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시

정신대 한 맺힌 피의 강은 마르지 않는다

전숙 2005. 5. 12. 17:06

♣ 정신대 한맺힌 피의 강은 마르지 않는다♣   
                                                  전숙(맑음)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태워도 태워도 되살아나는 수치를 기억합니다>
어머니 어머니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열여섯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여린 꽃봉은
비바람 폭풍 속에
꽃잎은 천 갈래로 찢겨지고 짓이겨져
꽃봉에서는
수치와 분노와 절망과 아픔이
피로 물든 통곡의 강이 되어
천둥소리로 흘러갑니다
어머니 어머니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백성도 지키지 못하는 나약한 나라에 태어난 것이 죄입니까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 죄입니까
힘이 없어 강제로 끌려간 것이 죄입니까
일자리 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죄입니까
일본 침략자들의 간악한 총대
더러운 욕정과 조직적인 강간에 의해
그들의 오물로 배꽃 같은 순결은
흔적도 없이 뭉개져서
저주받은 하수구가 되었습니다
내 몸은 수치를 버렸습니다
총검에 짓밟힌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육신의 뼈마디마다 살 구멍마다
오욕의 먹물이 스며들어와                                        
구렁이 같은 문신이 새겨져 온 몸을 휘감아 옥죄고
그 문신은 제 영혼에까지 파고들어와
영원히 지우지 못할 주홍글씨로 빛났습니다
많은 친구들을 천국으로 떠나보내고
저는 어찌어찌 살아남았으나
세상에서 저는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배꽃 같은 순결은
까마귀 떼에 유린당하니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져
못다 피고 떨어져버린 낙화는 열매도 맺지 못하였습니다
아, 누가 지나간 세월은 모두 아름답다하였습니까
나의 지나간 세월은 사자 굴에 던져진
살아있으나 죽어버린 세월이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제가 무슨 부끄러운 짓을 했습니까
대한 강산에 흐드러진 연분홍 진달래를
쇠갈퀴로 사냥한 무지막지한 늑대들은 
얼굴 빳빳이 들고 뻔뻔한데
짓밟힌 제가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세상에서 얼굴을 묻고 숨고 싶었습니다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가슴에서 뚝뚝 선혈을 흘리며
가시철조망을 죽을힘을 다해 기어서
조국이라는 현실에 당도하니
침을 뱉고 손가락질하며 눈을 홀기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조국이라고 불러야합니까
동포라고 불러야합니까
이웃이라고 불러야합니까
어머니 어머니
남들에게는 바람 같은 세월이라지만
저에게는 걸음마다 쩍쩍 들러붙는 진흙탕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뻘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어떻게든 빠져나와서
과거를 지우고 새 세상을 살려하나
진흙탕은 아가리를 벌리고
그 속에서는 악몽의 아귀들이 밤마다 저를 괴롭혔습니다
밤마다 나를 짓밟은 일본군 한 놈 한 놈을 
칼처럼 내 몸을 후볐던 그 놈들의 몸뚱이를
내 분노의 칼로 복수의 칼질을 하였습니다
구렁이처럼 휘감긴 내 몸의 문신을 다 도려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저는 용서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는
죄 아닌 죄로 온 몸에 수치의 못이 박혀 
그 못이 평생 나를 찔러대고
찔릴 때마다 흐르는 피와 고통으로
수천 번 죽으려하였으나
제 힘으로는 억지로 어쩌지 못한 그 목숨이
이제야  질긴 한恨 많은 생의 촛불이 꺼지려 합니다
그토록 그리던 하늘의 어머니 곁으로 돌아갑니다
제 몸과 영혼에 새겨진 영원 같은 저주의 문신이
흔적도 없이 봄눈처럼 녹아서
저도 그 원수들을 용서하고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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