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눈물에게』
몸을 통과하는 생의 은유
염창권
전숙 시인이 첫 시집 『나이든 호미』에 이어 『눈물에게』를 발간하였다. 이번 시집 『눈물에게』는 ‘광주PEN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집이다. 필자가 두 시집에서 찾아낸 주제는, “몸을 통과하는 생의 은유 찾기 혹은 사물의 몸에서 빌려온 은유를 생의 매순간에 겹쳐 보이기”이다. 한마디로 그녀의 말 부림은 단순하지 않다. 각각의 작품들이 몸의 내밀한 감각을 통하여 정서적 감응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생의 순간들을 가치 있는 이미지로 포착하는 인식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레이코프는 “영적 경험을 정열적으로 만들고 거기에 치열한 욕구와 고통 그리고 환희를 가져오는 것은 몸”이라고 하였다. 몸이 소유한 감각들은 삶의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정신적 개념과 연합하여 인식의 상태를 상승시키는 주체자 역할을 한다. 몸의 기표를 활용한 모티프 찾기는 표제작인 <눈물에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눈물은 태초에 가시였단다
순한 눈을 지키라고 하느님이 선물로 주셨지
발톱을 세워 달려드는 적들을
가시는 차마 찌를 수 없었단다
마음이 너무 투명해서
적들의 아픔까지 유리알처럼 보였거든
세상의 순한 눈들은
가시의 방향을 바꾸어
제 마음을 찌르고 말았단다
도살장의 소
마음이 흘린 피
그게 눈물이란다.
<눈물에게> 전문
“가시”는 적을 방어하는 무기의 일종이다. 고슴도치의 털처럼 가시는 타자의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적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된다. 즉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고, 자신 또한 상처를 입지 않으려는 수동적인 방어 방법이 바로 가시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역발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가시는 “순한 눈을 지키라고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 순한 눈으로는 적을 물리치지 못한다. “마음이 너무 투명해서/ 적들의 아픔까지 유리알처럼 보였거든”에서와 같이 타자에 대한 연민이 앞서면서 자기희생을 감내하게 된다. “세상의 순한 눈들은/ 가시의 방향을 바꾸어/ 제 마음을 찌르고 말았”다는 것은 적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품어서 더 큰 아픔이 되는 것, “마음이 흘린 피”와 같이 자신의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 눈물의 의미이다. 이로써 눈물은 자신을 찌르는 가시가 되고 아픔이 되고 피가 된다. 눈물이 가시가 되는 까닭은 타자 연민에서 출발한 아픔이 주체로 전이되어 내면에 독한 상처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눈물은 “도살장의 소”처럼 자신을 공여하면서 흘리는 고통을 통해서만 진정성을 갖기에 가시처럼 아픈 것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눈물은 <고비의 어미>에서 새끼낙타의 냄새를 기억하는 “어미”를 통해서 재확인된다. 여기서는 “칼이 된 그리움이 있다”고 한다.
칼이 된 그리움이 있다
고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리에 풍장을 하고
어미의 앞에서 새끼낙타를 칼로 찔러 죽인다
어미는 새끼의 냄새를 일 년도 넘게 기억할 수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꾸는 고비에서
풍장한 곳을 찾기 위해 어미낙타를 데려가려는 것이다
고비의 낙타는 속눈썹이 두 겹이고
혹도 쌍봉이고
가슴에 품은 그리움의 주머니도 두 개여서
새끼를 찾고 그리워하는 정이 가축 중에 제일이다
기억하는 한 살아있다며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불가촉천민 같은 서러운 냄새를
사막의 지독한 모래폭풍에도 놓치지 않고
세상을 온통 새파랗게 물들이는 고비하늘,
그 시원의 파랑에도 물들지 않고
잘근잘근 음미하던 야생화의 향기도 젖히고
밤이면 거침없이 쏟아지는
미리내의 빛줄기에도 흘려보내지 않고
건초의 뼈보다 더 질긴
모래폭풍의 손아귀보다 더 억센
주머니에 각인시켜서
한해 전에
부풀어 오르는 목젖을 넘어간
그 비린 그리움을 퍼 올리며
어미는 망망한 고비를 건넌다.
<고비의 어미> 전문
이 시는 고비의 쌍봉낙타를 통해서 어미의 새끼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풀어 놓는다. “어미는 새끼의 냄새를 일 년도 넘게 기억할 수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꾸는 고비에서/ 풍장한 곳을 찾기 위해 어미낙타를 데려가려는 것이다”와 같은 상황은 어미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실체이다. 어미는 이 폭력 앞에 무방비일 수밖에 없는데, 새끼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일 년이 넘게 그 냄새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이를 이용하여 날마다 지형을 바꾸는 고비에서 죽은 이를 풍장 해 놓은 좌표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
년 뒤에 죽은 새끼낙타를 찾아가기까지의 기간 동안 어미에게는 형벌이자 가혹한 고통의 길을 짐 지우게 되는 것이다. 끝에서 “그 비린 그리움을 퍼 올리며/ 어미는 망망한 고비를 건넌다.”고 했을 때, 후끈하게 끼치는 살 냄새는 생명을 가진 것들의 그리움이면서 우리 인간의 원형적 그리움으로 확대된다. 안으로 칼질을 해대듯이 진행형으로 애가 타면서 그리움을 붙들고 사는 것은 모든 어미들이 겪는 천형이자 사랑의 방식이라 하겠다.
개썰매를 몰아 방향을 찾는 이누이트들은
눈의 주름을 보고 길을 찾는다고 한다
설원을 쓸고 간 바람의 발자국이
주름을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머리카락을 추켜올리고
이마의 주름을 활짝 드러내었다
내가 걸어온 바람 같은 길이
생의 설원에 석 줄 깊은 발자국을 찍어놓았다
내 뒤에 오는 누군가
이 주름을 더듬어 가면
생의 크레바스를 무사히 비켜갈 수 있으리라.
<주름> 전문
이 시에서 이누이트들은 바람의 발자국인 “눈의 주름”을 보고 길을 찾는다. 그와 같이 우리 몸에도 길이 있는데 그것은 이마에 그려진 주름이다. 이 주름을 따라 길을 찾으며 생의 곡진함에 닿았던 날들이 있었기에, “나는 머리카락을 추켜올리고/ 이마의 주름을 활짝 드러내었다”고 생의 순간들을 긍정한다. 그리고 그 주름에는 발자국들이 찍혀져 있어 “내가 걸어온 바람 같은” 날들이 얼비친다. 더구나 “내 뒤에 오는 누군가/ 이 주름을 더듬어 가면” “생의 크레바스를 무사히 비켜갈 수 있으리라.”라고 말할 정도로, 지나온 삶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다.
앞의 시들을 통해서 살펴본 바, 전숙 시인이 형상화해낸 시세계는 몸 이미지로 빚어낸 생의 상징이자 감각적 기억들로 가득하다. 막스 쉘러는 우리 몸의 구조 속에서 자아와 타자가 구별 없이 존재하고 있으며, 각 개인의 정체성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람이 자기 안에서보다는 먼저 타자 안에서 산다고 말할 때, 타자의 시선, 그리고 공동체의 시선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억의 흔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몸이다. <고비의 어미>나 <주름>에서 보는 바, 몸에 “각인”된 기록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몸에 남겨진 기록은 생의 매순간 참조되면서, 현실이 결국 과거의 지속임을 끊임없이 깨우쳐 준다.
전숙 시인의 시에서 화자는 품 넓은 마음으로 이웃들의 삶을 보듬는데, ‘반지’, ‘살이라는 것’, ‘항아리’, ‘옷걸이’, ‘선지 국밥’, ‘사과’, ‘어미물떼새의 셈법’ 등의 시를 통해서 읽게 되는 바, 지상의 사물들은 모두 몸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 몸들을 불러 앉히고 어루만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상호간에 대화적 상대로서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시인에게는 몸을 가진 존재는 모두 소중하다. 그래서 그 소중한 그 모습대로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는 것을 좋아한다. 시인의 품성 또한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후덕함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내 그늘에서 쉬어가길 바랐다
머리 희끗해진 겨울산에서
발밑을 바라보니
오히려 내가
누군가의 등을 딛고 서있었다.
<정자나무가 되어> 전문
“모두가 내 그늘에서 쉬어가길 바랐다”는 것은, 아프고 피곤하고 쓸쓸한 사람들의 말벗이자 치유자로 살아왔던 생의 역정과 일치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머리 희끗해진 겨울산에서” 바라보니 사실은 내 그늘에서 그들이 쉰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등을 딛고 서” 있는 것과 같이 내가 그들을 의지하고 있었다고 해석한다. 즉 내 그늘에서 쉬는 사람들로 인해 나 스스로 치유되고 위안 받는 것과 같이 상생의 길을 걸어왔음을 나타낸다. 봉사자가 봉사활동으로 인하여 스스로 활력을 찾아 치유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눈물에게』는 김종 화백의 그림과 함께 시화집으로 엮어졌는데, 그림의 폭발할듯한 강렬한 색채는 시에서 은유적으로 빚어내는 몸 이미지와 잘 어울리며 시적인 몽상을 부풀린다. 수상을 다시금 축하드리며, 몸 이미지를 더욱 진전시켜 시와 삶의 양면에서 더욱 확장될 수 있기를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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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창권 : 시인,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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