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서 꽃이 핀다
전 숙
모든 상처에서는 꽃이 핀다
유년의 상처에 꽃이 피어있다
무르팍을 으깬 돌멩이가 꽃잎으로 박혀있다
꽃잎을 누르면 검색창이 열리듯 상처의 기억이 열린다
밥 대신 누런 코를 들이마시던 아이의
허물어진 담벼락 같은 가난도 망초꽃으로 피어있다
고래가 죽을 때 핀다는 ‘붉은 장미’에는 가시가 없다
상처는 가시를 버리고 꽃의 길을 택했다
마지막 호흡에서 피어나는 붉디붉은 상처의 꽃
‘신은 살아있다’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벽에 손톱으로 새긴
아리디 아린 상처의 꽃
상처가 꽃처럼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기억한
암각화이기 때문이다
결코 잊지 말라고
상처가 오체투지로 새긴
눈물의 전언이 꽃으로 피어난다
밟히고 밟힌 풀꽃의 눈망울을 들여다보라
매듭 매듭 저린 아픔과 상처의 기억이
다시는 밟히지 말라고
눈부처로 피어 있다.
—《시와 사람》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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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 / 1955년 전남 장성 출생. 2007년《시와 사람》으로 등단. 시집 『나이든 호미』『눈물에게』.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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