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시평

시집평 : 눈물에게 --서승현(시인)

전숙 2012. 4. 19. 12:43

 

『눈물에게』 / 전숙


                                                      서승현(시인, 한국방송통신대학출강))


 눈물은 심리적 효과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부산물로 이는 곧 순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슬픔도 기쁨도 눈물의 터널을 지나면 더욱 순수해지고 깨끗해져 감정의 평형을 찾아가게 된다. 눈물은 흔히 아픔을 거름 삼아 일상을 다시 시작하게 하며 지치고 남루한 삶에서도 마침내 순화된 정서의 체험으로 감정의 평형감을 찾는 진정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눈물의 정화작용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문학의 효용론적 가치를 논하면서 일반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찌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간의 두 가지 근본정서인 공포와 연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공포는 두려움에 대상과 멀어지고 싶은 감정이며 연민은 측은함에 대상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감정이라 했다.

 전숙 시인은 슬프고 가슴 아픈 존재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눈물의 시학을 가다듬어 두 번째 시집『눈물에게』(시와사람, 2011)를 출간하였다. 총 4부에 87편의 시가 실린 이 시집은  시와 그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시화집으로 꾸며졌다. 시는 물론 그림에서도 한국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김종의 그림 50여 점이 표지화와 본문 삽화에 동반하고 있다. 시집을 펼쳐들면 강렬한 색채감의 그림과 전숙 시인이 구사하는 풍성한 시적 기호들이 서로 어울려 마치 푸짐하고 다채롭게 잘 차려진 밥상을 받은 그런 느낌이 든다.

 1부는 순한 눈을 지키라고 (22편), 2부는 작은 풀꽃 눈 가린 죄 (19편), 3부는 둥글고 촉촉한 마음아 (22편), 4부는 꽃시절, 들렸습니다 (24편)로 나뉘어져 있다.

 이 시집의 주된 정조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세상의 가여운 존재들을 향하여 낮은 목소리와 눈길을 가깝게 건네는 연민과 모성의 정서라 할 수 있다. ‘고통을 제 홀로 삭이는 여린 가슴들의 눈물’ 과 ‘흩날리는 낙엽까지 불러들여 기어이 밥숟갈을 쥐어주어야 가심에 피가 고추장 푼 매운탕처럼 개운해’지는 나눔과 희생의 후덕함과 견실함이 시집 전편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눈물,

좁쌀냉이 꽃이 피었다

      고통을 제 홀로 삭이는 여린 가슴들의 눈물을

      꽃으로 피워낸다는 꽃이

 먼 별처럼 너무 시려서 콕 찍어 맛을 보았다


좁쌀냉이 가슴에 매운 하늘이 들었는가

혀 끝이 금세 얼얼하다


모든 작은 가슴들이 별을 기다리며 얼마나 울었는지

어쩌다 찾아와 하늘을 들이키는

눈 밝은 별은 안다


우리 마을 곱사등이 부녀회장님

접힌 가슴 켜켜이 숨겨진 오지랖은

흩날리는 낙엽까지 불러들여

기어이 밥숟갈을 쥐어주어야

틀어 오르는 가심에 피가 고추장 푼 매운탕처럼

개운해진다.

                  -「좁쌀냉이 꽃」전문

 

  ‘부녀회장님’의 접힌 가슴에서 펼쳐지는 오지랖은 가히 자연을 포괄하고도 남아 대지모적인 넉넉한 모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사물 하나에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넉넉하고 후덕한 시인의 심정이 투사된 것이라 하겠다. 이 밖에도 ‘오지랖 넓은’ ‘부녀회장님’ 같이 눈물 깃든 아픔을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매개체로는 ‘마르지 않는 옹달샘’, ‘가시’, ‘열매’, ‘차가버섯’ 등 주로 자연물에서 은유되고 있다. 시인은 이 같은 개인상징들을 폭 넓게 수용하여 대지적 모성을 바탕으로 한 연민의 세계를 넉넉하게 일구어 낸다.


목마른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수박은

처음에는 손바닥바가지를 만들어 타는 혀끝을 적셔 주었다

그것으로 성이 안 차자

수박은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 되고자 하였다.


…중략…


수박같은 사람을 알고 있다


온 몸이 옹달샘인

이 땅의 어머니들.

              -「수박」부분


나가 탱자나무 울타리를 들여다 봤는디

멧새랑 땅강아지랑 거 뭣이냐, 여리고 여린 명줄들을

가시가 지 품에 꼭 끼고 있드랑께

그라고봉께 가시 속맴이 우리 엄니 행주치마허고 똑같드만

                                               -「오메, 가시여」


차가버섯을 가루 내어 따뜻한 물에 우려내면

자작나무의 전생의 전생이 깨어나

생의 아픔이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아픈 울음

또 다른 암덩어리를 녹여낸다고 한다.

                    -「아름다운 윤회」부분


  목 마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제 몸을 내어주는 ‘수박’에서 성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상을 구원하고자 자신의 몸을 내놓은 성자의 마음이 온 몸을 다 바쳐 헌신한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또한「아름다운 윤회」에서는 아픔이 아픔을 치유하는 눈물의 시학이 ‘차가버섯’이라는 구체적 이미지로 응결되어 드러나고 있다. 5.18 영령들의 희생을 소재로 한 「오메, 가시여」에서는 영령들의 죽음이 가시와 붉디붉은 찔레열매로 변용되고 있다. 희생은 붉고도 아름답다.

 이 밖에도 전숙 시인이 일구는 세계에서는 작고 슬프고 못나고 안타까운 이들이 참외, 호박넝쿨, 수박, 무화과, 사과, 완두콩, 풀꽃, 할미꽃, 하늘말나리 등 작고 연약한 사물들로 은유되어 한 세상을 이룬다. 이 같은 은유는 사물이 가진 특성을 직관하여 더욱 적절하고도 선명하게 시적 대상을 이미지화시키는 효과를 거둔다. 식물성이 지배적인 상상력의 근저에는 약하고 소외된 존재들이 눈물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하는 시인의 잠재된 의식이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기에는 이 요원한 세상에서 그나마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지금의 삶이라도 유지되는 것이라면, 내가 혹은 당신이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주변인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었다면, 나의 혹은 당신의 희생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제 갈 길을 가는 데 좀 더 수월해지지 않겠는가. 전숙 시인의『눈물에게』는 이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묵묵히 징검다리돌이 되어 세상을 건너는 보법을 연민의 정서로 일깨워 주는 시집이다.

 


산다는 것 어찌 보면 징검다리 건너는 일이지요


아스라한 둔덕을 건너다보며 긴 한숨을 몰아쉴 때

젖꼭지처럼 까맣게 반짝이는 별빛들

어미의 마음으로 누군가 괴어 놓았을 징검돌들

건너가는 누구의 발걸음도 불안하지 않도록

흔들리는 가슴끼리 이리 내어주고 저리 덧대어서

하지 않은 약속처럼 아귀 맞는 조약돌이 되어

사이사이 요리조리 끼워놓은 정성을 딛습니다

아지 못한 그이의 지극한 마음이 길을 잡아 줍니다


산다는 것 어찌 보면 같으면서 다른 우리끼리

이름도 없이 빛나는 은하수의 작은 별들처럼

이리 내어주고 저리 덧대어서

서로의 눈물을 괴어 징검돌이 되어주는 일이지요


계절을 건너기 위해 가을의 징검다리가 된 저 낙엽처럼

우리는 또 누구의 눈물을 딛고

오늘을 건너고 있는 것일까요.


                                   -「징검다리」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