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탱자향기를 맡아봐>
-맑음 전숙-
노오란 탱자향기를 맡아봐
쓸쓸한 마음 정처 없이
기약 없는 누군가가 그리워 질 때
노오란 탱자향기를 맡아봐
꼭 노오란 탱자라야 해
새파란 탱자는 아직 눈물이 덜 말랐거든
하늘이 잔뜩 찌푸린 어느 흐린 날이나
이슬 같은 비가 소리 없이 대지를 적실 때
함박눈이 펑펑 울어 젖힐 때
가슴이 흐느끼고
두 눈이 안개처럼 흐려올 때
그래서 눈시울이 수정구슬로 촉촉이 젖어들면
노오란 탱자에서는 쌉쌀한 향기가 스며 나와
첫사랑에 실연당한 탱자이야기야
이팔청춘 어여쁜 꽃으로 피어날 때
탱자는 백옥 같은 순백 린넨 원피스를 입고 사랑을 고백했대
하이얀 탱자꽃 순정은
사나운 가시 돋친 외모에 가리어져
안타깝게도 실연당하고 말았어
탱자의 첫사랑은 탱자를 까맣게 잊었지
잊혀진 탱자의 가시는
더욱 날카롭게 거세지고
제 몸을 엮고 얽어서
부비트랩 같은 고통의 감옥에 가두었어
남들은 흰 꽃이 떨어지자 사랑도 잊은 줄 알았대
사랑을 고백한 하얀 린넨 원피스를 훌훌 벗어던졌으니
이제 사랑의 상처가 아무나봐 그렇게 생각했지
탱자의 사랑은 안으로 곪고 삭아서
고승의 오색영롱한 사리처럼 구슬이 되었대
버림받은 사랑으로 노오랗게 굳어버린
제 가슴을 열어 우리에게 사리를 보여주었어
쓰라린 눈물방울이 수정씨앗이 되어
탱자 속은 수정구슬로 채워지고
수정구슬에서
잊혀져 망부석으로 굳어버린
사랑의 향기가 스며 나오는 거야
가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는
가슴 저미는 쌉쌀한 향기가
울컥울컥 우러나는 거야
노오란 탱자향기를 맡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