳구만이라. 나가 하도 이뻐서 송아지를 살풋 만져봤드만 오메, 지 새끼 어디로 데리고 갈깜시 그란지 푸사리처럼 코를 핑핑 불어대면서 대가리로 나를 마구 들이받더랑께라. 참말로 죽는 줄 알았어라. 그리 순하던 것이 하도 포악을 떨어서 단단히 묶어났구만이라.”


 청상으로 어린 것들과 살길 막막하던 금성아짐은 밭 두 마지기에 씨받이를 자청했다고 했다. 고추 둘 떠나보낸 뒤에 한평생 가슴 속에 맷돌 두 덩이 달고 살았다며 가슴을 열어 보여주었다. 맷돌의 무게에 아짐의 굽이치는 갈비뼈는 주몽의 활시위처럼 깊숙이 휘어져 있었다.


 요 며칠 외양간 지붕 위로 하롱하롱 날아 내리던 태산목 꽃잎이 오늘은 웬일인지 천근처럼 무겁다. 이웃인 태산목은 해갈이 때마다 삼순이의 가슴에 맷돌 한 개씩 매달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 오월이면 되짚어올 저 꽃잎도, 나이 들수록 맷돌 한 눈금씩 눈물 무게를 늘려 가리라. 언젠가 그 무게에 외양간 지붕이 폭삭 내려앉아 삼순이와 꽃잎이 얼싸안고 한바탕 통곡하는 소리, 나는 기어이 듣게 될 것만 같은데.



- 정신과 표현 2009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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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전숙


물들어보았니?


물든다는 것은

저를 지우는 일이지


그거 아니?

폭포에는 늘 무지개가 뜬다는 걸


막다른 길에서

어쩌지 못하는 눈물이

명줄을 걸고

저를 지우면


세상에서 가장 고운 빛

햇빛에 물들게 되지.

 

-유심 2009 7-8호, 시집 속의 시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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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전숙


 어머니 칠순 무렵이었습니다. “막내야, 알반지 하나 맹글어온나.” 어머니는 뜬금없는 통사정을 하였습니다. 새 옷이며 금붙이며 한사코 손사래 치던 상시의 어머니 일은 아니었습니다.


 칠순 날 자수정반지가 어머니 약지에서 빛났습니다. 일순 고실라진 꽃대에 반짝 물올랐습니다만 약지는 딱 하루만 호사하였습니다. 아까운 반지는 장롱에 귀히 모셔져 있다가 식구들 모이는 명절에만 어머니 약지에서 다시 환하게 웃곤 하였습니다.


어느 때쯤부터 명절에도 어머니 약지가 빈자리였습니다.

 

세월의 어금니에 뭉그러지던

팔순의 무게와 부피는

조금씩 헐거워지더니

어머니는 생의 반지에서 아예 흘러내리고 말았습니다


장롱 깊은 곳, 빛바랜 자수손수건에 서너 겹 고이 싸인

반지의 약지에서

어머니, 빛나고 있었습니다

눈가에는 네 겹 잔물결 오지게 일렁였습니다


반지를 문지르니

“옆집 새댁 알반지 참말로 곱드랑께.”

어머니....... 꽃시절, 들렸습니다. (시평,2009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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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

                   전숙


팽팽하던 갈맷빛

툭, 주저앉는다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뼈의 햇살들


용을 쓰던

산이 빈 몸으로 돌아눕는다


내려앉은 잔등에 어둠이 밀려온다


샤워소리...


물줄기를 가야금처럼 튕기며

날아오르던 휘파람새

목울대가 적막강산이다


황혼 너머

날선 봉우리들이 각을 눕히고 있었다

달려가던 시간들이 걸음을 늦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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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 고치기

                                   전숙


 꽃양귀비 모종을 얻으러 갔다. 이미 꽃이 무성하여서 이식하기엔 늦었단다. 구석진 자갈밭의 옹색한 꽃을 잡아당기니 자갈 사이에 불안불안 떠있던 뿌리가 선심 쓰듯 들려나온다. 모종을 심으려는데 화단이 온통 자갈밭이다. 작년에 주차장부지에서 골라낸 돌을 화단에 무심코 던져두었던 것이다. 도리 없이 자갈밭에 꽃을 심고 자갈을 흙처럼 덮어주었다.


 팔방놀이 하는 언니에게 업혀있던 아기복룡댁의 허리가 뒤로 꺾이고, 한 번의 꺾임이 한평생 지고 갈 눈물이 되어버린 복룡댁. 다른 꽃들 다 찾아먹는다는 붉은 열흘을 구경도 못해본 곱사등이 꽃은 시집간 지 사흘 만에 소박맞았다. 생과부가 목숨처럼 키운 유복자는 스무 살에 속립성결핵으로 그녀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다.


 우물이 기울어졌다. 쓴물이 울컥거렸다. 누구도 어찌해볼 수 없는 복룡댁의 팔자 때문에 속을 끓이던 우물의 쓸개가 경련하고 있었다.


 자갈밭에서 뽑혀와 또 다른 자갈밭에 이식되는 것이 저 꽃의 팔자일까? 나는 양지바른 터에 부드러운 객토를 듬뿍 깔고 모종을 옮겨 심었다.


어쩌다 복룡댁과 마주쳐

“어떻게 살아요?” 물으면

순하게 웃으며“봉사하며 살지요.”


 복룡댁의 가슴에도 누군가 부드러운 객토를 듬뿍 깔아준 것일까.

              (이상 열린시학 2009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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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전숙


얘야, 사과라는 우주에는 아기별 다섯 식구가 산단다

백 년 동안에 태어날 또 다른 아기별보다도 많은

꽃가위벌의 눈물이 아기별들에게 녹아있단다


꽃가위벌은 한 생 동안에 열다섯 개의

기쁨을 낳는단다 천육백이십 송이의 꽃가루로

경단을 만들어 기쁨 한 알의 입에 물려준단다

사과꽃 이만사천삼백 송이의 대문 앞에 엎드려

귀한 꽃가루를 탁발해온

한 마리의 작고 작은 꽃가위벌은

제 눈물이 다할 때까지 보은의 춤을 춘단다

참으로 우람하고 다디단 사과는 모두 

꽃가위벌이 꽃가루받이 해준 것이란다

한 줄기 고독한 바람이 열다섯 번째

꽃경단에 마지막 기쁨을 낳으면

노심초사하던 봄날은 비로소

마음 내려놓은 날개를 가지런히 접는단다


한 알의 사과를 지그시 베어 물면

꽃가위벌의 눈물이 입안 가득 그렁해지며

‘다 이루었다’는 말이 어디선가 들린단다.



*********

 

아름다운 윤회

                                전숙


바람의 형상이 궁금하면 자작나무를 보면 안다

지나가는 바람마다 들러 가는 자작나무는

허공의 주막, 그믐밤이면 정 많은 바람들과

정분이 나고 동서남북 하늘땅 할 것 없이

바람을 밴 나무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희

천개의 손을 뻗쳐 춤추는 천개의

눈마다 바람의 씨앗이 하얗게 박혀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정은 상처가 되고

바람이 남긴 상처에 뿌리내린

차가버섯은 상처를 부추겨

나무의 암덩이로 자라났다


차가버섯을 가루 내어

따뜻한 물에 우려내면

자작나무의 전생의 전생이 깨어나

생의 아픔이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

또 다른 암덩어리를 녹여낸다고 한다.


(이상 21세기문학, 2009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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