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엄니 우리 엄니
…노안면 창설 100주년에 부쳐
전숙
엄니,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백년을 돌아봉께
멜갑시 눈물이 나네
저러코럼 시간이 누렇게 바래도록
아득한 백년을 우리 엄니 아부지 어찌 견뎠으까잉
아부지 석삼년, 피 같은 새경으로 장만한 논배미가
끝도 갓도 없는 가뭄에 타들어 가면
엄니 가슴밭도 거북이 등골처럼 쩍쩍 갈라지고
영산강도 떠밀려가는 대책 없는 홍수에는
문전옥답까지 다 쓸려갔을 것인디
온 나라가 뒤집혀버린 난리 통에는 또 어쨌으까 잉
새끼들 거둬 먹이겄다고
까막눈 면해주겄다고
밤인지 낮인지 더운지 추운지도 모르고
허리끈 모질게 졸라맴시롱
등허리 펼 날 없이 고상 고상으로 달려오셨지라잉
허방인지 허당인지 그 놈의 저승 같이 새카만
땀방울의 깊이에도 벌떡 몸을 일으켜
만세운동부터 농민운동까지
추상같은 시대의 부름에는 ‘예’하고 오체투지로 대답했지라잉
서럽도록 새파란 미나리줄기를 한 움큼씩 낫질할 때마다
칼바람에 뼈 마디 마디 숭숭 시려도
손주들 학비도 보태주고
자석들 지금 내는 재미로다가
얼어터진 손등으로 눈물인지 콧물인지 쓱쓱 문질러부렀지라잉
산세도, 들녘도, 사람도, ‘老安’이라는 제 이름 맹키로
늙어 꼬부랑까지도 모다 순하고 푸근해서
나그네 발품도 쉬게 하고 허기도 채워줘감시롱
금성산 신령처럼 불타는 땡볕에 손그늘 만들어 주셨지라잉
뭣이냐 그랑께 노안에는 큰사람 아닌 사람 없고
절경 아닌 경치 없고
역사 아닌 사건 없지 않겄어라
세월 좋아졌다는 할배정자나무 너털웃음에
손주 배나무 깔깔거리는 천둥소리도 업혀있구만이라
엄니 엄니 우리 엄니
노안 같은 우리 엄니, 엄니 같은 우리 노안
언제까지나 지금 맹키로 오순도순 살아가십시다잉
봄날이면 고사리 손바닥 맞부벼감시롱
환하게 피어나는 저 배꽃맹키로
내년에도 또 저 내년에도
고새 실컷 울궈먹은 땀방울 눈물방울 거름 삼어
환하게 환하게 피어나십시다 잉.
시인 전숙
나주문인협회 부회장
시낭송모임 ‘비단송’ 회장
‘시와 사람’ 등단
‘원탁시회’ 동인
제3회 고운최치원문학상 본상
2012 나주예총 예술문화대상
'문장21’ 책임편집위원
국제펜한국본부 간행위원
시집 ‘나이든 호미(2009)’, ‘눈물에게(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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