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의 단계 - 퇴고
이상옥 (교수 , 시인)
한 편의 시가 처음 완성되고 나면, 초고에 불과하다. 초고는 완제품이 아니기에 독서 시장에 선뜻 내보이면 안 된다.한 편의 시가 처음 완성되고 나면, 초고에 불과하다. 초고는 완제품이 아니기에 독서 시장에 선뜻 내보이면 안 된다. 초고가 완성되고 나면 코치고 또 고쳐야 한다. 소위 말해 推敲하는 마지막 작업이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시쓰기의 과정이 시의 종자를 얻고, 그리고 종자의 싹을 틔워 성장시킨면서 마음의 시의 지도를 한 장 갖고서 본격적인 시쓰기를 하고,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4단계가 시쓰기의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이다. 시쓰기는 개인적 차이에 의해서, 혹은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작품마다 모두 창작과정이 동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어제 저녁에 <유리그릇에 관한 명상>이라는 시를 거의 단숨에 써버렸다. 쓰고 나서는 퇴고도 하지 않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 시를 읽으면서 퇴고를 하려 해도 별로 고칠 대목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한 숨에 시를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단숨에 시가 완성된 것은 나 자신이 이 시의 테마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생각을 깊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몸의 불완전성,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늘 실감하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것인데, 이 테마가 유리잔이라는 시의 몸을 만난 순간적으로 형상화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시간 외형상으로는 단숨에 씌어진 것 같지만, 사실은 무의식 상태에서라도 시가 충분한 숙성의 과정을 거쳤던 것으로 볼 수 있다.
蔽一言하고 시는 충분한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또한 충분한 퇴고의 과장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고치다라는 의미를 더욱 실감하기 위해서 퇴고의 어원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推敲는 널리 알려진 바대로 당나라 시인 賈島의 詩作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어느날 "鳥宿池邊樹, 僧推月下門" 즉, "새는 못가의 나무에 깃들과, 스님은 달 아래 절문을 민다."라는 시를 지었는데, 여기서 '推'자로 할까, 아니면 '敲'자로 할까, 결정을 하지 못하고 거리를 거닐다가 그만 京尹(시장 같은 관직)의 행차를 미쳐 피하지 못한 것이다. 賈島는 그만 끌려가서 자초지정을 말하게 되었는데, 전후사정을 들은 京尹은 당대의 명문장가인 韓退之갔였기에 밀 推보다는 두드릴 敲가 좋다라고 한 수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이 일화에서 생긴 말이 바로 推敲이다.
賈島의 시적 능력은 韓退之에게 조금 떨어지는 듯하지만, 시를 쓰는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시의 한 자를 제대로 읊기 위해서 계속 걸으면서 생각하다가 京尹의 행차도 모를 만큼 집중하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소동파의 <赤壁賦> 초고가 세 광주리나 되었다는 얘기며, 구양수가 초고를 벽에 걸어두고 방을 드나들며 그것을 고쳤다는 등, 퇴고에 관한 일화는 부지기수이다.
발레리가 퇴고를 하지 않은 문장은 북더기와 같다고 한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시는 고쳐져야 한다. 왜냐하면, 시를 쓸 때의 내포적 시인은 그 에너지가 매우 증폭되어 시창작을 하게 되기 때문에 실제 일상적 자아로 돌아와서 그 초고를 보면, 대부분 좋은 작품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상회하여 창작한 작품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고 그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시라고 이름지어져 씌어진 것은 일상적 산문과 비교하면 그 성취도는 높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미지나 상징, 따위가 교합하여 빚어진 시라는 텍스트는 언뜻 보기에 좋게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하루나 이틀이 지나고 냉정하게 객관화시켜서 바라보면서부터 그 시의 결함을 스스로 읽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일상적 자아가 내포적 시인이 되어 시를 쓰게 되면, 영감의 작용과 함께 때로는 매우 고도화된 에너지로 증폭되어 시를 쓰게 되는데, 그 결과물인 초고가 일상적 자아로 돌아와서는 그 작품이 불후의 명작처럼 보일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때는 초고를 덮어두고, 객관적 거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최영철 시인이 출판사에 근무할 때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 일을 할 때, 가끔 대학노트 몇 권 분량의 시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천재시인들이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편을 갈겨쓰며 집에는 이만한 분량이 또 있다고 자랑한다.
자기 시가 한국시사를 바꾸어 놓거나, 출간만 하면 공전의 대 히트를 칠 것이라고 장담한다.
시는 마구 양산하는 것보다 한 편의 시를 고치고 또 고쳐서 완결성을 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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