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 수필

[스크랩] 사이회 6학년 1반 수학여행 보고서

전숙 2015. 6. 20. 21:49



사이회 6학년 1반 수학여행보고서

                                                                          전 숙이가 썼어라 

 

1. 블루오션

~복도 많다고 할까나~~ 때맞추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출몰하니 뉴골든브리지호는 사이회가 통째로 접수했겄다! 사무장님께서는 앞장서 진두지휘해주시고 전체 승무원들은 지극한 마음을 기울여 사이회가족들을 대접해주었다. 물론 위동항운의 사장님이시자 사이회 황혜숙 학생의 서방님이신 최장현님의 반짝반짝 빛나는 후광이 한 몫 하였지만 승무원들의 친절은 가식적이 아닌 몸에 밴 습관처럼 보였다.

광주회장단과 서울회장단의 노심초사 덕분에 사이회 6학년 1반 수학여행은 그럭저럭 41명으로 한 반을 꾸릴 수 있었다.

 

2. 마흔 개의 강산

참 감개무량하다는 말, 우리에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20에 졸업하고 40년이 지나서 만난 여고동창생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줌마를 건너서 할머니 반열에 오른 친구들의 얼굴은 그러나 아직 고왔다. 곱게 늙어가고 있었다. 늙어간다는 말을 쓰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진다. ‘나이 들어간다로 말을 바꾸어본다. 나에게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은 나이 육학년이 되었다. 말은 안 해도 모두들 한 수심愁心했으리라. 거울 들여다보며 견적도 내보았으리라. 그러다가 추슬렀으리라. 인생은 육십부터라는데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가요 한 소절 따라 불러보며 그 심정 절절해졌으리라.

어떤 학생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에서 할머니가 되었으리라. 어떤 학생은 백마 탄 왕자님을 그리며 아직도 숫처녀로 남아 있으리라. 어떤 학생은 많이 앓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친구에게도 숨기고 싶은 걱정거리가 있었으리라. 그래도 다 견디고 예순의 강산을 넘어섰으리라. 예순을 공자님은 이순耳順이라 하였다. 귀가 순해진다는 말, 무슨 말을 들어도 이해 못할 말이 없다는 말일지니, 우리 친구들 싸울 일은 없겠네...

 

3. 꽃이 된 여인들

새벽이슬을 맞고 함초롬히 핀 꽃들처럼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꽃들이 41송이의 꽃다발로 묶였다.

 

꽃다발

                    전숙

 

꽃다발을 본다

 

아름다운 꽃다발은

꽃의 색이 다 달라야한다

꽃의 키가 다 달라야 한다

꽃의 얼굴이 다 달라야 한다

 

모두 장미라면

모두 백합이라면

나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겠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우리의 모서리를 사랑하리라

구르다가 구르다가

깨지고 부서졌을 상처를 공유하리라

 

흉터가 웃음이 된 꽃들아

한 다발로 묶여서 더 아름다운

무지개 같은 꽃들아

 

조마조마 건너온 외나무다리도

돌아보면 향기롭나니

언제까지나 향기로울 꽃다발들아.

 

4. 배를 타다

인천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서울 친구들과 해후하였다. 금방 알아보는 친구도 있고 한참 헤매는 친구도 있다. 알아보거나 말거나 핏줄이 땡기듯 서로 서로 감전된다. 사십년이 순식간에 역주행 한다. 꽃잎 어딘가에 옛 모습 남아 있다. 통박 한참 굴리다보면 아하! 돌아온다. 금세 꽃송이들 한 다발로 묶인다. 이번 수학여행의 스폰서인 최장현사장님이 인사말씀을 하신다. 꽃들이 좋아하는 미남에다 입담도 찰져서 모두 반해버린다. 위동항운은 한중국교수립 전인 1990년도에 설립되었다 한다. 한국과 중국이 반반 투자한 위동항운은 한중국교수립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한다. 에스컬레이터 두 개를 올라 뉴골든브리지호에 승선하였다. 황혜숙 사모님 덕분에 하루에 18만원씩 한다는 2인실 (방 이름이 로얄스위트룸이던가?)에 짐을 풀었다. 애석하게도 방이 모자라서 유선경, 임해숙, 김광숙 임원진은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쳐서 욕실도 없는 3인실을 썼는데... 정말 미안하그만이라...

와인파티에, 호텔급 뷔페에, 선상공연에, 불꽃쇼까지...

황홀뻘쩍지근해서 6학년 1반들 모다 홀랑 정신줄을 놓아버렸는디, 게다가 우리들의 가수들 김남숙, 박경신, 문옥희, 고경하, 조현덕 양들이 우리의 심장마저 녹여버리고 말았다. 한데 어우러져 고고씽씽하다가 로얄스위트룸에서 쿨쿨...

이튿날 조신한 조식을 먹고 하선하다가 우리의 파워우먼인 김정순이 에스컬레이터에서 꽈당 넘어지는 바람에 모다들 십 년 감수했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느라 지체하는 바람에 밥은 먹었는가 모르겄네 잉? 우리는 화려한 중국식당에서 산해진미를 먹었는디...

 

5.이튿날 구경하기

팔도유람도 아니고, 중국 구경한다고 17시간이나 3만톤급의 배를 타고 건너 왔는디, 그것도 정말 입에 올리기 민망한 환갑 여행인디, 좌석에 앉기만 하면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한편으로는 꾸벅거리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한국에서부터 우리를 안내해준 가이드는 아직 총각이라는디 어째 홀아비 포스인 선동관군이고, 중국현지가이드는 이제 신혼 두 달째라는 김궁란양이다. 선동관군도 나름 재미있게 우리를 가이드해주었다. 집에 돌아가서 제발 저를 향한 상사병만 앓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궁란양은 연변, 선구자 가사에 나오는 ~~~ 푸른 솔이있는 바로 그 용정 출신의 우리 한민족이었다. 더욱 반갑고 애틋한데 말끝에 을 붙이는 습관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감사합니다~그 말투가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해주었다.

첫 코스는 팔대관이다. 독일이 100년간 임차할 목적으로 청도를 계획적으로 개발하였으나 17년 만에 돌아가고 그 뒤를 이어 일본이 청도에 욕심을 내자 북경에 있는 대학생들이 5.4운동을 일으켜 일본의 야욕을 막고자 하였다. 그 운동을 기념하여 5.4광장을 조성하고 붉은 횃불모양의 탑을 세웠다. 팔대관은 독일이 조성한 산책길이다. 여덟 개의 길마다 이름이 있고 가로수의 수종을 다르게 심었다. 옛 독일 대사관을 비롯하여 유럽풍의 건물이 많아서 중국속의 유럽으로 불리운다고 한다. 팔대관을 지나서 해변가가 나오고 다시 5.4광장으로 이동하였다


                                                                      5.4광장에서

 

일본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그렇게 큰 죄를 짓고도 뻔데기를 너무 많이 먹었는지 그렇게 뻔뻔할까? 다시금 울분이 올라오고 속이 터진다. 지청구하듯 아베에게 군밤을 먹인다. 중국은 신호등이 없는 거리에서는 자동차가 왕이다. 수십 명이 건너고 있어도 막무가내로 달린다. 위해에서는 해변도로를 우리 일행이 건너는데 순순히 차 한 대가 섰다. 와 우리가 환호하는데 자동차번호가 8888이다. 중국사람들은 8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번호판에 8자를 넣으려면 엄청 돈이 비싸다고 한다. 84마리나 있으니 대단한 부호가 틀림없다. 우리끼리 하는 말 있는 놈이라 역시 여유가 있네.” 덕분에 위험한 도로를 무사히 건넜다. 신호등에 대해서 또 할 말이 있다. 빨강불이나 파랑불이나 신호등에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 베트남에서던가(?)도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런 시스템은 우리도 도입하면 좋을 것 같다. 홍보사진에서는 한 인물 하는 잔교를 먼빛으로 감상한다. 다녀올 시간 없다고 먼빛으로 등대와 함께 사진만 찍으라 하니 하고 열씨미 휴대폰으로 인증샷만 하였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돌로 교체했다고 하는데 배를 대는 선착장이 상당히 길다. 우리도 저 정도의 선착장은 많은데... 중국사람들은 선착장 끝에 아름다운 정자를 짓고 관광지를 만든다. 하려고만 하면 세계 최고가 되도록 아낌없이 투자를 한다. 공산주의라 가능한 것일까? 투자는 자본의 개념인데 우리도 헛물만 켠 F1이나 아시안게임이나 세계육상대회 , 유니버시아드, 수영대회를 유치하는 것보다는 세계최고의 관광지가 되도록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것이 미래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선조노릇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칭다오맥주가 유명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워낙 비주류인 관계로 심드렁하였다. 맥주공장에 도착하니 그 규모가 대단하다. 1인당 관람비가 만원인데 맥주를 만들기 전 원료맥주를 한 컵 주고 땅콩을 안주로 주었다. 공장을 돌아 나오니 생맥주 한 컵을 더 준다. 원료맥주는 맛이 굉장히 썼다. 한 모금 먹고 고개를 절래절래... 독일이 주둔하면서부터 시작했으므로 그 역사가 일백 년이 넘었다 한다.

부지런히 서둘러서 와인 박물관으로 간다. 맥주 공장은 머리에서 사라질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방공호를 와인박물관으로 개조했다는데 미로처럼 얽힌 내부를 잘 꾸며 놓았다. 역시 와인 한잔을 시음하고 둘러본다. 와인에 대한 모든 것이 다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와인잔부터 와인의 종류, 역사,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이 회합에 참석할 때 입는 의복까지 진열해 놓았다

 

                                                       -와인박물관에서-


오늘의 마지막코스인 소어산의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붉은 찔레꽃과 장미가 만발하였는데 붉은 찔레꽃 사이로 할미꽃이 피었다. 팔순의 노부부가 구경나왔는지 할아버지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모델이 된 할머니는 찔레꽃 사이에서 웃고 있다. ~ 감동의 물결이라니...

시 한 편이 절로 나온다.

 

할미꽃, 찔레꽃보다 더 붉어라

 

                          전숙

 

85세 할머니 사진 찍는다

찔레꽃 미소 틈새로

열서너 살 적 계집아이

수줍은 미소가 향기처럼 번진다

89세 서방님이 흔들리는 꽃망울에 초점을 맞춘다

할아버지도 어느새 까까머리 중학생이다

해오름이나 해넘이나 노을 붉듯이

사랑은 주름살 헤지 않는다

주름살 너머

처음 만나 첫눈에 곱던 색시

처음처럼 가슴 뛴다

할미꽃 붉은 포즈에 찔레꽃 빛 바랜다

할아버지 눈부처에는

할미꽃이 생글 웃고 있다.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니 정말 유럽의 한 도시 같다. 붉은 지붕과 바다가 잘 어우러져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진 한 장이 꼭 필요한 대목이다.


                                    소어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저녁식사는 궁전 같은 규모의 식당에서 최고의 요리로 배불리 먹고, 잠은 5성급 쉐라톤호텔에서 쿠울쿠울~~ 코 골아가며... 차암~ 대부분은 발마사지 받으러 가시고... 나는 간지럼 타는 체질이라...생략

 

6. 벌써 사흘째요


어제 와인박물관이 빠져서 끼워 넣었소. 실은 어제 와인박물관과 사진을 넣었다가 일정표를 보니 다음날이라 나는 내 기억을 의심하면서 지웠었다오. 오늘 카톡에 사진을 올리며 사진 순서를 보니 내 기억이 맞지 않겄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직 쓸만하네했다오.

오늘 봉옥이가 올린 코메디 한 컷이오.

딸네미가 엄마, 브래지어 사이즈 몇 사요?” 하니 엄마가 제일 큰놈으로 사온남.” 하니 딸이 Xxx로 사갔겄다. 엄마가 그 놈을 보더니 이게 뭐야? 동네 젖 다 들어가겄다.” 했다나 뭐라나...

아침에 일어나니 김혜영 며늘님의 사돈이 체리와 사과와 앵두를 한 소쿠리 사 오셔서 오전 내내 눈과 입이 즐거웠나이다.

 

                                                                                    -김혜영사돈님이 현지직송 해오신 체리-

 

 

여기에서 팁으로 산동반도에 대해 몇 마디 정보를 말하리다. 들은 대로이니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소. 면적은 우리나라의 한배반이라 하고 인구는 1억이라 합디다. 첫방문지인 청도는 인구가 900만이고 중국11대 도시라고 합디다. 오늘 갈 위해시는 인구가 280만이고 원래는 작은 촌락이었는데 위동해운 때문에 거대한 도시로 발전했다 하오.그리고 청도를 떠나며 청도대교를 일별했는데 길이가 36.48KM로 바다를 횡단하는 다리로는 세계에서 제일 길다 합디다. 1위안은 요즘 환율로 180원이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워 아이 니라 하니 중국에 사랑여행 갈 사람은 꼬옥 기억해두시오 잉?

산동반도에는 노산과 태산이 유명하다 하오. 우리는 위해로 가는 도중에 있는 노산을 택했소. 높이가 1134M라 하니 우리 무등산(1138M)과 형님동생이오. 오르다가 못 오를리 없건만 쬐끔 올라 폭포만 보자 했으나 가뭄으로 폭포는 진작 말라 버려서 헛물만 켜고 돌아왔나이다. 노산은 거북이 형상으로 이루어진, 차라리 산맥이라 생각될 만큼 줄기가 긴 산인데 처음에는 와우산이라 불리었다 하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닦달을 하자 서복이 온 산에 사람을 풀어 노동을 시키니, 진시황이 산을 쳐다보고 산 전체가 사람의 노역으로 요동치는 것을 보고 뫼산에 힘쓸노자를 합하여 옥편에도 없는 신조어를 만들어 노산으로 이름 지었다 안 허요. 폭군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나 보오.

 

 

                                                                         -노산흔들다리에서-

 

 

노산을 떠나 위해시로 가는 도중 모두 쿨쿨...

자는 모습 모두 찍었으나 이쁘게 자는 모습 귀한지라 맘씨 좋은 광숙과 정순의 샴쌍동이 포즈를 올리오.

 

 

 

 

 

위해시에 들어서자마자 동해 해변(우리는 서해고 중국은 동해)을 산책하였소. 긴 모래해변과 아름답게 꾸며놓은 정원을 산보하면서 중국 거리 연주가들의 연주도 듣고 망중한을 보내다가...

 

                                                              -거리(해변)의 악사-

 

급하게 저녁을 챙겨 먹고 중국역사를 다룬 화하쇼를 관람하러 달려갔소. ~ 산 전체를 무대로 만들었습디다. 80조를 투자했다 하는데 정말 인해전술과 돈전술에 제압당하는 기분이었소. 노아의 방주 같은 관람석은 360도를 회전하고 홍수시대를 표현할 때는 산꼭대기에서 물이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관객들은 모두 물벼락을 맞았소.

 

                                                                             -화하쇼무대-

 


                                                                                                                -홍수장면-

 

 

 

오늘 호텔은 4성급인 위해위호텔이오. 어제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피곤하니 발 닦고 쿨쿨...

 

7. 에공~ 나흘 째자 중국 마지막 날이오.

   

호텔 로비에 내려오니 아침은 한식, 중식, 양식 중 골라먹으라는데 그 중 중식만 뷔페라 마음 놓고 먹으려고 중국식당에 가서 실컷 혀와 눈동자 호강시키고 배도 불룩하겄다... 돌아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글쎄 대리석이라 모두 공작부인이 되어 사진 한 컷씩 찰칵, 찰칵 와~ 명품사진이요!

 

                                                    대리석 계단 앞의 우리의 명품 가수 조현덕양

 

단체카톡 보시면 사진 즐비하니 조현덕으로 만족하고...

위해의 영성시에 있는 석도의 적산법화원으로 달려갔다. 법화원은 사이회 학생들이 주지하듯이 당나라 때 우리 신라의 영웅인 장보고가 세운 사찰이다. 동양의 3대 여행기 (복습: 현장의 대당서역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중 엔닌의 여행기에 따라서 복원했다고 한다. 표류해온 엔닌을 법화원의 신라인과 장보고가 도움으로써 엔닌은 당에서 불법을 배울 수 있었고 일본으로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돌아간 엔닌은 일본에서 영웅이 되었고 여행기를 쓰게 되자 여행기 내용에 장보고에게 썼던 감사편지를 넣었다. 엔닌이 입적하자 제자들은 스승의 유언대로 히에이산 서쪽 기슭에 적산선원과 신라신사를 짓고 신라명신상을 모셨다. 이 신라명신상은 다름 아닌 장보고인 것이다. 우리가 달려간 적산법화원에는 장보고기념관과 장보고 동상, 화려한 분수쇼를 자랑하는 연화분수대, 그리고 산 중턱에 높이 58m의 적산명신이 건립되어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적산명신을 장보고장군이라 했다 한다. 이제는 동북공정의 일환이라 믿어지지만 장보고는 빼고 적산명신으로만 불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북공정은 대국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거짓으로 국가의 격을 높일 수는 없다. 진실만이 대국다운 국격을 갖출 수 있다. 나는 적산명신과 장보고의 동상이 꼭 빼닮은 것을 보았다.

 

 

                                                                   - 적산명신으로 돌아온( 현신한) 장보고-

 

 

                                                                           -  장보고장군 동상-

 

                                                                                  - 연화분수대-

적산명신이 된 장보고 장군은 관운장이 신이 된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둘러본 법화원을 떠나 마지막 점심을 역시나 중국요리로 장식하였다.

 

 

                                                                                                                   - 마지막 중국요리를 먹은 식당-

 

돌아올 때는 26,400, 32,000마력의 위동페리를 탔다. 올 때보다 깔끔하고 정리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면세점이 두 배나 컸다. 역시나 사장님의 배려로 면세가에서 20%나 할인된 가격으로 선물 한 가지씩 챙기고... 모두가 소망했던 오휘의 에어쿠션은 물거품처럼 사라졌지만... 덕분에 황혜숙의 걸죽한 입담으로 에어쿠션 산 것보다 더 즐거웠어라.

‘42회 환갑여행이라 쓰인 민망한 플랫카드를 배경으로 하고 마지막 밤을 찢어버렸다. ~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아직 펄펄 나는 기운들에 환갑글자가 알아서 깨갱사라지고...

 

                                     - 선상에서의 마지막 밤 -가수사무장님과 사이회 6학년 1반 학생들- 
 

 

무사히 귀국하니 서울 친구들이 맛있는 쇠고기보신탕을 점심으로 사주었어라.

중국요리 아무리 산해진미라 해도 이 뚝배기맛 못 당하지라 잉...

잘있어요~ 잘가세요~ 한바탕 포옹과 악수로 섭섭함을 달래고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 그렇게 평생웬수가 아기다리~ 고기다리~ 기다리는 컴백홈 했구만이라.

 

 

                                           -   서울친구들과 헤어지며-

 

마지막 보너스-최장현 사장님 미남 얼굴이요.

 

 

 

 

못 온 친구들 겁나게 섭섭하고, 같이 간 친구들 무진장 반가웠네. 우리가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나...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그리워하세나...안녕!


출처 : 사이회42
글쓴이 : 전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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