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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불회사

전숙 2005. 9. 8. 19:38

 

가을 불회사

 

                                             맑음 전숙

 


불회사 속 깊은 가을

떠나는 아쉬움에 눈물 번지듯

이별의 춤사위 단풍 흔들릴 때마다

아름드리 비자나무에 기대어

비자향 떫게 스며 나오는 추억을 길어 올리면

길 떠난 두레박은

박제된 기억들 우글거리는

심연의 우물에서 무엇을 퍼 올리려나

청신남을 만나고 청신녀를 불러내어

이제 다시 생의 고개를 넘으라 하면

그들은 또 어찌 넘으려나


발갛게 한 生을 익혀가는 똘감

떫다 궂다 통박에도

그저 주홍빛 가슴 찰지게 열어주네

저 멀리 바다 같은 시퍼런 하늘 아래

한 생을 오로지 하늘로 뻗어 오르는 대숲에는

극락으로 뭉게뭉게 바로 건너는

목화열매 하얀 솜구름 극락꽃이 피어오르네

단풍든 산야에서는 다람쥐도 다 가진 양

갖가지 산열매로 오는 겨울 뿌듯하건만

어느새 덕룡산 가을 뒤꼍에는

한잎 두잎 이별의 아픔 뚝뚝 낙엽 지는 소리


다 주고 다 버리고 가는

단풍진 흔적을 안아주며 아쉬운 회한들

다 용서하고 싶네

다 용서받고 싶네

온갖 살아있는 생명들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산사에서 말없이 수행되는

마음 가득한 단풍들의 낙엽보시

그리고 주는 대로 받아 챙기는 염치

넉넉하게 품어주는 가을 열매들

 


가을 불회사에 가면

흘러가버린 아쉬운 추억들 길어 올리고

그리 곱고 어여쁜 마음들을 만나는 기쁨에

이리 갈 길이 바쁜 것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