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열여덟에 시집오니
서방은 대처에 돈 벌러 간다 휭-하니 떠나불고,
시어매와 시누이는 나랑 같이 몸 풀었는디,
한 집에 산고가 셋이나 들었어야.
나는 산후조리 한 번 못 혀보고
시어매 시누이 수발하느라
이리 골병 들었는갑다.
대처에 간 서방은 시앗 하나 얻어 오더니
나헌테 도장만 찍으라더라.
그라믄 고향집도 전답도 다 밀어준다고,
그래도 내가 끝꺼정 안 찍고 버텼어야.
느그 할배한테 숱허게 얻어 맞아감시롱
그것만은 못 현다고 악착같이 버팅켰제. 암~
안 들려야 크게 말해보랑께, 크게 말하면
누가 귀묵었간디 어째 악다구니를 쓰고 그런 디야,
애먼 소리 하시고
궁금한 것도 많으시고 간섭할 것도 많으시던 우리 할머니
일감만 보면 굽은 허리 펼 날 없으시던 우리 할머니
차곡차곡 개켜두신 쌈지 돈
손자 손에 뭉텅이로 쥐어주시며
아이고, 내 새끼 건강혀라 열심히 공부혀라 잉
엉덩이 두드려주시던 우리 할머니
자식들 뽄새가 괘씸할라치면
나는 느그들 그렇게 안 키웠는 디
입 굳게 다무시고 먼 산 그렁그렁 쳐다보시던 우리 할머니
지난봄에 하늘동네로 마을 가신 우리 할머니
늙은 단풍나무 수액처럼 누렇게 삭은 눈물은
흐름조차 막힌 눈물샘에서 거꾸로 솟고
세월을 방울방울 찍어내듯
노란 한恨이 꾹꾹 물들어
항상 알록달록하던 우리 할머니 손수건
한평생 타들어간 가슴에 피어난 노랑꽃처럼
빨래터 우물 옆에 노랑 개나리로 오신 우리 할머니
쑥부쟁이 캐시던 산그늘에 붉은 참꽃으로 오신 우리 할머니
할머니 흔적마다에 할미꽃으로 돌아오신 우리 할머니
올 추석 성묘 길에는 노란 국화꽃으로 맞아주실까
알밤송이 되시어 내 머리에 우루루 쏟아지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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