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한글문학, 세계로 가다”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참관기
전숙(시인)
한글은 사랑이다
한글은 사랑이다. 젖을 물리고, 젖을 한가득 머금은 아기의 볼따구니를 웃음으로 바라보는 어미의 눈길이 한글이다. 그 눈길에는 사랑이 박음질로 박혀있다. 한글은 까치밥이다. 한겨울 텅텅 빈 자연의 곳간에서 허기진 까치가 굶어죽지 않도록 남겨둔 눈물이다. 한글은 홍시다. 이빨 빠진 나이든 호랑이를 위해 저를 부드럽게 녹인 홍시의 보시다. 한글은 홍어다. 삼복더위에도 썩지 않고 저를 삭혀서 가난한 사람들의 밥이 되어 준 홍어의 마음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샘이 깊은 사랑이다. 집현전 학자들의 뿌리 깊은 기원이다. 한글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이다. 한글은 단군이고 배달민족이고 지구촌이고 우주의 향기다. 한글은 남실거리는 강이고 그늘 깊은 정자나무고 비를 품은 마파람이고 잘 여문 나락이고 품 너른 평야다. 누구나 깃들여 농사짓고 탑을 쌓고 서로 어우러져 웃는 고향이다. 한글은 버선발로 달려 나오시는 어머니고 뒷짐 지고 흠흠 헛기침으로 반가움을 감추시는 속 깊은 아버지다. 누구라도 한나절만 머리 싸매면 저희의 마음을 한글로 풀어쓸 수 있다. 한글은 사람과 사람을 건너는 뿌리 깊은 징검다리다. 별과 별을 건너는 샘이 깊은 사랑이다.
천만다행
지난 9월20일부터 9월23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천년고도 경주에서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가 열렸다. 1회 대회 때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루다가 기어이 못 가고 올해는 시낭송이라는 의무가 걸려있어 ‘천만다행’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천만다행’에는 경주시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의 우호 덕분에 참가비가 실비의 삼분의 일 수준이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묵을 숙박비로 3박4일의 일정이 해결되어 거의 ‘공짜’(?)로 대회 참석이 가능했음으로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둘레가 약 8km인 보문호를 중심으로 우리가 묵을 현대호텔을 비롯해서 콘도 등 숙박과 편의시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호수를 빙 에둘러서 벚나무 그늘아래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낮에는 일정에 참가하고 새벽과 밤에는 산책과 사유를 하는 치유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여장을 풀고 호텔방에서 보문호를 내려다보니 하늘이 이미 안방 차지다. 새털구름 한 점까지 품어 의붓자식에게 다 내어주고 호수는 사라졌다. 하늘이 호수에 빙의한 것을 내려다보며 나도 이 호텔 이 방에 자리 잡은 동안은 내가 빙의한 주인이려니 욕심부려본다.
예정보다 도착시간이 조금 늦어서 부랴부랴 셔틀버스를 타고 경주화백컨벤션센터로 향했다. 대회장은 플랫카드와 기념품, 대회책자 등이 미리 대기하고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는 이미 뜨거운 열기에 쌓여 있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잎들과 뿌리의 수고와 땀방울들 덕분에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여는 공연으로는 1000여년이 지나서야 복원된 신라의 현악기인 신라금의 연주가 있었다. 신라금은 통나무의 속을 파내어 만든 악기이므로 울림이 진중하였다. 일본에 몇 개 남아있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설계도를 가져와 복원했다니… 1000여 년 동안 잃어버렸던 혈육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귀한 소리를 무릎 꿇은 심정으로 들었다. 한 음 한 음이 천 년을 건너왔다 생각하니 벅차오르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상문 대회장님은 대회사 초입에서 “대회를 취소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수없이 망설였다. 와보니 작가가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이 문학이다. 이 대회가 재난을 극복하는 희망이 되길 바란다.” 며 의미심장하게 토로했다. 실은 우리 모두 망설였다. 주변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우리나라 지진 관측 이래 역대 최대라는 리히터규모 5.8의 본진을 겪은 경주, 천년을 버틴 문화재마저 여기저기 외상을 입었다. 여진이 무려 4백여 차례 오고, 아직도 양산단층은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 삼국시대, 삼국유사, 조선시대 실록에까지 수많은 지진의 기록이 있다. 김홍신소설가는 사회를 보면서 “내 영혼을 흔들려고 왔다. 내 영혼을 흔들어 땅을 겁주겠다.”고 일갈했다.
러시아전쟁 때 일이다. 시민들은 모두 피난가고 14세 소녀가 도시에 혼자 남아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시민들이 “얘야, 두렵지‘않았느냐?”고 묻자 소녀 왈 “나는 책만 읽고 있었어요.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다. 지금 이 현장에 두려움 없이 우리가 서 있는 이유인 것이다. 1차, 2차의 세계한글작가대회를 위해 그야말로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최양식 경주시장님은 “한글문학은 한민족의 자존이자 실존으로 영원할 것이며 세계의 영역에서도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인류의 정신을 실천하는 중심이 될 것이다. 경주는 160여기의 왕릉과 역사를 대화 하는 곳이니 만큼 역사의 복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요지의 환영사가 있었다.
국제한글문학운동회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는 “한글문학, 세계로 가다”는 주제로 국제펜클럽한국본부에서 주최하였다. 세계 18개국, 84명의 연사와 500여명의 문인, 한글학자와 전문가, 시민 3000여명이 참여하는 국내 유일의 국제한글문학운동회다. 20일 개회식을 출발점으로 하여 경주화백컨벤션센터, 동국대학교100주년기념관,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특별강연, 주제발표, 시낭송, 한글문학축제 등으로 풍성한 대회를 꾸려나갔다. 러시아대표문호인 고려인3세 아나톨리 김과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예자오옌, 일본의 한글전문가인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 신달자 시인, 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이번 대회 연사로 참여해 특별강연과 주제발표, 문학 강연을 통해 한글문학의 현재와 미래, 세계화와 그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였다. 세계에서 한글로 문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중심으로 한글문학의 특별한 의미를 성찰하고 문학이 지닌 인류평화에 대한 의지와 한글작가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21일 오전에는 특별강연(미래를 여는 꿈, 언어와 문학)이 있었다. 김홍신소설가의 사회로 신달자 시인, 러시아의 소설가 아나톨리 김, 중국의 작가 예자오옌, 일본의 언어학자인 노마 히데키, 그리고 대산문화재단의 상무이사인 곽효환시인의 발표가 이어졌다.
신달자시인의 특별강연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말(한글)들」에서는 어머니의 “약속 지키는 딸”, “쳐다보라, 올라가라”, “그래도 니는 될끼다”, 김남조선생의 “다시”, 박목월선생의 “내 대표작은 오늘밤에 쓸끼다”, 박두진선생의 “보이지 않는 마음도 들어 올리는 것이 시인인데 이 돌쯤은 들어 올려야지.......” 등을 예로 들어 자신을 성장시킨 말(한글)의 힘을 강조했다. 일순간 부러웠다. 그런 훌륭한 분들을 스승으로 모신 시인은 참으로 운이 좋았을까? 돌이켜 보면 나도 얼마나 훌륭한 부모님과 스승을 만났던가! 똑같은 이슬을 먹고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독사는 독을 만들지 않는가…나에게 오는 말들과 글들을 어떻게 받아먹을지는 나의 토양의 문제인 것이다.
아나톨리 김은 「언어와 문학-인류의 과거와 미래의 열쇠」에서 “언어는 옷이다. 언어의 옷을 입은 의식에 의해 우리가 상상하는 현실적인 세계가 만들어졌다. ‘과학, 발전, 문명’ 이것은 모두 언어다. 언어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우주도 인간 언어의 목록 없이 이렇게 튼튼하고 안전하게 건설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며 인류의 과거와 미래의 열쇠가 언어와 문학에 있음을 강조했다.
예자오옌은 여전히 세계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동양문학에 대해서 겸손하게 이의를 주장했다. “적절한 평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창작을 좋아한 사람은 이런 환경에서 난처하고 외로울 겁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꼭 의연히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문학의 판도 또한 변하며 세계문학 속의 중국문학, 한국 문학, 나아가 동양문학은 모두 자기가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갈 것입니다.”라고 본인의 말처럼 겸손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노마 히데키는 「언어를 살아가기 위하여-언어존재론이 묻는, <쓴다>는 것」의 주제로 “까마득한 오랜 시간을 거쳐 인류가 문자를 새겼다. 이리하여 <쓰여진 언어>가 탄생하였다. 이 <쓰여진 언어>는 시각적인 세계에 실현되는 것이었다. 즉 <쓰여진 언어>는 빛의 세계의 사건이다. 말은 소리의 세계에서 글로 인해 빛의 세계로 펼쳐진다. 오늘날의 우리는 <언어의 인류사적 위기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언어를 묻고 사고하는 말을 구축하여야 한다. 우리는 기호화된 말, 양으로 환산된 말, 물상화된 말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니면 묻고 사고하며 희망을 여는 언어를 함께할 것인가, 그러한 결정적인 인류사적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는 언어를 살아야 한다. 우리가 <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인류사적인 언어 위기 단계> 속에서 <쓴다>는 것을 뜻한다.
곽효환시인은 「한국문학 세계화의 현황과 방향-2000년 이후를 중심으로」에서 “2000년 이후 한국문학은 어느 때보다도 조직적으로 바깥세계와 교류, 소통하고 있다. 이 과정이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교류의 관계가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대등한 차원에서 양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가고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국제문화포럼등을 통해 세계 문호들과 당대의 전 지구적인 문제를 함께 논의함으로써 문학담론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데서 생산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갔다는 면에서 한국문학은 바야흐로 변방의식에서 벗어나 세계문학의 중심을 향해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문학이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에너지와 열망을 보이고 있다.’며 ‘새로운 문학담론을 추동하는 동력을 보는듯하다.’는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여한 저명한 외국작가들의 상찬이 한국문학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현주소이자 지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앞으로의 과제로“체계적인 번역, 출판지원정책수립과 집행,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 집중번역 및 젊은 작가들의 작품소개, 영어권을 비롯한 주요언어로의 번역, 출판 활성화, 전문번역가의 지속적인 양성, 한국문학 보급을 위한 해외한국관련 기초여건조성, 한국문학번역지원기관 간의 협력과 전문 행정인력 육성 등이 그것이라고 하였다.
오후의 주제발표1은 (세계한글문학의 오늘과 내일) -세계 속의 한글문단, -한글로 문학하기, -한글문단이 나아갈 길이 분임으로 나뉘어 발표와 토론 및 질의응답이 있었다. 밤에는 경주문인협회 주관으로 시낭송의 밤이 있었다. 서정주시인의 신라에 대한 연대시를 경주문인협회회원들이 시극으로 꾸며서 공연했다. 문인들은 역시 대단하다. 의상복원은 물론이고 암송과 연기까지 완벽했다. 필자도 ‘김치엄마’를 낭송하고 박수를 받았다. 시낭송 덕분에 대회에 참여하게 되어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3일차인 22일에는 주제발표2가 (한글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통일을 준비하는 문학인의 자세-외국인을 위한 한글과 한국문학교육, -한글문학의 세계화: 외국인이 본 한국문학으로 분임으로 발표 및 토론, 질의응답으로 진행되었다. 오후에는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 있는 동국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모국어의 지역성과 세계성)이라는 주제로 아나톨리 김 등의 작가 군에 의한 문학강연이 동시통역으로 진행되었다.
저녁에는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저녁 만찬과 한글문학축제 및 폐회식이 있었다. 만찬 후에 공연장으로 옮기니 수많은 경주시민들이 공연장을 채우고 있었다. 최양식 경주시장, 김종, 나태주 시인 등의 아름다운 시낭송과 가수 안치환 등의 축하공연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아름다운 밤을 만들었다. 특히 폐회식에서는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 경주선언문‘ 발표가 있었다. “지진으로 재난의 위험에 처한 경주 시민과 동포들, 세계인들에게 위로와 치유, 희망의 뜻을 전하며 이를 실천하고 인류문화자산을 지키며 재난을 극복하는데 이바지하는 문학인이 될 것”을 이상문대회장이 대회참여작가들 이름으로 선언하였다. 또한 이상문대회장은 “지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손님을 맞이한 경주시민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내진설계가 잘된 행사장 건물과 숙소 등도 본 대회를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고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실로 그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다. 재난 복구에도 정신없을 텐데 시장님과 여러 공직자들은 우리 행사에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해주었다. 우리는 재난 지역 중심에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을 정도로 환대를 받고 경주를 만끽하고 즐길 수 있었다.
4일차인 23일이다. 이제 돌아간다. 아침 호수에 안개가 자욱하다. 여전히 호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자욱한 보문호에 하늘도 감히 놀러오지 못했다. 호수도 섭섭해서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안개를 피워 올려 안개손바닥으로 눈을 가린 게분명하다. 같은 방 한국어교사인 재미교포와 마음의 선물을 교환하고 다음을 기약해본다. ‘다음’과 ‘새로’가 있어서 인생은 살아볼만한 것이리라. 다시는 오지 않을 ‘다음’이라도 그것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므로 ‘다음’을 기약해보는 것이다. 호텔에서 아침상을 받고 왕릉 및 감은사지 등의 문학역사기행을 끝으로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문학의 향기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얼굴무늬수막새가 있다. 경주영묘사 터에서 출토된 기와에 사용된 수막새로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유일한 유물이다. 한쪽 모서리가 나간 수막새에 그려진 사람 얼굴에는 눈모양이나 입모양이 웃음으로 가득하다. ‘신라의 미소’라고 불리는데 신라 사람들이 얼마나 웃기를 좋아했으면 기와에까지 웃음이 남아있을까? 그 웃음이 동시가 되었다. 천 년을 건너온 신라사람들의 미소가 다시 깨어나 우리에게 미소를 선물한다. 기와 한 장도 이럴진대 문학의 향기는 또 얼마나 먼 미래까지 미소 짓게 할 것인가…
옛 신라 사람들은/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웃는 집에서 살았나봅니다.//기와 하나가/처마 밑으로 떨어져/얼굴 한쪽이/금가고 깨졌지만/웃음은 깨지지 않고//나뭇잎 뒤에 숨은/초생달처럼 웃고 있습니다./나도 누군가에게/한 번 웃어주면//천년을 가는/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웃는 기와 흉내를 내봅니다.( 웃는 기와-국립경주박물관에서, 이봉직동시집,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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