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시

[스크랩] 쉬었다 가실래요? 그 여자가 물었다

전숙 2005. 10. 3. 23:51
 
    <쉬었다 가실래요? 그 여자가 물었다> -맑음 전숙- 첫째마당 저수지 둑방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지난밤 장대비에 사람이 빠져죽었다며 혀들을 끌끌 댔다. 하지만, 죽은 여자는 내가 아는 그 여자의 생生에서 가장 편안해 보였다. 둘째마당 하늘도 땅도 아닌 연옥에 자미꽃이 활짝 가슴들을 열었다. 가슴마다 저의 속앓이대로 다른 꽃빛깔을 내었다. 자미나무 가슴에서 흘러내린 눈물들은 연옥에서 꽃비강물로 흘러 다녔다. 자미꽃강물이 흐드러질 때 여름은 눈감을 채비를 하고, 끝물여름 단말마는 칼춤이 번득이는 번개마당에서 천둥교향곡을 연주하였다. 뒤따라오는 장대비가 통곡으로 문상하니, 손바닥만한 저수지는 과음으로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달랑 한 개뿐인 저수지 목구멍에서 흙탕물 속에 환장하게 멀미하던 가물치들 덩달아 쏟아져 나왔다. ‘여편네가 뭔 욕심에 혼자서 겁도 없이 그것도 오밤중에 수문 앞에서 가물치 잡는다고, 물멀미에 다리를 헛짚어 물고기신세가 되어부렀구만 잉?’ 늦여름 깊은 밤, 지옥 같은 날씨에 그 여자의 행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발 센 금성양반 이야기에 토를 단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셋째마당 쉬었다 가실래요? 빈집에 얹혀사는 그 여자는 단칸방에 이부자리 제법 조촐하게 봐놓고 지나가는 남정네가 있으면 그렇게 물었다. 나라에서도 없는 사람들 못 본 척 하던 그 시절에, 그 여자가 맨몸뚱이로 생존을 위해 선택한 유일한 길이었지만 뻔한 시골동네에서 그 길은 좁아터진 연옥일 수밖에 없었다. 넷째마당 그 여자는 주정뱅이 남편에게 허구한 날 두들겨 맞아서 온정신을 놓쳤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부터 라고도 했다. 소문처럼 언제인지도 모르게 마을에 스며들어온 그 여자는 맑은 날엔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하늘의 기분이 수상해지면 그 여자의 행동도 수상해지기 시작했다. 온 동네를 이 잡듯 돌아다니며 아무나 붙들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다가 하늘이 부슬부슬 울기 시작하면 그 여자의 목에서도 짐승소리가 울려나왔다. 하늘과 합창하는 그녀의 울부짖는 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을 쥐어뜯는 것 같았다. 동네사람들은 그 울음소리 때문에 그 여자를 동네에서 내쫓지 못했다. 그 울음소리가 마을을 한바퀴 휘저으면 짠한 가슴들은 그 여자의 팔자를 동정했다. 다섯째마당 그 여자는 가물치와 함께 연옥의 꽃이 되었다. 여름끝물의 제물로 피어나서 그 험한 팔자로부터 휴가를 얻었다. 그 여자가 쉬러 떠난 뒤로도 한동안은 하늘이 우는 날이면 그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여전히 하늘과 합창하는 듯하였다. 어쩌면 그 여자가 울부짖을 때마다 살풀이레이저쇼를 펼쳐주었던 천둥번개를 따라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여자는 배롱나무의 자미꽃처럼 세상에서 이미 연옥의 꽃이 되었으니 아마도 지금쯤은 그보다는 훨씬 윗동네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지 않을까? 배경음악 : `두메꽃` - 최민순신부님 곡








출처 : 시사랑 사람들
글쓴이 : 맑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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