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살구꽃**
*전숙*
오라버니, 올해도 살구꽃이 수줍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의분이 살구나무 나이테에 각인된 그날
오라버니는 살구나무의 하늘을 만졌지요
짙푸른 파도가 남실거리고
살구나무가 꿈꾸던 향기
불끈 쥔 오라버니의 주먹으로 한 움큼 건너왔지요
호수를 깨우는 바람의 날개가 눈부셨지요
홀연히 검은 그림자 드리우고
푸른 혈기는 무릎 꺾인 채
백옥 같던 순전한 향기 한순간에 멈추고 말았지요
꽃들의 손발이 묶이고, 들풀들의 신음소리
펄펄 끓는 심장에 생가시처럼 박히는데
어찌 안방에 앉아 더운밥 먹을 수 있겠냐고
이마에 손그늘 모두어 책상물림되겠냐고
턱수염 푸릇하던 나무들이 떨쳐 일어난
그 백일 무렵
뒤꼍의 살구나무엔 살구가 발갛게 익었습니다
슬픈 훈장처럼 점점이 찍힌
오라버니의 혈흔이 밤길에 불 밝힌 초롱같았습니다
시큼한 살구는
차마 펼쳐내기 너무 시려서
어머니의 장독대에 깊이깊이 묻어둔 설움이지요
해마다 사월이 오면
오라버니의 심장이 봉인된 살구 잎새는
갈맷빛 혈기가 새움을 틔우고
들녘마다 분홍빛 함성이 만발하지요
우뚝 자란 오라버니의 옛 꿈들이
살구나무의 하늘에 되살아나면
자유민주의 옹골찬 열매가
또다시 온 산하에 불끈불끈 맺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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