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시

518 29주기 추모제

전숙 2009. 5. 22. 20:40

 

 

민중항쟁 29주년 추모제 최초 상여등장

논물과 오열속에 치뤄져

옛 전남도청 별관철거와 맞물린 눈물의 저항

 

▲ 금남로 3가에서 추모제를 하기전에 식전행사로 '희생자 위패 상여행진'을위해 모여있다.

 

민중항쟁 제 29주년 기념 추모제가 17일 오전 9시에 금남로 3가(구 광주은행앞)에서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와 관련되어 유가족들의 오열속에 시작이 되었다.

▲ 검은 상복입은 옛 전남도청 앞에 상여행열이 도착하는 모습.

 

▲ 최미애 열사, 김경철열사의 어머니가 상여를 붙잡고 도청으로 향하고 있다.

 

9시 20분부터 치루어진 장례 행열은 약 30분간 이어졌으며, 망월동 국립묘지가 아닌 금남로에서는 처음있는 일이며, 또한 추모제에 상여가 등장한것도 처음있는 일이며, 옛 전남도청 별관철게 강하게 반발하는 저항정신의 표현이며 했으며, 당시 사망한 장소에 치루어는 행사로 유족들은 눈물과 오열을 쏟아냈다.

▲ 민주노총 광주본부와 광주전남대학생연합 학생들이 상여를 메고 옛 전남도청으로 향하고 있다.

 

물론 상여 등장은 처음은 아니다. 86년 5월 27일과 87년 5월 27일 두차례가 등장했으나, 그때는 돌아가신 영원을 부활하는 의미에서 상여가 등장을 했었다.

▲ 추모제에 상여가 등장한것은 최초, 민중항쟁 기간중에는 세번째이다.

 

추무제 행사는 약 600명의 위령 위패가 적힌 만장기가 맨 앞장을 섰으며, 그 크기만 해도 가로 4.5m 세로 7m에 달했으며, 이행사는 광전대련과 민주노총 광주본부가 함께 상여를 매는 등 시민들과 함께 했으며, 만장기는 옛 전남도청 별관에에 걸렸다.

▲ 당시 남편을 잃어버린 유가족이 오열을 토해내고 있다. 

 

또한 추모제를 하는 동안 보존공간인 본관(1937년 완공, 일제 시대때 지어진 건물)의 옥상에는 조기와 함께 추모리본이 걸렸으며, 이 조기또한 별관 문제가 해결 될 때 까지 걸릴 예정이다.

▲ 옥상에서는 조기와 검은 추모리본이 게양대에 걸렸다.

 

장성곡과 상여가 옛 전남도청 앞에 도착하자 유족회 어머니들은 그간에 참았던 한과 오열을 토해 냈으며,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도 눈물을 흘렸다.

▲ 고 이정연(당시 전남대 사범대 2학년 재학중, 당시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사망)의 어머님이 자식의 무덤앞에 섰다. 행사에 참여하기위해 멀리 남양주에서 찿아왔다.

 

▲ 행불자로 처리되어 있다가 5년 전에야 아들의 유골을 발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고 권호용 열사의 모 이근례씨, 80년 당시 식당이였던 민원실에서 사망한걸로 추정

 

▲ 상여가 옛 전남도청에 들어와 추모식장에 도착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이 민원실이다.

 

추모행열이 도착 후 바로 본행사인 추모제가 별관에서 열렸으며, 유족회 부회장 문건양은 "먼저 간 자식들에게 잔을 올려야 하는 이 기막힌 현실 에 이제 자식들이 죽어간 그 현장마저 철러하려는 악행이 더해지고 있는 참확한 상황입니다"며서 보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설계변경 및 지금 하고있는 공사와 관련하여 "농성때문에 사를 방해하지도 않고 있고, 정상적으로 공사중이다"고 하면서 강한 불쾌감을 표현했다.

 

추모제를 마치고 추모식에는 시인 전숙씨의 '그대 없이 다시 오월입니다'는 추모시가 낭송되다, 유족들은 다시 또다시 울음 보따릴 풀어버렸다.

▲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는 시인 전숙씨, 1995년 전남장성출신, '시와 사람'으로 시 등단, 현 전남 나주 노안 금안 보건진료소장.

 

또한 5.18민중항쟁 제29년 기념행사위원장 안성례씨는 "추모제 영령들이 잠든 묘지에서 드려야 마땅하지만 아와같이 허술한 도청 바닥에서 제를 드리게 되는 가슴아픈 션실가 처지를 굽어 살피시사 음향하시고 용서하속서"하면서 영령들에게 이같은 불행한 현실에 처한 상황을 참회하면서, 또한 "오월가족들의 분열과 다툼은 시민들의 비난가 외면으로 증폭시켰고 오월정신을 먹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면서 구속부속자회를 겨냥하는 추모사를 밝히기도 했다.

▲ 제 29주년 기념 행사위원장 안성례씨,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원 이며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을 역임 했으며, 현 오월 어머니회 회장을 맞고 있다.

 

추모식이 끝나고 오월영령을 모셔놓은 제단에 헌화가 있었으며, 유가족들은 상여에 아들을 이름을 부르면서 국화를 꽃자 유족은 대성통곡을 하면서 "태경아 에미다, 니가 술을 따라야지 왜 내가 니 술을 따라야 하냐", "태경아 애미다"를 외치며 장내를 눈물바다를 만들어 버렸다.

▲ 80년 당시 택시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부유했던 가정, 하지만 그 후로 가정파탄까지 일어났으며, 말주변이 없어서 인터뷰도 잘 못하신다. 하지만 찿아오는 시민들에게는 손을 꼭 잡으면서 일일이 고맙다고 하신다.

 

한편 농성중인 유족회와 부상자회는 "월 행사기간은 물론  전남도청이 해결될때 까지 상여를 비치 및 영혼을 달래겠다"며 향로와 촛대를 추가하는 등 방명록까지 비치할 방침이다.

 

 

※ 이 글은 산/들/바람님과 공동제작한 글입니다. 

 

 


그대 없이 다시 오월입니다

 

 시인 전 숙

오월의 눈물이여, 서늘한 뜨거움이여

그대 없시 다시 오월입니다

슬픔이 다하고 눈물도 말라

꽃을 돌이키려는 향기마저 스러져

우리의 사랑이 꽃잎처럼 이울던 날

이름 없는 풀꽃들과 도란도란 노닐던

푸른 나비는 우두커니가 되고

우리들 가슴에 서럽게 굳어버린

무등은 이제 하늘 넘어 영원입니다

강물이 얼마나 흘러야, 뜨겁게

고동치는 광주의 혈맥이 서늘해지겠습니까

흑암을 달려온 저 별빛 멀수록 눈물겹듯

아픔 없는 꽃이 어찌 아름답겠는지요

슬픔없는 사랑이 어찌 추억이겠는지요

금남로에 흩뿌려진 꽃잎 붉어 서럽던 날

우리의 사랑은 못다 핀 추억으로

흘러 흘러 천년을 흐르면

절맥된 오월의 분수대도

도담도담 불어오는 어머니의 젖샘처럼

사랑의 젖줄기 달콤하게 솟구칠는지요

어느덧 짓무른 꽃 진 상처에도

찔레꽃 붉은 열매 아리땁게 여물어

허기진 작은 새들에게

타오르는 한 생을 송두리째 내미는 영실처럼

꽃과 꽃 사이 눈물을 사르어

민주의 꽃불을 밝힌

무명초들의 열매가 되어

우리의 사랑도 그때 그 자리에

하늘 사무치게 빛나기를

 

그대 없이 다시 오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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