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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

전숙 2005. 10. 28. 21:30
 

바람개비

                                  맑음 전숙


따라나서려 신발 단정히 마련해두었지요

밤새 두근거리는 하늘꼭두의 별을 헤다가

희뿌연한 새벽에 길을 나섰습니다


눈물보따리 가슴에 끌어안고

웃음은 괴나리봇짐에 꾹꾹 눌러 묶어서 등에 지고

옷자락 지긋이 붙들고 따라나섰는데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가버린 뒷모습

찢겨진 옷자락만 외로이 비틀거립니다


회오리로 돌아가며 팔랑대던 곡예길

작은 오름에서 내려다보니

신발끈 고쳐 맬 때마다 흘러나온 눈물콧물들

웃음봇짐이나 홀라당 풀어헤쳐

하하 호호 웃음소리나 놓아줄 걸

등에 짊어진 웃음괴나리

손도 멀고 눈도 머니 마음도 멀어

봇짐 속에서 곰팡이 피게 묶어두고

애먼 눈물보따리만 끌러대니

화가 나서 뿌리치고 떠나버린 게지요


지나쳐온 아름다운 풍경들

소중한 만남들

착한 이웃들

더 좋은 것만 찾아 내달리느라 떠나보낸 시간들

만족할 줄 모르고 탐욕만 쫓다가 흘러가버린 바람들

모두들 얄미워서 가버린 게지요


후회는 언제나 한걸음 뒤에 당도하니

아쉬움만 눈 둘 데 없어 얼굴 붉어집니다

                                           200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