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e조은뉴스/서울e조은뉴스=김기준기자]평소 산맥같은 시 한편 쓰고 싶다고 입릇처럼 말하며 광주 문단을 이끌어온 사람이 있다.아시아 문화중심도시 광주에서 광주문인협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펜클럽 광주지회를 이끌고 있는 김종(61) 시인.그의 이력은 화려하다.경희대 대학원 문학박사, 대학시절 중앙일보에 신춘문예 '장미원' 당선, 대학시절 학도호국단장 역임(현,총학생회장).한국문화원협의회 광주지회장 등등. 술 자리는 마다 하는 법이 없고,그의 유머와 입담은 끝이 없다.자신의 소신으로 선택 가입한 단체에는 온몸을 던지고, 한번 인연 맺은 사람은 상대가 떠나지 않는 한 끝까지 챙기는 성격이다.그의 주위에 늘 사람이 넘쳐나는 이유이고, 몸 담고 있던 대학교에서 승승장구하는 비결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밀쳐냈다.그가 A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학내분규가 한바탕 휘몰아쳤다.이른 나이에 문단을 휘저은 것이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학교 발전을 위해 공보실장을 맡아 일한 것이 눈 밖에 났을까? 적,아니면 동지의 공식으로 무차별 물고뜯던 분위기 속에서 체질상 시류에 영합하지 못하는 그는 어느 쪽 비위도 맞추기 싫었다. 그는 유학을 떠났다. 일본 동지사 대학에서 교환교수 신분으로 1년을 지내다가 귀국하여 복직을 신청했다.하지만 복직은 되지 않았다.신분은 소속대학 교수 신분이면서 출근을 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출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 넥타이를 매고 문 밖을 오가는 세월이 계속되었고, 지리한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이 부분은 본보가 시간을 두고 취재할 예정이다. 구정을 민족명절로 인정하지 않을 때에도 제자들에게 '설'임을 강조하던 그는 민족주의자이다. 그의 저서 「삼별초,그 황홀한 왕국을 찾아서」는 자신의 인생관이 투영된 작품이다.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충성을 다했지만 결국 소외되거나 밀려나게 되고 그 진심을 인정받는 것은 사후에나 가능한 역사적 현실이 김종 교수의 개인사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김종 교수의 말에 취했다 깨어난 순간,그 많고 많은 좋은 말은 다 어디로 숨고, 하필 최근 방영된 KBS 드라마 '추노'의 주인공이 뱉은 대사 '지랄 같은 세상'이 기자의 머리를 스쳐갔는지 모르겠다. 그가 10년 전부터 그림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다.그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작년까지 13회나 개인전을 열며 대한민국 화단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김종씨의 그림은 파격을 넘어 혁명적이다.한지에 수채화로 그리는 그 재료 선택이 그렇고,그 누구도 닮지 않은 그 독특한 화풍이 그렇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의 지적 그대로다. 시와 그림의 절묘한 접합이 예술성을 끌어올린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은 진즉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아내가 화가이고,딸도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미술 재료로 손쉽게 습작할 수 있었거든요" 그의 아내는 A고등학교 미술교사이고, 딸은 홍익대학교에 재학중인 것을 기자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터다. "백치의 머리와 색맹의 눈으로!" 이것이 김종 교수의 그림에 대한 화두다. "소위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면서 내 사랑 나의 그림에 대하여 싸움에 임하는 장수처럼 이 말을 출사표로 던졌습니다. 지금까지의 문학적 성과와 관련하여 앞으로 내가 어찌 변할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다만, 내 그림이 지상에 존재하는 한 그것들은 백치와 색맹의 심미적 소산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평생 시를 써오던 분이 무엇을,왜,어떤 정신으로 그림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한다. 눈물없는 사람은 눈물 가진 자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한다.그늘아래 있어보지 않은 사람은 남에게 그늘을 드리울 줄 모른다. 아픔을 겪어봤기에,소외된삶을 살아봤기에 그는 어느 한 사람의 마음도 보듬을려고 노력한다.회식이 끝나면 포장마차이든,호프집이든,아니면 노래방이든 두세 곳을 경유한다.아는 사람이 경영하는 술집을 이용해주지 못해 미안해서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의 18번 '가슴 아프게'를 들으면 아프던 가슴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아마도 그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제 출강하던 대학 강의를 접었다. 시를 쓰며 광주 문단에 좀더 관심을 갖기 위해서,그림을 그리면서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의 개인전은 파리입성을 앞두고 있다. 그는 세계미술사의 파천황을 꿈꾼다. 그의 예술가적인 기질과 그림그리는 기법을 볼 때 승산이 있어보인다.그보다 어느 화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그가 먼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그것은 한국화단의 편가르기다.
*위글은 다음 검색창 '산맥',혹은 '어지러운 세상'을 입력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지랄같은 세상'이라고 글을 썼는데 편집과정에서 '어지러운'으로 바꿨네요. 같은 내용의 기사가 '인터넷뉴스 신문고'에 그림과 함께 게재되어 있습니다.교수님의 활동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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