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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창작 특강 (1~5강)

전숙 2010. 7. 15. 18:53

[1] 서론 : 시에서 감정은 무엇인가
시는 감정을 서술하는 글, 또는 감정을 쏟아내는 글이라는 견해가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것은 시의 주종을 이루는 서정시라는 한자 낱말에 잘 드러나 있다. 서정시의 '抒'자는 '물을 쏟다', '물을 덜다' 등의 뜻을 갖는 한자로, '서정시'란 단어가 어떤 사전에는 '감동적 정서를 주관적으로 나타낸 시'라고 정의되어 있다.

용어 문제와는 상관없이 시가 감정의 표현이라는 생각은 동서양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시가 감정의 표현이다', 또는 '감정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18세기 말 낭만주의 문학의 시작 이후부터 제기되었다. 그 이전에 시는 운문으로 표현된 일종의 수사학이라고 생각되었다.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 워즈워드이다. 그는 시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수사여서는 안되고 '힘찬 감정의 자연스러운 발로'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에서 수사보다는 감정의 표현에 무게가 두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전환기를 거쳐 시는 점차 감정 표현의 힘찬 발로로 나아갔고, 낭만주의 문학의 전성기에 접어들면서 감정 과다의 병폐 또한 심해졌다. 이때에는 시의 본질은 감정이라고 생각하여 감정 (혹은 열정)이 결여된 글은 시가 아니라 산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감정에 치우친 낭만주의적 병폐에 반대하는 혁명적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시가 감정의 표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18세기까지 시와 산문의 구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감정과 이성도 분열되지 않고 통합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시가 감정에서 출발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때에 쓰는 '감정'이라는 말과 '정서'라는 말은 적어도 시론에서는 동의어로 써도 상관없다. 영어에서 'emotion'과 'feeling'이란 단어는 구분 없이 비평 용어로 쓰인다.) 감정은 인간의 희노애락의 심리적 반응을 총칭하는 말로서 시는 시인의 감정에서 출발하여 독자의 감정에서 끝나는 시의 본질이다. 사랑, 미움, 슬픔, 원망 등 복잡 미묘한 시인의 감정이 시를 통하여 어떻게 전달되며, 시인의 감정과 시에 나타난 감정, 그리고 독자가 받아들이는 감정은 모두가 동일한 것인가 등의 문제는 자주 논란이 되는 현대 비평의 중요 쟁점이다.

수사에 주력하던 시로부터 감정이 중요시되는 시로 발전함에 따라 시인들은 말과 싸우는 것 못지 않게 자기와의 싸움에서 시의 성패를 기대하게 되었다. 자기와의 싸움이란 경험과 사물을 보는 데 있어서 자신의 감정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감정이란 말에 해당하는 희랍어 파토스 pathos는 본래 고통, 병과 동의어로 쓰인 말이다. 감정은 그냥 방치하면 마음을 병들게 하거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인간을 제멋대로 끌고 다니며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사탄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가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시에 있어서도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다.

시인에게 요구되는 원숙하고 세련된 감수성은 풍부한 감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냉정한 知的 인 자세를 필요로 한다. 현대시는 매우 '지적'이다, 또는 지적 특성을 갖는다라고 말했을 때, 이 '지적'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그것은 추상화하고 개념화하는 지식 작용이 아니라 감정과 대치되는 이지적(지성적) 정신기능이다. 지성 시인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사물을 분석하고 판단하면서 동시에 부분과 전체의 관계, 역사적, 우주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힘을 갖는다.

시인의 감정이 이성적 훈련을 받지 않으면 그의 정신은 구름낀 거울처럼 흐려서 판단력과 직관력을 상실하여 오히려 사물을 주관적으로 개념화하게 된다. 센티멘탈한 시나 개념시, 혹은 사상시 등은 모두 감정에 이끌려서 쓴 시들이다.

시는 감정의 산물이라고 하면서 한편 시인에게 차가운 지성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된 말인가. T. S. 엘리엇은 감성과 이성의 통합을 주장하면서, 지성 시인들은 '사상을 장미 향기처럼 맡는다'라고 말했고, 예이츠는 '새벽처럼 차고 / 정열적인 한 편의 시를 쓰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말들은 결코 쉬운 말이 아니어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엘리엇은 시는 구체적인 것이고 산문은 추상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을 얼른 들으면 어리둥절하게 된다. 감정을 다루는 시는 구체적인 것이지만 지식의 산물인 산문은 추상적이란 생각은 시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이고 지식 이전의 '사실'이지만 산문은 사실에 '관한' 지식이라는 뜻이다. 한 알의 사과는 사실(현실)이고 구체적 존재이지만 '사과는 맛있다'라는 진술은 추상적 지식이다. 애인과의 이별은 구체적 사실이지만, '애인과의 이별은 슬프다'라는 진술은 추상적 지식이다. '사실'은 지성의 그물로 잡을 수도 없고 지식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없는 설명 불가능의 '세계'일 따름이다. 그것은 비순수, 비추상의 '본체'일 따름이다. 시인은 그 '실재'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면 시인은 그 설명 불가능의 세계를 어떻게 시로 표현하는가. 엘리엇의 시론에 의하면 시인은 감정의 同價物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메타퍼는 그 동가물을 가르킨다. 메타퍼 안에서 이성과 감성은 통합된다. 그러니까 결국 시는 메타퍼의 문제에 귀착되고, 엘리엇의 영향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시론에선 메타퍼가 주요한 비평 기준이 된다.
예이츠가 말하는 뜨거우면서 찬 시에 대한 주장도 결국 시에서의 감정과 이성의 관계에 대한 말이다. 그는 감정은 뜨거운 것이고 이성은 찬 것으로 생각하여 그 양자가 통합된 시를 쓰고자 했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스타일이 생기고 남과의 싸움에서 웅변이 생긴다'라고 말한 일도 있다. 시는 시인이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다. 그 만들어내는 과정은 뜨거운 감정에 대한 차디찬 지성의 싸움이다. 시인은 검증하고, 분석하고 반성하는 지적 작업을 통하여 감정을 메타퍼로 바꾸어 놓는 창작 과정을 겪는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시적 전략이 따른다.



이창배 교수 약력
동국대에서 근 40여년간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정년 후 단국대학교 대학원 특별대우 교수로 임명. 현재 동국대 명예 교수로 있음.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과 한국 T. S. 엘리엇학회 초대 회장직을 역임.
주요 저서로는 [20세기 영미시의 이해], [20세기 영미시의 형성], [예이츠시의 이해], [T. S. 엘리엇 연구], [T. S.엘리엇 전집](역서), [현대 영미시 해석], 등의 많은 역서와 논문들이 있다.

감격조의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이창배



다음에 인용하는 김소월의 걸작으로 애송되는 [초혼]의 경우도 감격적 어조가 두드러진 시이다. [초혼]이란 말 은 사람이 죽었을 때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난 후에 장례식을 치르는 관례에서 비롯된 말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시인은 죽은 애인을 못 잊어 비탄에 잠겨 절규한다.
죽은 이가 과연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 절규를 통해 슬퍼서 몸부림치는 시인의 비애의 감정이 처절하게 호소해온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흩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나가 않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나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이해가 가지만 원숙한 시인은 그 감정에 매달려 몸부림치지 않고 내적인 감정을 외적인 장면이나 사물로 객관화한다.
이 점에서 같은 시인의 작품이지만 [진달래꽃]은 훨씬 잘 쓴 시라 하겠다.
[진달래꽃]에 대한 해석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겠지만 사랑하는 애인과의 이별 장면이 제시된 것은 틀림없다.
이 장면을 통하여 전통적인 한국 여인에 대한 시인의 감정이 정확히 구상화된 점에서 이 시의 작품성이 높이 평가된다.
이 시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 장으로 미루고 [초혼]에 제시된 것과 같은 애인의 죽음에 대한 비애의 감정이 感傷에 흐르지 않고 구상화되자면 시가 어떻게 씌어져야 하는가를 유사한 주제를 다룬 또 다른 한 편의 시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사무치게 그리운 여인이여, 당신은 어떻게 내게 말을 하는가요.
지금의 당신은 이전의 당신이 아니라고,
나에게 전부였던 그 당신이 변했던 시절, 그때가 아닌
우리 사이가 아름다웠던 처음 그때와 같다고 말하는군요.
들려오는 목소리가 정말로 당신인가요. 그렇다면 봅시다.
내가 집 근처에 다가들면 늘 기다리고
서 있던 당신의 모습, 그래요, 그때 내가 보았던
그 상쾌한 하늘색 가운까지도 똑같은 당신의 모습을.
아니면, 이 목소리는 축축한 초원을 가로질러 무심히
이쪽으로 불어오는 미풍에 불과한가요.
당신의 목소리는 이제 파리한 불가해한 것으로 변하여
이 근처 어디서고 다시는 안 들리는군요.

그래서 나는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낙엽은 여기저기 떨어집니다.
바람은 북쪽에서 가시덤불 사이로 가냘프게 스며들고,
여인의 부르는 목소리.


이 시를 보면 하디에게는 죽은 부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사이가 좋았던 시절에 그녀는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남편을 멀리 집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다정한 아내였음을 또한 알 수 있다.
그 아내가 죽으니 이제 생시의 원망과 그리움이 한 데 뒤섞여 못 견디게 보고 싶어 한다. 환각으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이끌려 비틀거리며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시인의 외로운 심정이 이 짤막한 한 편의 "극"을 통해서 잘 전달된다.
이 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감정을 인물과 장면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감정의 절제를 기하여 낭만적 한탄과 초월에서 벗어나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극적 수법이다. 엘리엇은 잘 씌여진 시는 아무리 짧은 한 편의 서정시라도 극적이지 않은 시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시의 초보자들이 개척해야 할 부분이 그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테니슨의 시보다 예이츠와 하디의 시가 잘 쓴 시이고, [초혼]보다 [진달래꽃]이 잘 쓴 시라고 평할 수 있다.
다음에 인용하는 서정주의 [부활]이란 시도 김소월의 시, 하디의 시와 같은 주제를 다른 시로서 시인의 감정이 어떻게 형상화되어야 좋은 시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내 너를 찾아왔다. 수야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더니.
수야, 이것이 몇 만 시간만이냐.

그날 꽃상여 山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촛불 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江들은 또 몇 천 리, 한 번 가선 소식없던 그
어려운 住所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서도 열아홉 살 쯤 스무 살 쯤 되는 애들 -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아
수야! 수야! 수야! 너 이젠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군나.


이 시에 등장하는 "수야"라는 아이가 실명인지 가명인지는 가릴 필요가 없고, 아마 "열아홉 살 쯤 스무 살 쯤" 나이에 죽은 여자아이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이 아이가 죽은 뒤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어서 그 모습이 늘 눈에 밟혀 종로 바닥을 걸으면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그 애가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명랑하고 맑은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시달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죽은 수야에 대한 사무치게 그리운 심정이 부활의 사상으로 바뀌면서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도, 애절한 감정의 표출도 없이 장면과 이미지만으로 잘 전달되고 있다.

3. 웅변조의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이창배

시에서 웅변은 금물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베를렌느는 그의 유명한 시 [시작법]에서 '웅변을 잡아서 그놈의 모가지를 비틀어라'라고 외쳤다. 이 말은 상징주의 시대가 아니라도 시인들이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하는 명언이다. 이 시에서 베를렌느는 시의 음악성을 강조하고, 정확한 묘사보다는 암시적이 뉘앙스를 강조한 상징시의 시학을 제시하였다. 그가 시에서 배척하라고 강조하는 '웅변'은 설득력이 강한 수사학적 언어를 말한다. 시는 엄격히 말해서 시인의 의견이나 주장, 혹은 어떤 지식을 전달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뉘앙스이고 이미지이고 비전일 뿐이다. 서정시인은 독자가 알아듣건 말건 자신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시를 쓴다. 그래서 때로는 조리가 안 맞는 넋두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반면 웅변가는 선동적인 수사법을 써서 청중의 이성에 호소하여 그를 설득하는 데 목적을 둔다. 그래서 아무리 비유적 수사를 쓰고 시적 표현을 쓴다 해도 그의 말은 논리가 정연하다. 시는 감정에서 출발하여 감정으로 끝나고 산문은 이성에서 출발하여 이성으로 끝난다. 웅변이니 수사니 하는 말은 시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다.
한 편의 서정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써야 한다'라고 필립 시드니가 말한 이 '마음 속'이란 말은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인즉, 마음의 상태에 알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할 것이지 어떤 주장이나 의견이나 교훈적 진리를 교묘한 말로 전달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시에서 '웅변'을 배제하라는 말을 현 대 영시의 정상 예이츠는 '언번에 능한 자는 자기 이웃을 기만하고, 감상에 빠지는 자는 자신을 기만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언변에 능한 자는 그 웅변적인 화술로 상대방의 이성을 흐리게 하고 센티멘탈리즘에 빠지는 자는 자기 감정에 도취되어 마찬가지로 이성이 흐려서 사물의 변별력을 잃게 된다. 결국 시에서 웅변이나 감상은 다같이 보는 눈을 흐리게 하는 2대 해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시에서 어떤 시가 웅변조의 시인가. 화려한 언사와 유창한 문체로 쓰인 시가 웅변조의 시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화려한 언어로 말하면 한용운의 시도 박두진의 시도 김영랑의 시도 모두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시는 그 화려한 마음의 상태를 형상화한 이미지이고 장면일 따름이지 결코 시인의 주장을 내세운 수사가 아니다. 다음 시를 예로 들어 웅변조의 시가 어떤 의미에서 서정시와 다른가를 분석해보기로 한다.


1
나는 벌거숭이이다.
옷 같은 것은 나에게 쓸데없다.
나는 벌거숭이이다.
제도 인습은 古人의 옷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시비도 모르고 선악도 모르는.

2
나는 벌거숭이다. 그러나 나는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단정히 옷을 입은
제도와 인습에 추파를 보내어 악수하는
썩은 내가 물신물신 나는 구도턱에 코를 박은
본능의 폭풍 앞에 힘없이 항복한 어린 풀이다.

3
나는 어린 풀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나에게는 오직 생장이 있을 뿐이다.
태양과 모든 星辰의 축배를 올리련다.


전체 6부 중 3부만을 인용했다. 이 시를 쓴 김형원은 1930년대에 언론인으로 활약하면서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를 최초로 한국에 도입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위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시인은 휘트먼의 시 [풀잎]을 읽고 특히 그의 반문화 반교양적인 원시 생명 사상에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휘트먼은 범신론적 우주관을 바탕으로 일체 생명체의 신성함과 평등함과 영원함을 노래한 시인이다. 거기에서 그의 민주주의적 사상과 생명주의 사상과 박애사상이 연유했고, 반문화적인 원시 찬양사상이 연유했다. 훌륭한 시인의 경우 주목할 일은 그의 철학이나 신념, 주장 같은 사상이 아니라, 그런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느끼고 생각한 바를 어떻게 구상화했느냐 하는 점이다. 그 점 휘트먼은 시의 스타일에 있어 유니크한 시인이다. 흔히 그를 자유시의 원조라고 부르지만, 그의 시의 스타일의 특성이 단순히 자유시의 표현 방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의 스타일은 수많은 유사 이미지를 나열하고, 어귀와 시행을 반복하여 많은 잔물결을 휩쓸어 큰 물줄기를 이루며 흐르는 대하와 같은 리듬이라 할 수 있다. 그 리듬은 고양된 찬미의 음악이다. 실례를 들어 그의 문체의 특성을 직접 보기로 하자. 다음 시는 휘트먼의 시 [나 자신의 노래] 제 1부이다.


나는 나 자신을 예찬하고 나 자신을 노래한다.
그리고 내 것은 네 것이기도 하다.
대체로 내게 속하는 일체의 原子는 마찬가지로 네게도 속하는 것이다.
나는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며 나의 영혼을 초대한다.
나는 마음 편히 몸을 기대고, 빈둥대며 여름풀의 싹을 응시한다.

나의 혀, 내 핏속의 일체의 원자는 이 땅에서,
이 대기에서 만들어진 것,
나는 여기에서 내 양친에게서 생겼고, 양친은 또 그 양친에게서,
또 그들은 똑같이,
나는 지금 37세의 완전한 건강체로 시작한다.
죽을 때까지 중단 없기를 바라면서,

종파나 학파는 잠시 접어두고,
그것이 어떻든 지금 상태로 족하니, 잠시 거기에서 물러나, 그러나 결코 잊진 않고,
나는 선악을 다 용납하고 만난을 무릅쓰고 마음껏 말하련다.
本有의 정력으로 거리낌없이 '자연'을 나의 천성을.


이 시를 번역문이 아닌 원문으로 읽어 보아야 문체상의 특이한 점을 더욱 잘 읽을 수 있다. 반복과 열거의 방식으로 유연하게 이어지는 시행들은 이 시 특유의 리듬을 형성하여 고양되괴 도취된 감정을 자아낸다. 고양된 리듬은 생명체의 아름다움과 영원함을 찬미하는 시인의 감정의 형상화이다. 시인은 '나 자신을 예찬하고 나 자신을 노래한다'라고 선언한다. 그 '나 자신'은 다름아닌 범신론적 생명체인 인간 그 자체이다. 그 '인간'은 神性의 구현이고 존엄한 찬미의 대상이다. 그 신성체 앞에서 시인은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 워즈워스가 하늘의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뛴 것과 같은 심적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휘트먼의 시를 모방한 김형원은 휘트먼의 시적 방법을 모방했어야 한다. 그가 사용한 '벌거숭이'의 이미지라든지 열거와 반복의 스타일은 사상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지 '정서의 객관 상관물'은 아니다. 김형원이 진정 휘트먼과 같은 시적 체질의 소유자였다면, 그 환희의 목소리가 이미지로, 또는 시의 리듬으로 나타났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독자의 정서에 호소해오지 않고 생경한 이념의 주장이 되어 머리에 와 부딪칠 뿐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셸리의 시도 웅변조 시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내가 네가 '서풍이' 실어가는 한 개의 죽은 잎사구라면,
만일 내가 너와 함께 날을 한 점의 빠른 구름짱이라면,
네 힘에 눌려 네 힘의 충동을 못 이겨 신음하는

한 이랑의 파도라면, 물론 너 만큼
자유롭진 못하겠지만, 아 제어할 수 없는 자여,
만일 내가 나의 어릴 때 같이,

하늘을 방랑하는 너의 친구라도 될 수 있었다면,
너의 하늘의 속력을 이겨내는 것이
결코 공상처럼 생각되지 않던 그때 같기만 하다면,

나는 이렇게 간절한 소망에 기도하며 너와 겨루지 않으리라.
아 나를 파도처럼, 잎사귀처럼, 구름처럼 일으켜다오.
나는 인생의 가시밭에 쓰러진다. 나는 피흘린다.

시간의 중압이 사슬로 묶고 굴복시킨다,
너무나도 너와 같아. 순종을 모르고, 민첩하고, 거만한 한 인간을.


이 인용은 [서풍송가] 제4부이다. 이 시는 하늘에서 구름을 흩날리고, 지상에서 낙엽을 휩쓰는 가을 서풍의 위력을 찬미한 시로서 시인은 서풍을 자유와 힘의 상징으로 생각하며, 그것과 비교하였을 때 '시간'에 얽매여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실상을 슬퍼한다. 낭만시인들은 인간이 본래 자유롭고 완전무결한 신적인 존재인데 인간으로 태어나 비자연적인 구속 속에 갇혀 감옥 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시인은 '나의 인생의 가시밭에 쓰러진다. 나는 피흘린다'라고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한탄한다. 전형적인 '낭만적 고뇌'에 찬 감정의 발산이고, 웅변조의 절규이다. 그 고뇌가 시의 좋은 모티프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좋은 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은 감수성이 원숙해지고 세련되어야 하고, 그와 더불어 '웅변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감정을 뿜어내는 목소리를 없애고 이미지나 극적 장면을 보여주어야 한다. 셸리는 이 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본래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로 태어나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를 억압하는 종교적, 사회적 관례와 규범과 싸워 많은 문제를 일으킨 전형적인 낭만시인이었다. 시인이 추구하는 자유의 이상과 좌절이 다른 시인의 경우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비교해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비교가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김수영의 시에서 똑같은 모티프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47세에 요절한 김수영은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항상 비타협적인 눈초리로 사회와 정치의 모순을 응시하면서 자유와 갈망과 실패 사이에서 고뇌한 지성시인이다. 그의 [그 방을 생각하며]를 읽어보기로 한다.


革命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四枝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革命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失望의 가벼움을 財産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歷史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財産으로 삼았다.


이상은 전체 시 중 3연을 인용한 것이다. 시에서 말하는 '혁명'은 4.19 혁명을 가리키는 것이고 학생들의 피의 대가로써 얻어진 혁명이 독재와 억압에서의 해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5.16혁명으로 이어졌을 때 지식인들은 자포자기 속에서 다시 일상생활을 이어가면서 뼈저린 좌절감과 무력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투쟁의 벽보로 가득 찼던 '방'에서 이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의 방으로 옮겨앉아 이것이 역사일지도 모른다는 체념과 실망의 생활을 살아가야 한다. 셸리와 같이 자유에 목말라하는 체질로 태어난 김수영의 시는 '방'을 바꾸는 장면을 통하여 막연한 외침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각으로 감각에 와 닿는다.

4. 교훈조의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이창배


교훈시나 교훈조의 시는 시가 아니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서정시를 논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엔 그것이 좋은 시라고 하기 어렵다. 교훈시는, 혹은 교훈조의 시는 엄격히 말해서 운문으로 쓰여진 설교문, 訓話라고 할 수 있어서 같은 뜻이라도 산문으로 쓰여졌을 때보다 기억하기 쉽고 교훈적 효과가 크다. 우리나라의 시조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다. 시조는 그 간결한 표현과 기발한 비유에도 불구하고 엄격히 말해서 시라기보다는 교훈을 담은 격언이고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조가 애송되는 까닭은 거기에 운문에서 오는 기쁨이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서적 표현이 아니고 이념적 '논술'이기 때문에 산문의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내용면에서 종교적 도덕적인 지식, 철학적인 지식이 주가 되는 개념의 전달일 뿐 감정적 체험은 아니다.
시인 중에서도 상상력보다는 개념적 사고 능력이 우세한 시인들의 작품에서 교훈조의 시를 많이 볼 수 있다. 영국 시인 중에는 신고전주의 시대의 풍자시인들, 드라이든, 포우프 등의 시를 교훈시 혹은 '논설시'라고 부를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광수, 설창수 등의 시를 교훈시라고 할 수 있다. 이광수는 본인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자신있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독자들은 그를 시인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러 편의 시를 썼고, 그 대부분이 교훈조의 시들이다. 그는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에서도 인간의 존엄함, 사랑의 고귀함, 우주질서의 오묘함과 같은 서구 계몽시대의 도덕철학을 문학의 형식에 담은 계몽사상가이고 도덕적 설교사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빛'이란 시는 이광수의 교훈족 시세계를 잘 보여준다.


만물은 빛으로 이어서 하나,
중생은 마음으로 붙엇 하나,
마음 없는 중생 있던가?
빛 없는 만물 있던가?
흙에서도 물에서도 빛은 난다.
만물이 탈 때에도 온몸이 모두 빛.

모든 별과 나,
빛으로 얽히어 한 몸이 아니냐?
소와 나, 개와 나,
마음으로 붙어서 한 몸이로구나.
마음이 엉키어서 몸, 몸이 타며는 마음의 빛.

항성들의 빛도 걸리는 데가 있고
적외선 엑스선도 막히는 데가 있건마는
원 없는 마음이 빛은 시방(十方)을 모두 비쳐라.


이광수는 위 시에서 빛과 마음으로 만유가 한 데 묶여 있다는 계몽시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존재의 사슬'과 유사한 관념론적 주장을 내세운다. 그 사상은 불교의 '보편불성' 혹은 범신론이 만유신성론에 해당한다. 이와 아주 흡사한 사상이 미국 시인 에머슨의 [개체와 전체 Each and All]에서도 볼 수 있다. 에머슨은 19세기 미국의 초절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철인이고 시인이다. 그 역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교훈조의 시를 써서 철학적 주장으로 독자를 효과적으로 설득시킨다. 이 장시의 마지막 6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머리 위에 빛과 신성으로 가득한
영원의 하늘이 솟아 있다.
다시 나는 말하고, 다시 나는 들었다,
저 굽이치는 강물 소리와 아침 새소리를……
나의 다섯 감각에 美가 스며들어
나는 이 완전한 총체에 몸을 내맡긴다.


이 시에서 에머슨은 우주질서의 완전함과, 그 안에 사는 인간의 환희와 기쁨을 노래했다. 다음 시는 설창수의 시 [민족의 바다]라는 시이다. 이 시인 역식 이광수나 에머슨과 같이 일체만상이 화합하고 민족은 같은 유대에 묶여 있음을 주장한다. 민족동포사상의 찬가인 셈이다.


一切는 아름다워라 -
찢어봐도 兄弟
씹은들 姉妹

千萬 千萬 또 千萬……
은실 금실 谿流는 흘러간다
巖壁에 부딪쳐 가루나도
다시 모여 靑潭이 되다.

千年 千年 만만년 -
흘거감만 凜凜하여라.
咆哮도 憤激도 旋回도
비약도 沫散도 저주까지도
오로지 함께 절대의 交響.

千里 千里 三千里 -
금수 찬란 山河 森羅하고나
녹슬어도 이끼 묻어도
헐어져 있어도 조각져 있어도
거룩할손 나의 것.


전체 6연 중 4연의 인용이다. 이렇게 몇 세대 이전의 시에서 예를 드는 것이 부적적한 것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또 한 편 전형적인 교훈조의 시를 인용해보겠다.


……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휴식처에
그대 혼자만이 가는 것이 아니고, 이보다 더
장엄한 잠자리를 바랄 수도 없느니라. 그대는 눕게 된다,
원초시대의 족장들과 함께 - 그리고 제왕들,
지상의 강자들과 함께 - 현인들, 선인들,
미인들, 그리고 과거시대의 백발의 예언자들과 함께,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무덤 속에.

……
그러니 살다가, 저 신비의 나라, 제각기
죽음의 침묵의 궁전에서
자기 방을 차지하고 있는 그 무수한 대열에 참가하라는
소환장이 오거든, 그대는, 채찍에 맞아 토굴로 들어가는
채석장의 노예처럼 가지 말고, 태연자약하게
부동의 신념으로 그대의 무덤으로 가라,
잠옷을 몸게 감고
상쾌한 꿈나라로 향하여 자리에 눕는 사람처럼.


이상은 미국시인 브라이언트 Bryant의 [死觀]이란 시에서의 인용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물로 환원하는 것이고, 죽음은 인간의 운명이고 영원한 자연의 섭리인즉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죽음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설교한다.
이상 인용한 몇 편의 시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시들은 한결같이 시의 형식을 빌어서 어떤 신념이나 주의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신념이나 사상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주장이다. 즉 엘리엇이 말했듯이 사상이 장미 향기처럼 감각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설명하기 이해서 대표적인 현대시 두 편에서 그 실례를 들어본다. 다음에 인용하는 딜런 토마스의 [런던의 한 아이의 불타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련다]라는 시는 태초 이래 인간은 죽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죽음을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死觀을 피력한 시로서 앞서 인용한 브라이언트의 시의 주제와 동일하다.


인류가 창조되고
새, 짐승, 꽃이 창생되고
만물의 겸허한 암흑이
정적으로써 마지막 광선의 트임을 알리고
고요의 시간이
질서 있게 혼돈의 바다에서 생기고

나는 둥근 물염주의 시온성당에
그리고 보리이삭의 유태인 교회당에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음성의 그늘에 기도시키거나
베옷의 아주 작은 골짜기에
나의 소금 종자를 뿌려서

불타 죽은 그 애의 장엄한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리라.
나는 더 이상
순진과 젊음의 죽음을 슬퍼하는 哀歌로써
엄숙한 진실을 안고 간 그 애의
인류를 살해하거나
생명의 성지를 모독하지 않으리라.

최초의 죽음과 함께 런던의 아이는 누워 있다.
오랜 동무들과
세월을 초월한 낱알과 그 어머니의 검은 혈액에 싸여서
물결치는 템즈강의
슬퍼하지 않은 강변에 아무도 모르게 누워 있다.
최초의 죽음 후엔 죽음이란 없다.


이 시에는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또는 '죽음 후엔 죽음은 없다'와 같은 역설적인 표현, 그리고 '보리이삭' 또는 '음성의 그늘' 같은 기발한 메타퍼 때문에 읽기가 그리 쉽지 않지만 주제는 비교적 단순하다. 이 시는 2차대전 때 런던에 가해진 독일의 폭격으로 한 아이가 죽은 것을 보고서 시인 자신의 사관을 피력한 시이다. 시인은 말하기를 지상에 빛이 생기고 만물이 창조되고 역사가 시작된 후 우리 인간은 죽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합쳐지는 것이니 눈물을 흘려 죽은 아이를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불타서 죽은 런던의 그 아이는 태초 이래 죽어간 무수한 친구들과 더불어 대자연의 품안에 누워 있다. 실로 죽음이란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 필요없이 슬퍼할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죽음' 후에 운명적으로 인간에겐 죽음이 정해진 것이니까 새삼스러이 죽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1연은 천지창조 시의 암흑과 고요의 혼돈 속에서 최후의(우리 쪽에 말하는 최초의) 빛이 터지고, '시간'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2연 '둥근 물염주의 시온성당'이란 말은 자연물의 이미지이고, 염주는 시온성당과 함께 종교적 이미지이기 때문에 인간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보리이삭의 유태인 교회당'도 똑같이 자연물('보리이삭')과 기도의 장소를 결합시킨 메타퍼이다. '음성의 그늘'에서 그늘은 슬픔을 의미하기 때문에 '슬픈 음성'이란 뜻이다. '베옷의 골짜기'는 슬픈 가슴에 대한 비유이다. 베옷은 성경에서 죽은 사람을 애도할 때 허리 아래를 가리는 베로 된 천을 말한다. '소금종자'는 눈물을 말한다. 3연에서 '인류를 살해한다'는 말은 런던의 폭격으로 죽은 아이는 인류의 대포라는 뜻과, 사람이 죽은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인즉, 그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곧 살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생명의 성지'는 카톨릭에서 십자가 순례하는 14개의 예배 장소와 관련되는 말이다. 4연 '세월을 초월하는 낱알과 그 어머니의 검은 혈액에 싸여서'라는 말은 이전에 죽은 모든 인간들이 인류 근원의 모체 혈관 속으로 환원되었음을 말한다.
이상 해설에서 본 바와 같이 시인은 이 시에서 죽음에 대한 사상이나 이념을 주장한즌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을 표상하는 수많은 이미지를 제시하여 독자의 감각적 체험을 유도할 뿐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시도 같은 현대시인 엘리엇의 유명한 시 [번트 노튼]중의 한 섹션이다. 이 섹션에서 엘리엇은 이광수나 에머슨과 마찬가지로 이 혼돈의 세계 너머의 조화와 질서의 세계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진흙 속에서 마늘과 청옥은
파묻힌 車軸에 엉겨붙는다.
핏속에서 떨리는 철선은
만성의 성처 밑에서 노래하며
오래 잊혀진 전쟁들을 달랜다.
동맥에 전해진 舞蹈와
淋巴의 순환이
성좌의 운행에 표상되고
위로 올라가 나무 아래에서 전성한다.
무늬진 나뭇잎에 내리는 빛 속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나무 위에서 움직이며
아래로 질퍽거리는 바닥에서
쫓는 사냥개와 쫓기는 멧돼지가
전과 다름없이 그들의 패턴을 쫓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성좌 속에서는 조화되어 있고.


위 시에서 시인은 이 세상의 미천한 것과 희귀한 것의 상징으로 마늘과 청옥을 제시하여 그것이 진흙 속에서 파묻힌 차축에 엉켜붙는다고 말한다. 진흙은 혼돈과 무질서의 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인즉 마늘과 같은 범속한 것과 진귀한 보석이 무질서의 혼돈 속에 공존하지만 보이지 않는 우주의 원리(차축)에 의하여 통솔되고 대질서를 이루어 차바퀴가 돌듯이 돌아간다. '핏속에 떨리는 철선은 / 만성의 상처 밑에서 노래한다'는 말은 움직이는 세계가 전파를 통하여 메시지가 전달되듯이 우리의 혈관 속에서 그 고동이 느껴지며, 본능적인 생명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비록 우리가 원죄(만성의 상처)를 짊어지고 있을망정 창조 당시의 하늘에서의 천사들의 싸움을 잊고 살아감을 말한다. 혈액의 순환을 통한 생명의 기쁨을 '동맥에 전해진 무도'라 하였고, 동맥이나 임파선의 순환과 같은 소우주적인 조화상은 대우주적인 성좌의 운행의 조화상과 상응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체 내의 동맥과 임파선의 순환을 나무의 수액에 비유하여 그것이 가지로 올아와 잎과 꽃이 피듯이 인간적 질서가 나무를 통하여 우주적 질서로 바뀐다고 하였다. 이 나무는 차축을 의미하며 우주의 중심 로고소 즉, 신의 세계이다. 시인은 이제 세속을 초월하여 '움직이는 나무'의 상공에서 천국의 빛을 받고 있는 듯이 햇볕받아 무늬지는 나뭇잎을 아래로 바라보며 움직이고 있는 듯한 환상에 젖는다. 그렇게 초월한 입장에서 보니 질퍽거리는 하계에서 '쫓는 사냥개와 쫓기는 멧돼지'의 생존투쟁의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이 투쟁과 갈등의 현상이 천국에선 조화의 양상으로 바뀐다.
이상 딜런 토마스와 엘리엇은 다같이 시에서 생각을 이?로 통해서 전개키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토마스의 경우는 그 이미지가 주로 생과 죽음, 종교의 사상에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끝내 초월이 없이 생명세계에 집중되어 있는데 반하여 엘리엇에게서는 그것이 인체나 자연물에 관련지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무도' '순환' '조화'와 같은 중심적 우주 질서의 사상에 이끌리는 듯한 상향적 자세를 드러낸다.


시인에게 영감은 무엇인가

이창배


흔히 시인에겐 영감의 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전광석화 같은 '신의 계시'가 내려 시인은 신들린 무당처럼 영감의 힘으로 자동적으로 시를 써내려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시는 결코 그렇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할 생각인데, 그 얘기는 뒤로 미루고 우선, 그 영감에 대해 말해보자. 영감이란 말은 'inspiration'을 옮긴 말이지만 원어 이상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본래 서구문학에서 희랍 로마시대 이래, 시인은 시작 과정에서 자력이 아닌 초월자의 힘으로 시의 소재나 언어, 리듬 같은 것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호머나 버질 같은 서사시인들은 그들의 서사시의 첫머리에서 반드시 뮤즈신에게 영감을 기원하는 시구를 읊는다. 이것이 서사시의 기법상의 관행이 되어, 비근한 예로 고전 서사시의 전통을 잇는 존 밀튼은 그의 불후의 명작 [실락원]의 첫머리에서 "하늘의 뮤즈여...... 청하노니 나의 모험스런 노래를 도우시라"고 신의 영감을 간구한다.
시가 신의 입김으로 쓰여진다는 생각은 17세기, 18세기 초 근대과학문명의 대두로 인간들의 의식구조가 달라질 때까지 이어졌고, 그후 낭만주의 문학 시대에 이르러서는 시인의 영감의 원천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샘솟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어?. 그러나 시의 원천에 대한 생각이 외부로부터 내부로 바뀌고 난 후에도 시인의 '시심'에 대한 신비스런 생각은 여전히 이어져 오늘날에도 약간 그 흔적이 남아 있었서 시인은 이슬을 먹고 사는 툭스한 사람으로, 그리고 시인의 체험은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것은 비단 시인뿐 아니라 예술가 전반에 해당하는 말이어서 예술가들을 현실세계에서 유리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그들의 기이한 행동거지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시인 卞榮魯는 자서전 [酩酊 40년]에서 술에 취해 살아온 평생의 기행, 기담을 고백했고, 중국의 시성 이태백 또한 술과 더불어 살면서 수많은 명시를 남겼다. 기타 동서고금 예술가들에 얽힌 기담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는 영감이니 신비니 초월 따위를 결코 인정히 않는 의식 속에서 살아온 지 오래다. 과학의 영원한 프론티어로 생각되던 인간 마음의 세계도 심리학의 발달로 그 신비가 허물어졌다. 일찍이 1920년대에 이미 I.A.리차즈는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심리학으로 다룰 수 없는 영역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이 체험하는 세계가 우리의 일상체험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은 물론, 미적 체험이라는 것도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리차즈에 의하여 시인이 겪는 체험은 우리가 조반을 먹고 신문을 읽는 일상체험과 똑같은 레벨로 격하된 셈이다. 그러면 무엇이 다른가. 리차즈는 말하기를 시인이 다루는 체험은 '일상적인 경험이 한층 전개된 것이고 한층 섬세하게 조직된 것일뿐'이라는 것이다. 리차즈가 말하는 체험의 '전개'와 '섬세화'는 정신력의 집중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집중력이야말로 천재의 비밀이다. 한 가지 시상이나 이미지를 붙들고 더욱 깊이 파고들면서 그 생각을 관찰하고 전개시키고 섬세하게 조직해나가는 힘은 시인 자신의 몫이다. 폴 발레리는 '주어진 1행'은 신이나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나머지는 그가 자기 힘으로 발견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영국시인 스티븐 스펜서가 [작시법]이란 글 속에서 소개하는 바에 의하면 천재 음악가 베토벤은 주제가 되는 악상의 단편을 옆에 있는 노트에 적어두고 거기에 매달려 여러 해에 걸쳐 그것을 전개시켰다고 한다. 처음 그가 적어 놓은 악상은 아주 미숙하여 학자들은 이런 것을 가지고 어떻게 그런 기적적인 결과로 발전시켰는가 하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모차르트는 교향곡이나 사중주나 심지어는 오페라의 장면을 여행 중에, 혹은 급한 용무를 보면서 순전히 자기 머리 속에서 생각해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그가 평생 음악에 몰두하고 그 속에서 갈등, 고민한 수많은 시간이 있었기에 하나의 악상을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펜더는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어느 때 어떤 생활의 구체적 장면에서 한 마디의 단어나 몇 마디의 어구, 문장 같은 형식으로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노트에 적어 놓는다. 그것을 그는 '상상적 사고방식'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그 착상은 상상적 사고를 전개시킬 수잇는 단서여서 그것을 산문으로 설명하기는 쉽지만, 막연한 추상에 불과한 이러한 사상을 이미지로써 구상화하기 위하여서는 오랜 인내와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영감'으로 떠오르는 한 마디 단어나 문장은 별로 매력이 없고, 그것이 과잉 상태에 이르면 시를 쓰지도 못하고 생각만으로 그치고 만다고 한다. 써보려고 손을 대는 것 중에서도 일곱, 여덟은 완성을 못 보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택하는 방법은 되도록 많은 사상을 아무리 엉터리 형식으로라도 노트에 적어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서재의 선반에는 지난 15년 동안에 모아진 그런 노트가 20권은 족히 쌓여 있고, 그중에서 시를 쓸 때 어떤 것을 이용하고서 나머지는 버려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펜더의 경우 어쩌다 떠오르는 착상(영감)이 시로 살아나는 경우는 드물고, 시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의 노트에 산적한 많은 경험의 스케치 중에서 이것과 저것이 결합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겪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 변형 과정을 엘리엇은 화학적 변화라고 했는데, 이 비유적 표현은 매우 설득력 있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엘리엇은 그 유명한 '몰개성 시론'에서 시인의 마음 속에 쌓이는 수많은 생각과 체험의 조각들이 시인의 '제작과정'중에 새로운 형태로 모양을 갖추어 나타난다고 하였고, 그 나타난 작품 속의 체험은 시인 자신의 체험과는 다른 '만들어진 체험' 즉, 시인 자신의 개성에서 벗어난 '몰개성'의 '예술적 체험'이라는 것이다. 즉 그것은 화학적 변화를 통한 새로운 체험인 것이다.




출처 : 빛고운 창가
글쓴이 : 빛고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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