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꽃밭
전숙
보건진료소 하얀 벽에 노을 꽃밭이 걸려 있다
사금 든 꽃, 고실라진 꽃, 검버섯 가득 피운 꽃
기역자로 휘어진 꽃들이 이글거린다
언제 찍혔나, 저 꽃밭
들여다보니 구멍이 뻥뻥 뚫려있다
시간의 직업은 구멍 뚫는 일
폐가처럼 꽃들의 옆구리에 구멍이 늘어간다
구멍을 통해 바람 한줄기 불어나가고
눈물이 방울방울 걸어온다
약과 주사로 시간과 노역의 구멍을 메우고
안마의자의 안마를 받아야 하루를 건너는 꽃들
달달한 차 한 잔씩 나누며 저녁놀이 타오른다
더 이상 잊히지 않으려는
기억의 호미질에서는 캄캄한 목초액만 올라온다
어느새 숯처럼 타버린 시간들
길은 점점 어두워지고 구멍이 아가리를 벌려도
무성한 풋것과 맞닥뜨려 지는 법 없다
푸른 풋것들 노욕이라 꼬집지만
그 노욕이 저녁놀을 저리 뜨겁게 사르는 숯덩이다.
- 《시와사람》, 2014년 여름호
어머니가 한 번씩 도시로 나오면 약 타고 주사 맞는 것이 일상이다. 그날에는 또 효과도 없는 물리치료 받고는 무릎을 벌겋게 데고 온다. 가뭄에 콩 나듯 시장골목 미용실에서 ‘오래가는 파마’를 하기도 하는데, 그때는 그 옆 농약사에 들러 이것저것 한 보따리 담아온다. 노역의 구멍을 메우는 시간에도 텃밭 걱정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푸른 풋것들 노욕이라 꼬집’는 어머니 행동을 가만 바라보기로 했다. 쥐가 다 먹는 옥수수는 뭣 하러 심느냐는 둥 고구마는 한 박스 사 먹으면 된다는 말을 이제 하지 않는다. 다만, ‘뜨겁게 사르는 숯덩이’ 앞에서 가슴 아프고 울컥 올라오는 울음만 토닥토닥 다독거리게 된다. 추석이 벌써 내일모레로 다가왔다. 노을 꽃밭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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