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전 숙
혹시 부부라는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촌수로는 무촌이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일심동체라네요
오랫동안 같이 살다보면 유전자가 끼어 들지 않아도
몸도 마음도 생각도 닮는다나요
수십 년 동안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서로 몰라라하고 살았는데
어떻게 사랑이라는 아니면 인연이라는 작은 끈 하나로
그동안 살아 온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삶이 되고
부모도 형제자매도 친구도 모두 뒷전인 채
한 사람만 바라볼 수 있는지
삼십 년을 살았어도 풀지 못할 수수께끼입니다
텔레비전에서 클라크 케이블이 나오는 영화를 합니다
나는 그 배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한참 끙끙거리다가 남편에게 묻습니다
남편도 역시 생각나지 않습니다
둘이 같이 끙끙거립니다
내가 먼저 말합니다
앞에 석 자 뒤에 석 자야 앞은 "ㅋ" 자로 시작되는 것 같아
맞아 클라크 케이블이야
이렇게 둘의 머리를 합쳐야
겨우 문제를 해결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만큼 수발해주고 챙겨주었으면
이제 정도 떨어지고 귀찮기도 하련만
식보(食補)나 입성도 그만하면 제법인데
혼자서 가만히 남편 얼굴을 떠올리면
왜 짠-한 생각이 들고 불쌍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겠지요
남편은 저에게 먼저 하늘나라에 가라고 합니다
비실대기 마누라 혼자 험한 세상에 남겨지는 것이 안타까워서지요
옛 어르신들이 부모 밥은 누워서 먹고
남편 밥은 앉아서 먹고
자식 밥은 서서 먹는다더니
고향의 당산나무 같은 남편 그늘에서
나는 오늘도 앉아서 밥을 먹습니다
둘이 사랑을 시작한 처음 몇 년처럼 활화산 같은 정열은 아니지만
은근한 마음으로 뜨뜻한 사랑방 같은 곰삭은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남편이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부부라는 인간관계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200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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