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시

저승사자

전숙 2005. 8. 20. 12:56

<저승사자>

               
                                      -맑음 전숙-


어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중에도
눈 뜨시면 바깥문 쪽을 보시고
몸을 부르르 떠시며
아이고, 무섭다야
저 사람 누구 다냐
저승사자가 벌써 명命받았는지
어머니 저승길 모셔가려고
문밖에서 서성이는 모양인데

 

하느님, 이왕이면 예쁜 천사 보내주시지
저렇게 험상한 저승사자 보내셔서
우리 어머니 무섭게 하십니까
하느님께 따져보고 싶은데

 

어머니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무서운 저승사자
예쁜 천사로 바꾸어드리고 싶은데

 

하느님은 바쁘셔서
믿음 약한 사이비 신자 기도는
신경 쓰이지도 않으시고
어머니 무의식으로 들어가기에는
내 몸이 너무 무거워서
이리저리도 못하고
어머니 두 손만 꼬옥 잡고 울먹이다가

 

한평생 하루도 쉴 날 없이
날마다 복닥거렸던 이 쪽 삶도
아직 아무 해놓은 일도 없다 하시는데
다시 빈손으로 저승사자 따라나서면
얼마나 처연하실까 싶어

 

어머니, 가슴에 묻어둔 보물들 다 내려 놓으셔요
제가 대신 안아드릴게요
어머니 혼자 힘으로 못다 푸신 한恨들이 쌓여
땅땅 대못질 된 속내를 풀어헤쳐야
무서운 저승사자가 예쁜 천사로 바뀐대요

 

거짓말처럼
어머니 가슴에서 썩어가던  대못들이
어머니 손을 타고 슬그머니 내게로 옮겨오니
저승사자는 제풀에 떠나고
어머니는 다시 눈감고 숨소리도 편안히 주무시는데
나는 하릴없이 주무시는 어머니 곁에서 꾸벅거리며
어머니 물려주신 보물들을 꿈속에서 풀어보느라 끙끙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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