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 수필

국립나주박물관에 가면 호모사피엔스의 눈물탑이 보인다

전숙 2014. 8. 24. 12:44

 

 

박물관탐방기

국립나주박물관에 가면 호모사피엔스의 눈물탑이 보인다


                                                      전숙(시인)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멜론을 깎는다. 표피에 밧줄로 엮은 듯한 돋을무늬가 있다. 아마도 처음에는 부드러운 속살이었을 표피를, 몇 천 가닥의 실을 꼬아 만든 밧줄로 엮어 두꺼운 껍질로 덮었을 것이다. 그  촘촘함이라니.......땅에 떨어져도 와장창 깨지지 않도록 그토록 촘촘히 엮었으리라.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최초의 멜론의 어미는 수 만년의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그렇듯 명줄들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면 눈물로 짠 사랑의 옷감처럼 아름답지 않은 명줄이 없다.

 박물관에 간다. 박물관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쌓여있는 역사책이다. 새의 날갯짓이나 물고기의 아가미호흡이나 인간의 직립보행은 다 까닭이 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성경의 천지창조처럼 태초에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더라도 피조물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환경에 적응해왔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본다. 소낙비 쏟아지는 나뭇가지에 앉아 새끼를 안고 떨고 있는 원숭이가 애처롭다. 니체는 자신의 처녀작인 『비극의 탄생』에서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깊이는 지식과 지혜와 땀과 눈물의 깊이다. 나는 무서운 깊이를 가진 인류의 후손이어서 지금 행복하다. 눈과 바람과 비를 가려주는 집과 따뜻하고 시원하고 게다가 예쁘기까지 한 옷과 맛있는 음식들, 도덕과 철학과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온갖 예술들.......

 이렇게 아름답고 오묘한 사이버세상까지 넘나들며 풍요를 즐기기까지, 저 헐벗은 원숭이와 다름없던 수십만 년 전의 인류의 최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높고 높은 눈물탑을 쌓아왔는지, 그 높이에 이르기까지 터파기와 그 기소는 또 얼마나 깊고 단단했는지, 박물관을 안광지배철(眼光紙背徹)의 눈으로 꿰뚫어보리라. 그 눈물겨운 시간을 함께 되걸어보리라. 그리고 그 고단함을 꼭 안아주리라.


박물관으로 가는 길


 국립 나주박물관은 나주시내를 에돌아 영산포 복판을 건너, 영암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안내표지가 나온다. 수천 년 동안 마한을 지킨 반남고분군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고분군은 자미산을 중심으로 고분 40여기가 분포하고 있다. 주위는 온통 농경지여서 사방이 툭 트여 있다. 박물관 현관 오른편으로 작은 오름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박물관 옥상에 이른다. 옥상에는 각종 꽃이 심어져있다. 꽃을 배경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노라면 영혼의 시야가 마한의 하늘까지 닿는다. 둘러보면 고분군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저 고분의 주인들도 이천여년 전에 우리처럼 이 길을 걸으며 웃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농사도 짓고 과일도 따먹으며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만하면 박물관을 만날 준비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뿌리를 더듬어보기로 한다.


미래형 박물관


 관람객과 소통하는 미래형박물관을 지향하는 국립나주박물관은(이하 박물관)국립박물관 중 최초로 수장고를 개방하였다. 영산강유역의 고분문화를 중점적으로 수집, 보존, 전시할 목적으로 문을 연 박물관은 자연과 유적 속에서 느림과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강과 함께 흘러온 오랜 역사의 향기를 음미하며 옛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공간인 것이다. 슬로시티 나주에 걸 맞는 박물관이 세워진 것에 나주인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다.

 박물관은 1층과 지하1층으로 설계되어 있다. 1층에 있는 제1전시실은 중앙홀 왼쪽에 입구가 있다. ‘-역사의 여명, -마한의 형성, -영산강 유역의 고분문화, -강의 길, 바다의 길’ 의 4가지 존으로 전시 공간이 연결되어있다. 지하1층에 있는 제2전시실은 ‘고고학의 세계’와 ‘수장전시’ 공간으로 나뉜다. 고고학의 세계는 과거 인류가 남겨 놓은 흔적을 통해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고고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과정을 알아보는 공간이다. 영암 자라봉, 고분 토층 단면을 볼 수 있으며 한국의 고분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수장전시는 발굴, 기증, 구입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박물관에 입수된 문화재들의 관리, 보관되는 수장고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또한 문화재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문화재의 보존처리, 과학적인 분석, 문화재 등록과 검색 과정도 체험적 전시를 통해 경험해 볼 수 있다.

  한반도의 인류역사는 70만 년 전까지 추정된다.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유적의 지하 6m에서 출토된 석기층이 일본학자들에 의해 30만년~35만 년 전으로 연대가 측정되었다고 한다. 이는 유럽의 네안데르탈인보다 앞선 시기라 한다. 아무튼 까마득한 옛날에 네 발로 기던 우리의 조상이 몸을 일으켜 앞발이 손이 되고, 손이 생긴 구석기시대인들은 돌의 모서리를 떼어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뗀석기’의 시작이다. 제1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나주 용호구석기유적에서 수습된 뗀석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다가 서늘해진다. 수만 년 전 비 맞는 원숭이와 다름없던 나의 수천 대 할아버지는 뗀석기로 사냥감을 해체하면서 아폴로11호 달착륙의 환희를 맛보았으리라. 신석기시대의 유물전시목록에는 조와 기장 같은 씨앗이 있다. 씨앗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씨앗의 강에는 이쪽과 저쪽의 양안에서 선조와 후손으로 갈리며 동류의 뜨거운 애착이 흐른다. 한 알의 씨앗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강이 흐른다. 견뎌왔던 것, 견디고 있는 것, 견뎌내야 할 흙탕물과 누려야할 복락의 생수가 함께 흐른다. 억센 껍질을 부드럽게 갈았던 갈판과 갈돌이 나란하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기장의 껍질을 벗기는 나의 할머니를 추억한다. 다람쥐처럼 도토리를 저장해 겨울을 건넜던 신석기인들, 그 시절에 벌써 일본과 왕래가 있었던지 일본규수지역에서만 나온다는 흑요석의 뗀석기가 우리 유적지와 일본 유적지에서 같이 발견되고 있단다.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는 신석기토기인 빗살무늬토기를 들여다본다. 인류는 타고난 예술가다. 토기를 빗자마자 빗살무늬를 넣고 여러 디자인을 시도한다. 조가비팔찌로 멋을 부리고 뼈로 바늘을 만들어 옷을 지어 입고 농사를 시작하고 움막을 지어 정착을 하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았다.

 ‘김병만표’ 신석기 시대가 방송에서 한창 인기다. 구경하는 재미로 그들의 눈물맛을 알까마는 그때의 족장도 김병만처럼 부족의 안위와 입성과 먹이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으리라. 아마도 ‘平和’라는 단어가 그때 태어났으리라. 쌀이 모든 목구멍으로 고루 들어가야 평화가 온다는데, 수천 계단으로 나뉜 현대의 차별화된 분배방식으로 평화를 유지하기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일 터. 지구촌에 전쟁이 끊임없는 이유일 것이다.

 고대의 유적들이 발견된 지명에는 곡(谷)자가 들어있는 게 많다. 전곡, 군곡, 운곡.......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선사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시해둔 모형들을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나도 신석기 시대로 안착한 기분이다. 해변에 서서 조개껍질을 꿰어 목에 걸어본다. 동물의 뼈를 만져 오늘의 운수를 점쳐본다.  

 해남군곡리 조개무지는 철기시대 유물이다. 패총을 수직으로 잘라서 원판을 전시했다.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넘어가는 약 오백여년의 시기가 역사책처럼 오롯이 보존되었다. 중국의 화폐인 화천이 나오고 쌀, 밀 같은 씨앗이 보이고 조개 사이사이에 질그릇과 철기 부스러기, 석기, 점뼈, 짐승뼈.......들이 옹기종기 섞여있다. 하나하나 더듬어 보물을 찾듯이 오백년의 시간이 잠들어 있는 패총을 음미해본다.


마한의 하늘


 드디어 마한을 만난다. 마한이 다른 유적보다 한 걸음 더 다정한 이유는 나주박물관이 있는 이 땅이 바로 마한의 땅이고 이 하늘이 바로 마한의 하늘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자료에 의하면 ‘고대 한반도에는 기원전 1세기부터 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고 그 중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자리 잡은 마한이 가장 강성하였다. 50여 개의 작은 나라들이 모인 연맹체였던 마한은 한강유역에서 성장한 백제에게 주도권을 뺏겼으나 영산강유역에서는 6세기 중엽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였다. 마한 사람들은 가을 추수 후 제사를 지내면서 춤과 노래를 즐겼으며 옥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 그래서 영산강 유역에는 마한인들이 남긴 수백 기의 고분들이 남아있다. 이 무덤에는 독널, 즉 거대한 항아리 2개를 붙여 만든 관이 묻혀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독널 안에서 발견된 금동관과 금동신발, 봉황장식이 달린 큰 칼, 창, 화살 등은 토착색이 강한 마한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독널 무덤의 발전과 소멸은 영산강유역 마한의 성쇠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로 마한의 역사가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독널, 그 이름도 찬란한 국보 제295호 금동관, 금동신발 등 수많은 마한의 유적이 전시되어 있다.

 2천여 년 전, 이 땅에서 강성하게 타올랐던 마한은 한반도 유일하게 겹아가리단지를 빚었고 아름다운 새무늬 청동기를 제작하였으며 틀에 부어 유리구슬을 만든 거푸집이 담양태목리유적과 광주선암동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와! 대박이네! 마한이 유리구슬을 만들다니! 내 얕은 지식으로 유리는 모두 수입품인 줄 알았는데, 우리 마한에서 유리구슬을 만들었단다. 거푸집의 틀을 보니 심지를 꽂을 작은 구멍이 유리알마다 뚫려있다. 색색의 유리알과 옥을 꿴 목걸이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목걸이와 똑 같다. 수천 년을 건너온 지금도 그 반짝임의 영롱함이라니! 그래서 박물관은 늘 새롭다. 유물들이 걸어 나와 나에게 스며들고 그것들이 강물처럼 흘러서 현대문명의 총아인 스마트폰이 만들어진 것이다. 말씀 그대로 받들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다.

 공주 장선리의 마한유적에서는 지하로 깊게 파내려간 토굴이 발견 되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렸다고? 조형물을 보면서 나는 내 피의 원류에 다가감을 느낀다. 사춘기 때 꾸었던 셀 수 없는 꿈,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무서워서 벌벌 떨던 꿈,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키 크느라 그런 꿈을 꾼다고 엄마는 나를 달래주었지만 나의 의문은 풀리지 않고 수십 년 동안 그 꿈에 물음표를 붙여 두었다. 오늘에야 나는 속이 시원하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들었다. 나의 유전지도에 새겨진 사다리가 마한의 토굴의 사다리였구나! 나는 마한 목지국의 가죽신을 신고 옥목걸이를 두르고 비단옷을 입은 공주였을까? 짚신을 신고 삼베옷을 걸친 약초 캐는 산처녀였을까?

 1917년 일본인에 의해서 신촌리9호분에서 금동관, 금동신발이 발견되었다. 잠자던 마한이 깨어나 드디어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이 공룡알 같은 독널을 매장문화로 삼은 이유는 알의 의미, 즉 부활에 대한 희망이었으리라. 그래서일까? 독널에 새겨진 문양이 고동치는 혈관 같다. 부활한 마한은 이제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마한 속으로


 마한을 보러가자. 마한을 즐기러 가자. 마한을 꿈꾸러 가자. 금과 은과 비단을 보배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물산이 풍족했던 마한, 나무로 만든 현악기를 뜯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술과 풍류를 즐기던 마한, 굳세고 용감했지만 이웃나라를 품으며 평화를 사랑했던 마한, 그래서 54개의 작은 나라로 나뉘어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 존중했던 마한, 피난 온 온조에게 식읍을 나누어주고 도와주었던 마한, 돌변한 백제의 위세에 무너져 내린 것 같지만, 마한은 오늘 우리 곁에 다시 부활한다. 마한의 문화는 개성화와 다양화다.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물처럼 소중한 오늘의 복지 사회에서 마한의 정신과 문화를 되살려볼 일이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웃음을 공유하는 일이야말로 박물관이 우리를 기다리는 이유이리라.


박물관의 오지랖


 그 외에도 국립나주박물관은 캠핑카 등 여러 체험공간이 있어 가족나들이에 최적의 장소다. 이만여 평의 부지 위에 펼쳐진 푸른 잔디와 어우러진 남천과 각종 나무들, 한창 꽃대를 밀어올리고 있는 해바라기, 코스모스들....... 박넝쿨과 호박넝쿨이 기세 좋게 감아 오르고 있는 아치형 터널....... 입장료 없이 누구나 마음껏 드나들며 역사유적과 자연을 향유할 수 있다. 그리고 시기별로 다양한 테마별 특별전이 열린다. 그 중에서도 ‘역사 속의 가족편지’ 특별전은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선비들이 소식을 주고받은 간찰,  정치와 학문을 논한 사대부의 편지, 존경과 우정을 담은 벗의 편지, 따뜻한 사랑을 품은 가족의 편지....... 그 중에서도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우리에게 ‘그리움’이라는 의미를 되새겨준 편지도 전시되었다. 1998년의 일이다. 안동에서 묘 이장을 하다가 고성이씨 이응태의 무덤에서 그의 아내가 쓴 한글편지가 발견되었다. 31세의 나이에 요절한 남편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1586년) 유복자를 가진 아내의 남편사랑이 어찌나 애절한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철철 넘쳐흘렀다. 박물관이란 그런 것이다. 시공을 넘어 수만 년이든 수백 년이든 유적을 마주바라보고 우리는 그 시대와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감동을 받는다. 씨앗 한 알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강이 흐르듯 유적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강이 흐른다. 지금의 나는 구석기시대의 원시인류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되기까지 그 강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음이다. 이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님과 서미라선생님, 양성숙 문화관광해설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뗀석기를 들여다본다


낯선 혹성의 황야에

빈 몸으로 서있는 최초의 아버지

하늘에서, 땅에서 화살처럼 날아오는 수많은 적의敵意

생존을 위해

화산과 사막과 빙산을 헤매느라

발바닥이 터지고 너덜거려

화산과 사막과 빙산이 된 발바닥으로 달리고 또 달렸으리라

공포와 어둠만이 생을 끌고 가는 채찍이던 아버지는

처음으로 날카로운 돌칼을 쥐고 사냥감을 해체하던 날

아폴로11호 달 착륙의 환희로 심장이 고동쳤으리라


날것을 처음으로 불에 익힐 때

첫 움막집을 지을 때

최초의 토기를 만들 때

별 하나씩 아버지의 가슴에서 태어났으리라


그 별들이 은하수가 되어 콸콸콸 흐르는 동안

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아들은 또 제 아들을 낳고

압박과 저항의 샅바가 한바탕 회오리 쳤다

벌거벗은 나무는 잎새를 내어 부끄러움을 덮고

자유가 목숨보다 더 아름다워진 세기에

돌도끼 대신 스마트폰을 쥐고 가는 아들은

별 같은 SNS를 별빛처럼 쏘아댄다


그 문자가 얼마나 높은

호모사피엔스의 눈물탑인 줄도 모르고.

 -졸시(국립나주박물관에 가면 호모사피엔스의 눈물탑이 보인다)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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