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강

[스크랩] 시와 연애하는 법 16~26강/ 안도현

전숙 2010. 7. 7. 12:13

16.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혀라


‘본뜨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본보기로 삼아 그와 같게 하거나 흉내내어 그대로 따라 한다는 뜻이다. 미술시간이나 무슨 공작물을 만들 때 곧잘 쓰는 말이다. 떠야 할 본(本)을 문자나 행동으로 따라 하는 일을 모방이라고 한다. 또 그림이나 원본을 베끼는 일은 모사(模寫)라는 말을 쓴다. 동양화나 서예를 배우는 사람이 첫 번째 하는 일이 바로 모사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창의적으로 붓을 놀릴 자격이 주어진다. 붓을 놀린다는 어떤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모사는 필수요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사람은 모방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의 연속성 위에 놓인 극이 행동의 모방이라고 했다. 이 모방론은 문학의 기원과 발생을 설명하는 일에서부터 창작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에까지 두루 활용된다. “인간의 욕망 자체에는 전염병 같은 본질적 모방 경향이 내재해 있다”(<폭력과 성스러움>, 민음사)고 한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다. 그는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모방본능은 동질성의 본능과 통한다고 하였다. “자기가 지향하는 존재를 발견할 때마다 그 추종자는 타인이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을 욕망함으로써 그 존재에 도달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뛰어나거나 잘난 상대방과 유사해지려는 욕망은 본능적으로 언어 표현이나 행동을 통해 나타나게 마련이다.


〈억지 모방해 ‘아류’ 그치지 말고〉
〈변화를 추구하되 ‘법도’ 살필 것〉


예술작품의 모방에 관한 논의는 서양보다 동아시아에서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고대부터 당대까지 중국 시학의 요점은 모방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쉰(魯迅)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견준 중국의 고대 문학이론서가 있다. 유협(465~532로 추측)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이 바로 그 책이다. 그는 전고(典故)를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경서(經書)의 우아한 어휘를 공부하여 언어를 풍부하게 한다면 이는 광산에 가서 구리를 주조하고, 바닷물을 쪄서 소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모방을 배우는 것, 그게 글쓰기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중국의 시인과 이론가들은 전고의 활용 여부가 창작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즉 앞선 전통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심조룡>은 ‘통변(通變)의 기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통’이란 전통의 계승을 가리키는 말이고, ‘변’은 말 그대로 전통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론은 “문장을 이루는 문학양식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지만 표현의 기교에는 정해진 규율이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 고대부터 중국인들은 창작에 임할 때에 작가의 진정성(문심)과 언어의 예술적 표현(조룡)이 조화와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시각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고를 활용하는 것을 모방의 한 방식이라고 본다면, 송대의 황정견(1045~1105)을 필두로 한 강서시파는 이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단 한 글자도 출처가 없는 것이 없다”(無一字無來處)고 하면서 옛사람의 시를 많이 읽고, 학식을 바탕으로 시를 지어야 한다고 하였다. 황정견은 시를 쓰는 방법으로 두 가지 유명한 이론을 제시했다. 옛사람의 시원찮은 말을 빌려 써 시를 돋보이게 한다는 ‘점철성금법’(點鐵成金法)과 옛 시인의 뜻과 표현을 빌려 새로운 시를 낳는다는 ‘환골탈태법’(換骨奪胎法)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금대에 와서 왕약허(1174~1243) 등에 의해 정면으로 비판을 받는다.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독창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강서시파의 이론은 표절, 답습, 짜깁기, 도용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의 시인들이 앞선 문장의 활용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인 것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통의 계승과 변화·발전 사이의 갈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중국 시인들에게 있어 모방의 문제는 단순히 표절 여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의 형식, 주제나 소재, 창작기법 등 시 창작의 전반에 걸쳐 모방의 방식을 줄기차게 사유했던 것이다.

옛글을 활용하는 ‘용사’(用事)에 대해 <중국 고전 시학의 이해>(이병한 편저, 문학과지성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용사’라는 표현을 ‘모방’으로 바꾸어 간추려 본다.

첫째, 모방을 위한 모방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죽은 시체를 쌓아놓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억지로 모방을 해서는 안 된다. 누에가 뽕잎을 먹되 토해내는 것은 비단실이지 뽕잎이 아니다. 셋째, 모방을 융화시켜 매끄럽게 해야 한다. 물 속에 소금을 넣어 그 물을 마셔봐야 비로소 짠맛을 알게 되는 것 같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주역에서는 “궁하면 변화하게 되고, 변화하면 통하게 되며, 통하면 오래갈 수 있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고 했다. 우리의 연암 박지원도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화할 줄 알아야 하고, 변화하되 능히 법도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고 글쓰기의 지침을 이야기한 바 있다.


〈모사 관문 거쳐야 붓 놀릴 자격〉
〈중국 시가는 모방 놓고 논쟁도〉


현대에 와서도 시 창작에 대한 고민은 모방에 대한 고민과 궤를 같이한다. 모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가령 모방을 한다면 어디까지 모방하고, 무엇을 모방하며, 언제까지 모방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습작기에 있는 사람들의 모방의 형태를 한번 살펴보자. 우선, 전범이 되는 시인이나 시적 경향을 추종하는 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주제와 소재를 비롯한 시의 내용을 답습하는 일, 운율이나 언어 사용 기법 등 형식을 답습하는 일, 그리고 구체적인 문장이나 어휘 표현을 베껴 도용하는 일이 모두 모방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에다가 창작자 자신이 자신의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동어 반복하는 일도 일종의 자기모방에 해당한다.

김춘수는 모방을 일삼는 사람들을 아류라는 말로 평가 절하한다. 아류란 스타일과 소재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독창적인 어떤 시인의 뒤만 따라다니면서 세상에 남이 입다가 낡아서 벗어던진 헌옷만을 주워다가 헐값으로 팔아서 퍼뜨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박성을 통박하면서도 그는 습작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모방하게 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발 물러선다. 그러나 “습작이란 남의 영향권을 벗어나는 작업”이므로 남의 아류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쯤에서 당신은 작은 답을 구하기 바란다. 혼자 써놓고 혼자 보는 시라면, 그걸 습작이라 한다면, 남의 옷을 입고 자신의 옷이라고 우기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모방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에서 시적 영감이 번개 치듯 심장으로 날아오기를 기다리지 마라. 그보다는 차라리 흠모하는 시인의 시를 한 줄이라도 더 읽어라. 시험을 대비하는 공부도 하지 않고 ‘나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쳐보는 행위는 부도덕한 짓이지만 훔쳐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답안지 쓰기를 포기한 사람은 바보다. 당신은 모방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지 마라.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고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정희성, <아버님 말씀>)대로 말한다면 당신에게 모방을 하라고 하면 도둑질을 하라는 것이 되고, 당신에게 새로이 창조하라 하면 구차한 표현을 일삼으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모방을 배워라. 모방을 배우면서 모방을 괴로워하라. 모방을 괴로워할 줄 아는 창조자가 되라. 모방의 단물 쓴물까지 다 빨아들인 뒤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까스로 낼 수 있을 때, 그때 가서 모방의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즐거운 창조자가 되라. 모든 앞선 문장과 모든 스승과 모든 선배는 당신이 밟고 가라고 저만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징검돌 삼아 그들을 밟고 뚜벅뚜벅 걸어가라. 시인은 모든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이 구성할 임무를 타고난 사람들이므로.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7. 시 한 편에 이야기 하나를 앉혀라



비탈진 달동네 개똥이네 집 지붕이 비만 오면 샌다거나 공장에 나가는 순이의 얼굴이 핼쑥하다는 이야기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가 그랬다. 표현의 자유란 애초에 없었으므로 눈앞에 벌어지는 참담한 현실에 대해서도 침묵할 것을 강요받던 시절이었다.
그때 신경림의 <농무>가 솟아나왔다. <농무>라는 한 권의 얇은 시집이 조근조근 따지듯이 되새겨낸 세계는 현실의 사실적 묘사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사건이 될 만했다. 얻어 쓴 조합 빚과 술집 색시의 분 냄새와 담뱃진내 나는 화투판이 소외의 장막을 활짝 걷어 젖히고 신선한 시어가 되어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파장>)는 화두를 접한 ‘못난 놈’들이 비로소 소주잔을 들이키며 당당히 어깨를 흔들 수 있게 되었다.


〈침묵 강요하는 참담했던 시절〉
〈신경림 ‘농무’ 현실묘사 ‘충격'〉


<농무>가 아직 내 책꽂이에 꽂히기 전, 까까머리 나는 이른바 고등학생 문단을 들락거리며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문학 소년이었다. 쥐뿔도 없는 내가 잘난 척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시를 척척 써낼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 기술을 나에게 전수한 것은 요샛말로 모더니즘이었다. 나는 가증스러울 정도로 치밀하게 언어를 계산하는 데 몰두했다. 삶의 남루와 슬픔을 함부로 까발리지 않아야 한다는 창작의 원칙 같은 것도 나름대로 정해두고 있었다. 나는 그저 향기롭기만 한 시를 쓰고자 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겨운 풍경들이 내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전에는 나와 어울려 놀았으나, 내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담겨 있던 풍경들이 생생하게 다시 인화가 되어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가난하나 외롭지 않고, 우리는/ 무력하나 약하지 않다”(<시골 큰집>)는 시집 속의 평범한 좌우명 하나가 실제로 시골 큰집 내 사촌형의 책상 앞에 붙어 있을 것만 같았다. 쓸쓸하고 고단한 줄로만 알았던 하찮은 세계가 한 권의 시집 속에 그렇게 눈부신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다니! 게다가 구태여 말을 비비꼬지 않더라도 시가 태어날 수 있으며, 한 토막의 이야기도 서정을 만나면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새롭게 배웠다.

서정과 서사의 결합, 즉 시에다 이야기를 담는 우리 시의 전통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에 대하여 김기진은, 이 작품이 “생생한 소설적 사건”과 “현실, 분위기, 감정의 파악이 객관적, 구체적”임을 근거로 ‘단편서사시’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객관적인 현실을 형상화해야 하는 프롤레타리아 시의 창작방법론으로 이 용어를 제시한 것이다.
이야기가 담긴 서정시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시가 이용악의 <낡은 집>이다. 이 시에서 이용악은 초근목피의 세월이 우리 민족의 생존을 송두리째 뒤흔들던 1930년대의 상황을 어린 화자의 눈을 통해 절실하게 보여주었다. 그 당시 민중들의 생활상을 마치 단편소설처럼 펼쳐 그려낸 것이다. 이 한 편의 시 안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한 가족이 겪어야 했던 슬픈 이야기가 들어앉아 있다. 아이들은 축복도 받지 못하고 태어나 가난하게 살아야 했고, 가장은 가장대로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야반도주를 감행해야 했다. 떠나지도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시에 하나의 사건이나 이야기를 들어앉히는 이 방법은 1970년대 김지하에 의해 ‘담시’라는 형식으로 발전했고, 신경림의 <농무>를 거쳐 1980년대에는 최두석 등이 ‘이야기 시’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정리한 바 있다.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새 우시어
하이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이용악의 <달 있는 제사>는 전체 5행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주 짧은 시다. 언뜻 보면 이 시에는 세부적인 사건도 없고, 특정한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나 배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중한 서사적 뼈대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짧은 시에도 이야기가 들어 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어머니의 상실감을 아프게 바라보는 화자가 선명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슬픔은 ‘이슬이 두어 방울’ 속에 집약되어 있다. 이 두어 방울의 이슬은 이슬의 양이나 슬픔의 무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두어 방울은 현실의 슬픔이 감당할 수 없이 벅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반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슬픔을 이겨내려는 안간힘의 표상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용악은 ‘달빛·박꽃·이슬’이라는 전통적인 자연서정에다 당대 민중의 보편적인 삶의 고통을 ‘두어’라는 관형사로 압축하고 싶었으리라.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황인숙의 시 <삶> 전문이다. 단 석 줄로 삶을 간명하게 정리하는 이 시는 자꾸 읽어볼수록 아프다. 문장의 끝에 찍은 물음표와 말줄임표, 그리고 마침표를 유심히 보기 바란다. 첫 행의 물음표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두 번째 행의 말줄임표는 이루어지지 않는 꿈의 좌절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마지막 행의 마침표는 삶의 어찌할 수 없음으로 인한 체념, 혹은 그래도 살아가야 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따위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시에서 외상값의 의미도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확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부모에 대한 빚,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빚, 이웃에 대한 빚… 그런 외상값 때문에 사는 것, 그게 삶이라는 것을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이야기-서정 만나면 ‘시’ 탄생〉
〈감정 구성하고 소재 장악해야〉


이렇듯 아무리 짧은 시라도 한 편의 시에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사건의 전개와 인물의 배치에 관심을 두는 서사지향의 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하나의 관념이나 순간적인 이미지의 포착만으로도 충분히 한 편의 시가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인은 머릿속에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해 놓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소재에 대한 시인의 장악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사를 쓸 때처럼 시에 도식적인 육하원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의 독자가 바라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시인의 머리는 매우 세밀한 육하원칙을 바탕으로 시를 통제해야 한다. 시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감정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구성한다는 것은 드러내고 싶은 감정의 순서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시도 하나의 구조물이라고 하며 시에도 기승전결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시의 기승전결 구조가 겉으로 보이지 않고 시 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시인은 머리와 가슴 속에 이야기를 쟁여두고 시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속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나희덕의 <허공 한줌> 전문


좀 길지만 전문을 인용한다. 이 시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판타지의 힘을 빌린 아기 엄마 이야기 하나와 그 이야기를 듣고 옮기는, 귀가하는 화자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죽음으로 아기를 살리는 모성도 감동적이지만 삶의 어떤 집착으로부터 풀려나는 한 인간(화자)의 모습이 시를 읽는 독자까지도 시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여 해방시킨다. 시인의 뛰어난 소재 장악력이 감동을 낳았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8.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라고 외친 햄릿의 고민은 펜을 들고 백지 앞에 앉은 시인의 고민이기도 하다. 시를 써야겠다는 그 순간부터 시인은 햄릿처럼 고민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성자와 창녀 사이에서, 수다와 침묵 사이에서, 욕망과 해탈 사이에서, 감성과 지성 사이에서, 내용과 형식 사이에서, 관조와 참여 사이에서,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시인은 정처 없이 흔들리면서 고민하는 자다.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갈등하는 사람, 그가 시인이다.


〈창작은 자기와의 끝없는 고투〉
〈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라〉


시를 가슴으로 쓸 것인가, 손끝으로 쓸 것인가? 습작기에 이런 주제를 두고 누구나 한번쯤 입씨름을 해봤을 것이다. 사소하지만 쉽게 해답을 찾기 어려운 화두 중의 하나다. 작품의 진정성(가슴)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표현기술(손끝)에 심혈을 기울일 것인가?

굳이 나누자면 나는 손끝의 문학을 먼저 배운 축에 속한다. 시에 처음 눈을 뜬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나는 시를 ‘쓰는’ 소년이 아니라 ‘만드는’ 소년이었다. 어쩌다 새로이 하나의 단어와 문장을 만나면 그것들이 주는 울림 때문에 몇 날 며칠 아팠다. 어떤 단어는 환각제 같았고, 어떤 문장은 하느님 같았다. 그것들은 나를 꽁꽁 묶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했고, 목마르게 했고, 그러다가 어느 때는 또 하염없이 나를 해방시켰다. ‘측백나무’라는 말을 만나면 나는 측백나무의 모양과 빛깔과 향기에 취해 다른 나무들을 볼 수가 없었다. ‘이마’라는 말도 그 무렵 나를 사로잡은 말 중의 하나다. 어느 날 이 말이 나를 강타했다. 이마는 ‘얼굴의 눈썹 위로부터 머리털이 난 아래까지의 부분’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나를 설레게 했다. 이마는 때로 ‘밝다’라는 형용사의 변형된 명사형이었고, 햇빛이 비치는 아침의 연못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찰랑이는 머리카락이었다. 언어가 아니라 마치 무슨 환상의 기호 같았다. 나는 말에 사로잡혀 말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말의 감옥 속에서 행복했으므로 거기를 벗어나기 싫었다. 나는 말이 지시하는 대로 손끝으로 또닥또닥 시를 만들 뿐이었다.

1980년,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세상은 손끝으로 시를 만드는 일을 회의하게 만들었다. 대학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슴으로 쓴 시가 진짜 시다.”
시를 합평하는 자리에서도 술집에서도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선배들은 또 이런 말도 했다.
“시를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를 살아야 해.”
아아, 시를 쓰지도 못하는데 시를 살아야 한다니! 손끝으로 시를 만지작거리던 나는 난처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삶과 시의 일치를 강조하던 그 시기에 나는 선배들의 조언이 문학적 허영의 표현에 불과하다면서 슬쩍 대들어보기도 했다. 그런 나를 향해 선배들은 일침을 가했다.
“자네 시는 뒷심이 약해!”
이때 들은 ‘뒷심’이라는 말 때문에 나는 거의 1년 동안 뒷심이 강한 시란 뭘까, 하고 혼자 고민을 거듭했다. 나를 고민 속으로 몰아넣은 그 선배는 심각한 얼굴로 이런 말도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어제 다 읽었는데 말이야, 삶의 고통이 뭔지, 죽음이 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그리하여 나는 서서히 문학의 무거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늘 손에 들고 있던 박목월과 서정주와 김춘수와 정현종 시집을 내려놓고 선배들이 권하는 역사와 사회과학 책들을 집어 들었다. 시집으로는 고은과 신경림과 김지하와 이시영의 이름이 든 것을 탐했다. 그리고 시학 강의실에 일찌감치 와 앉아 있던 보들레르와 바슐라르 같은 서양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아졌다. 꼭 그런 것도 아닌데 왠지 그렇게 해야만 시를 가슴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 황석영이 한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은 “소설을 엉덩이로 쓴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것은 작가가 소설에 투여하는 집중적인 시간과 인내의 중요성을 말한 것일 터이다. 어찌 소설뿐이랴. 시를 쓰려거든 당신은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쓰고, 엉덩이로도 쓴다고 생각하라. 가슴으로는 붉고 뜨거운 정신을 찾고, 손끝으로는 푸르고 차가운 언어를 매만질 것이며, 엉덩이를 묵직하게 방바닥에 붙이고 시에 몰두하라.


〈손끝으로 또닥또닥 쓰던 내게
“가슴으로 쓴 시가 진짜 시다”〉


감성을 앞세워 쓸 것인지, 지성을 바탕으로 쓸 것인지도 고민하지 마라. 김춘수는 “일상 속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느끼느냐 하는 능력”을 감성이라 하고, “비교하고 대조하는 작용”을 지성이라 한다면, 그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면 안 된다고 하였다. 당신은 감성이 녹슬지 않게 신체의 감각기관을 항상 활짝 열어두고, 지성이 바닥나지 않게 책읽기를 밥 먹듯이 하라. 그리하여 시를 쓸 때는 감성과 지성이 비빔밥이 되도록 골고루 비벼라.
시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고민도 끝까지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어느 글에서 문장을 배우는 사람은 먼저 형식을 배우라고 권한다. “문장을 배우는 사람은 옛사람의 글을 대할 때 가장 먼저 형식을 만나고, 다음으로 그 내용을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내용을 통해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문장의 형식을 만나 배우지도 않고서 어떻게 그 내용을 취하고 형식을 버리는 일을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문학사에서 시 쓰는 자가 취해야 할 태도를 가장 통쾌하게 정리한 시인은 김수영이다. 저 유명한 ‘온몸의 시학’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은 나는 20여 년의 시작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직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은 시가 무엇인지 규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김수영식 비판이다. 그는 시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데서 새로운 시가 탄생한다고 믿었다. 시인이란 끊임없이 이탈하는 자임을 스스로 보여줌으로써 그 어느 문법에도 갇히지 않는 변화와 갱신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작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김수영은 시인의 창작행위가 어떠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역설한다.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이 창조의 주체임을 깨닫고 철저히 인식의 전복을 꾀하는 일이 ‘온몸의 이행’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신과 육체를 모두 대지와 신께 바치는 오체투지의 자세와 다를 바 없다. 시를 창작하는 일은 온몸으로 하는 반성의 과정이며, 현재진행형의 사랑이며 고투이기에 김수영의 말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칭(艾靑)도 시인에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끝없이 긴장할 것을 주문한다. “예술과 생활이 통일과 조화를 얻도록 노력하기 위하여, 시인들은 항상 현실과 이상의 중간에 자신을 던져 놓아, 마치 물 따라 나아가는 배가 그에 거슬러 거꾸로 부는 바람의 시련에 저항하듯, 자신의 생명을 불안정과 흔들림 속에서 나아가게 한다.”
정현종이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사물의 꿈·1〉)고 노래할 때의 그 나무가 바로 시인이다. 그렇게 흔들리는 기쁨을 소설가 박범신은 이렇게 표현했다.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고.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


비유는 일상적 언어 규범에서 일탈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언어 용법이다. 은유·직유·제유·환유의 뒷글자인 ‘유’(喩)는 ‘말하다’는 뜻의 ‘구’(口)와 ‘옮기다’라는 뜻을 가진 ‘유’(兪)의 결합이다. 즉 비유란 말의 원래 뜻을 옮겨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개나리꽃은 노랗다”는 일상 언어를 “개나리꽃은 병아리 부리다”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바꿔보자. 이 ‘병아리 부리’ 속에는 노란 색깔 이외에도 개나리꽃의 모양, 꽃잎의 연약함, 봄의 이미지 등이 첨가된다. ‘노랗다’는 일상 언어의 평이함이 전면 확장되어 의미의 전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상과 대상 연결하는 ‘은유'〉
〈비틀고 꼬며 덧칠해야 할까〉


여러 가지 비유 중에 은유는 차별성 속에서 동일성을 찾는 수사법 중의 하나다. 옥타비오 파스는 “시는 대립적인 것들의 역동적이고 필연적인 공존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최종적인 동일성을 선언한다”(<활과 리라>)고 말했다. 누가 뭐래도 시는 은유의 덩어리다. 은유적 표현을 한정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시라는 양식이 은유에 기대어 태어났고 성장하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때로 은유의 폐해를 지적하는 연구도 우리의 흥미를 끌어당긴다. 구모룡의 <제유의 시학>에 따르면 시는 근대적 개념인 세계의 자아화나 동일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은유는 다른 대상을 자기화하는 수사학이다. 다시 말해서 은유는 대상과 대상을 강제적으로 연결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억압하는 논리이다.” 이러한 은유적 욕망이 근대에 와서 주체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를 낳았다는 진단이다. 이처럼 “타자에게 폭력적”인 은유에 대한 대안으로 유기론을 바탕으로 하는 제유 시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말을 비틀고 교묘한 표현을 일삼는 이들에 대한 비판에 일찍이 허균도 가세했다. “<서경>에 실려 있는 여러 편의 명문장을 보라. 모두 문장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어려운 말로 교묘하게 꾸민 구절이 있는가? (중략) 제자백가서만 보더라도 모두 자신들의 도리를 논했기 때문에 그 글은 쉽고 간결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는 문장과 도리가 둘로 쪼개져 마침내 어렵고 교묘한 말로 글을 꾸미는 일이 생겨났다. 이것이야말로 문장의 재앙이다.”(허균 <성소부부고>)


나도 땅을 가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민병하 선생님도
수원 근처에 오천평이나 가졌는데……
싼 땅이라도 좋으니
한 평이라도 땅을 가지고 싶다.
땅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좋으랴……
땅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땅을 가지고 있으면,
초목을 가꾸고,
꽃을 심겠다.


천상병의 시 <땅>이다. 시인은 가진 땅이 한 평도 없어 “나도 땅을 가지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욕망을 드러낸다. 땅을 가지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소유욕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라 할 만하다. 어떤 이들은 도대체 이런 게 무슨 시인가, 되묻고 싶을 것이다. 이 시에는 시적인 비유도 없고 시적인 발견도 없다고, 이런 시라면 하룻밤에도 수십 편을 쓰겠다고 투덜댈지도 모르겠다. 천상병이라는 유명한 시인이 쓴 것이니까 좋은 시라고 추어올리는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시인의 욕망은 “초목을 가꾸고,/ 꽃을 심겠다”는 아주 작지만 근원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땅을 가진 뒤에 땅값이 오르기를 기다리거나 거기에 부동산을 짓겠다는 투기 욕망 따위는 일절 없다. 오히려 그런 심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인은 그저 초목과 꽃을 심겠다고 한다(그러다 보면 땅값이 오르겠지, 하고 의심한다면 당신은 정말 속물이다). 이러한 단순성의 미학이 천상병이라는 시인을 만들었다.

이 시에서 무욕의 욕망을 읽고 은유 아닌 은유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은유의 성채 입구에 도달한 사람이다. 그러니 시를 쓰기 위해 책을 뒤져 은유를 배우지 마라. 은유를 잘못 배우면 말을 요리조리 비틀고 무슨 문장이든 꾸미려 하고 교묘하게 꼬는 일이 시의 전부인 줄 알게 된다. 나는 그것을 ‘비유의 덧칠’이라고 부른다. 비유를 덧칠하지 않고 단순한 상상력의 깊이를 아는 사람은 저녁에 술 마시러 나갈 때 천상병의 이런 시 구절을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주막에서> 일부분)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가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도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 볼 생각이다.


미당이 작고하기 두 해 전, <현대문학> 1998년 1월호에 발표한 시 <내 늙은 아내>다. 그 한 해 전에 나온 마지막 시집 <80소년 떠돌이의 시>(시와시학사)도 그렇지만 말년에 미당은 여든을 훨씬 넘은 나이에 놀랍게도 소년의 목소리를 얻었다. 어른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사에 대해 이것저것 따지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년은 단순하게 세상을 읽으려고 한다. 삶의 갈등과 고뇌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당의 시에 나타나는 이 단순성은 이 세상을 한 바퀴 휘휘 돌아본 뒤에 마침내 다다른 시선(詩仙)의 경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과 인생의 산전수전 끝에 미당은 천진성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눈을 갖게 된 것이다.


〈특정한 틀에 갇히지 말고〉
〈천진난만한 상상 표현하길〉


내 아내는 여기 등장하는 ‘늙은 아내’와 달리 내 담배 재떨이를 아침저녁으로 비워본 적이 별로 없었다. 집에서 내 재떨이는 담배꽁초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버린 휴지 조각, 방바닥에서 집어낸 머리카락, 손톱 따위들을 담는 쓰레기통쯤으로 취급되어 왔었다. 나는 이 시를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아내는 시를 보고 뭔가 찔리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 다음날부터는 정말 내 재떨이도 확연히 달라졌다. 아침저녁으로 담뱃재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재떨이를 보면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도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담배 재떨이는 대체로 둥글다. 그 둥근 모양과 부부 관계가 알맞게 버무려진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보름달을 떠올린다. 모자라는 것도, 더 채워야 할 것도 없는 보름달의 원형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 닿아야 할 사랑의 종착지를 상징한다. “아 내곁에 누어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戀人(연인)의 꿈은 또 한 번 비친다.”(〈눈 오시는 날〉 일부분) 그동안 미당의 시에 숱하게 등장하던 초생달의 이미지는 이 시에 이르러 비로소 환한 보름달로 가득 차올랐다. 미당은 자연스럽게 보름달의 세계를 갖게 되었다. 단순함의 힘이다.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윤희상의 <소를 웃긴 꽃>이다. 근래 이 시를 읽고 한참 동안 행복했다. 특정한 개념과 틀에 갇히지 않은 상상력이 이런 유쾌한 시를 생산했다. 엉뚱함의 힘이다. 꽃이 소를 웃겼다고, 소의 발바닥을 간질였다고, 연약한 꽃이 육중한 소를 살짝 들어 올렸다고 한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세상에 시인이 아니면 누가 이런 엉뚱한 발언을 하랴.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0.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바꿔보면, 가장 중요한 진실은 사막의 우물처럼 어디엔가 숨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시학도 이 마음의 눈을 강조한다. 사물의 껍질보다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것이다. 이른바 ‘관물론’(觀物論)이 그것이다. “관물론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볼 것인가? 거기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누구나 보고 있지만 못 보는 사실, 늘 지나치면서도 간과하고 마는 일상 사물에 담긴 의미를 읽어 낯설게 만들기, 나아가 그 낯섦으로 인해 그 사물과 다시금 새롭게 만나기, 이것이 관물론이 시학과 만나는 접점이다. 시인은 격물(格物) 또는 관물의 정신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주변 사물이 끊임없이 발신하고 있는 의미를 늘 깨어 만날 수 있다. 시인은 반란자다. 그의 눈이 포착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롭다. 새로워야 한다.”(정민, <한시미학산책>)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
보물 같은 의미들이 숨어있다


우리의 연암도 그림의 리얼리티가 단순히 사실적 묘사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좋은 그림은 그 물건과 꼭 닮게만 하는 데 있지 않다.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고는 훌륭한 그림이랄 수 없다. 잣나무를 그리려거든 잣나무 형상에 얽매이지 마라. 그것은 한낱 껍데기일 뿐이다. 마음속에 푸른 잣나무가 서 있지 않고는, 천 그루 백 그루의 잣나무를 그려 놓더라도 잎 다 져서 헐벗은 나목과 다를 바가 없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워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라.” 또 청대의 시인 심덕잠(沈德潛)도 유사한 말을 남겼다. “대나무를 그리는 자는 반드시 완성된 대나무의 모습이 가슴속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 시인은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을 눈으로 발견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 없는 멋진 이미지와 새로운 의미를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시인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발명가’가 아니라 ‘발견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라. 이미 이 세상에 와 있으나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것들이 있다. 보물인데도 보물로 보지 못하고, 숨겨진 의미가 있는데도 의미를 찾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머리를 굴리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시를 기다리지 마라. 발명하려고 하지 말고 발견하도록 애써라. 살갗을 보지 말고 뼛속을 보라.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졸시 <겨울 강가에서> 전문


이 시의 소재는 겨울 강가에 눈이 내리는 풍경이다. 실제로 어느 겨울 날 나는 강 가장자리에 살얼음이 깔리기 시작하는 섬진강을 갔고, 그 전날 내린 눈이 살얼음을 하얗게 덮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문득 얼음 위에 내린 눈은 왜 녹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물과 눈송이 사이에 어떤 약속이라도 있었던 게 아닐까 궁금했다.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곰곰 생각하다 보니 이런 시 한 편이 태어났다.

시의 중간에 등장하는 “세찬 강물 소리”는 그 무렵 신문에서 읽은 과학상식 기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모든 물소리는 물방울들이 깨지면서 내는 소리가 모인 거라고 했다. 폭포 소리가 큰 것은 물방울들이 더 많이 깨지기 때문이고, 여울에서는 물방울들이 돌멩이에 걸려 깨지기 때문에 물소리가 난다는 것이다.(나는 초등학생들이 보는 과학이나 생물 관련 책을 자주 뒤적거린다. 거기에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인데도 시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나무가 새로 잎을 피워 내거나 떨어뜨릴 때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 나무를 노끈으로 묶거나 필요 이상으로 밤에 불빛을 쪼이면 나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등은 얼마나 매력적인 시의 소재들인가.)


삶을 관찰·발견·반성할 수 있게
가슴속 망원경·현미경 갖추길


시인도 과학자의 관찰에 버금가는 관찰의 자세로 사물을 봐야 한다. 아니, 사물의 현상이나 외피에 집중하는 과학자의 관찰을 넘어 시인은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과학은 삶을 앞으로 진보시키지만 시는 삶을 반성하게 만드는 양식이기에 더욱 그렇다. “쉽게 지나치는 일상의 한 부분에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해 내고 이것을 망각하고 사는 것에 대해 반성을 하고 그 관심이 타인에게로 전해지게 하는 것은 오로지 좀 더 여유롭고 또 세심한 관찰에서 비롯된다.”(김상욱,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

김명수 시인의 짧은 시 한 편을 읽어보자. “바닷가 고요한 백사장 위에// 발자국 흔적 하나 남아 있었네// 파도가 밀려와 그걸 지우네// 발자국 흔적 어디로 갔나?// 바다가 아늑히 품어 주었네”(<발자국> 전문). 바닷가 백사장 위에 찍힌 발자국은 누구나 볼 수 있다. 파도가 밀려와 그 발자국을 지우는 풍경도 바닷가에서는 흔하게 보게 된다. 그 당연한 사실에 의문을 가지는 데서 오롯이 시가 생겨난다. 발자국 흔적의 행방을 찾는 이 의문은 ‘품어주다’라는 동사를 만나 아연 시적 깊이를 획득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백사장 위의 발자국을 오래 바라보며 관찰하는 시인의 눈을 만나게 된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표제작인 다음 시의 제목은 <바다의 눈>이다. 관찰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 시에서 ‘바다의 눈’은 바로 ‘시인의 눈’이다.


바다는 육지의 먼 산을 보지 않네

바다는 산 위의 흰 구름을 보지 않네

바다는 바다는, 바닷가 마을

10여 호 남짓한 포구 마을에

어린아이 등에 업은 젊은 아낙이

가을 햇살 아래 그물 기우고

그 마을 언덕바지 새 무덤 하나

들국화 피어 있는 그 무덤 보네
  

세상을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 곳을 보려면 망원경이 필요하고, 미세한 것을 보려면 현미경이 필요하다. 거대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1970~80년대에 시인들은 주로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았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시인들은 현미경으로 사물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미시적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광장’을 바라보던 시인의 눈이 ‘골방’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광장에 서서 망원경을 들고 군중을 바라보던 ‘그’가 골방의 ‘나’로 회귀한 형세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해 외치던 3인칭의 목소리를 1인칭의 내면 탐구 형식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장의 햇빛을 뒤로 하고 골방의 그늘에 들어앉은 시는 그 이전보다 훨씬 촘촘한 상상력의 밀도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골방은 음습해서 점점 자폐적 공간으로 바뀌어 가기 마련이다. 광장을 떠나온 자아는 아예 광장을 외면하거나 기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 단계 한국시의 자폐적 경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인의 눈과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할 때가 되었다. 시인은 옆에 항상 망원경과 현미경을 함께 준비해 두어야 하고, 광장과 골방 사이에서 그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말고 그 둘 사이에서 긴장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인이란 시를 빚는 사람이면서 자기 자신을 빚는 사람이므로.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1. 퇴고를 끊임없이 즐겨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퇴고’라는 말은 당대의 시인 가도(賈島)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 가까운 데 이웃이 적어 한가로운데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숲의 길은 황량한 들판으로 들어가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들은 연못가 나무 위에 잠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이 시의 마지막 행 두 번째 글자인 ‘고(敲)’는 ‘두드리다’는 뜻이다. 시인은 애초에 이 글자가 들어간 자리에 ‘민다’는 뜻의 ‘퇴(推)’를 썼다고 한다. 스님이 문을 민다고 해야 할지, 두드린다고 해야 할지 고심을 거듭하던 그는 어느 날 노새를 타고 가면서도 ‘퇴(推)’로 할지, ‘고(敲)’로 할지 골똘하게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길을 지나던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고관 앞에 끌려간 가도는 글자 한 자를 결정하지 못해 실수를 범했노라고 아뢰었다. 그 고관은 당시의 최고 문장가 한퇴지였다.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퇴(推)’보다는 ‘고(敲)’가 낫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때부터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그 이후 글을 수정할 때 퇴고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우연한 시상·표현은 씨앗일뿐
퇴고는 글쓰기의 시작이자 끝

그러면 한퇴지는 왜 ‘퇴(推)’보다 ‘고(敲)’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일까? 이것을 단순히 취향에 의한 단어 선택의 문제로 보면 곤란하다. 새들도 잠든 한가하고 고요한 밤에 스님이 문을 밀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 뒤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이야기도 사건도 등장인물도 필요 없다.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거처이므로 스님은 발 닦고 이불 펴고 잠들면 그만이다. 긴장이 없는 정황은 울림이 없는 시를 만들고 만다.

그러나 스님이 낯선 집의 대문을 두드리게 되면 그 대문까지 걸어온 탁발의 고된 길이 보이고,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새들이 날개를 푸덕이는 소리가 들린다. 또 집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와 스님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문을 두드리는 순간에 시가 역동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스님을 맞이하는 이가 수염이 덥수룩한 산적 같은 사내면 어떻고 어여쁜 여인이면 또 어떻겠는가?)

1940년에 처음 나온 글쓰기 지침서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모두 제9강으로 짜여 있다. 이 중 다섯 번째를 ‘퇴고의 이론과 실제’라는 주제로 할애하고 있다. 그는 “심중엣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퇴고는 “우연이 아닌, 계획과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태준은 산문 <무서록>에서도 퇴고에 대해 힘주어 말한 적 있다. “아마 조선문단 전체로도 이대로 3년이면 3년을 나는 것보다는 지금의 작품만 가지고라도 3년 동안 퇴고를 해 놓는다면 그냥 나간 3년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단이 될 것이다.”

퇴고의 중요성은 백번 천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습작이란 퇴고의 기술을 익히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퇴고가 외면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한 덧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술이 되어서도 안 된다. 퇴고를 글쓰기의 마지막 마무리 단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퇴고는 글쓰기의 처음이면서 중간이면서 마지막이면서 그 모든 것이다.

시라고 해서 우연에 기댄 착상과 표현을 시의 전부라고 여기면 바보다. 처음에 번갯불처럼 떠오른 생각만이 시적 진실이라고 오해하지 마라. 퇴고가 시적 진실을 훼손하거나 은폐한다고 제발 바보 같은 생각 좀 하지 마라. 처음에 떠오른 ‘시상’ 혹은 ‘영감’이라는 것은 식물로 치면 씨앗에 불과하다. 그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면서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일, 햇볕이 잘 들게 하고 거름을 주는 일, 가지가 쑥쑥 자라게 하고 푸른 잎사귀를 무성하게 매달게 하는 일, 그 다음에 열매를 맺게 하는 일… 그 모두를 퇴고라고 생각하라.

내가 쓴 시에 내가 취하고 감동해서 가까스로 펜을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 때가 있다. 습작기에 자주 경험했던 일이다. 한 편의 시를 멋지게 완성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잠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튿날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쓴 그 시를 다시 읽어보았을 때의 낭패감! 시가 적힌 노트를 찢어버리고 싶고, 혹여 누가 볼세라 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날 때의 그 화끈거림! 나 자신의 재주 없음과 무지에 대한 자책!


두려워 말고 밥먹듯이 고치되
뜸들 때까지 서둘지는 말아야

당신도 아마 그런 시간을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습작기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한 편의 시를 퇴고하면서 그 시에 눈멀고 귀먹어 버린 자가 겪게 되는 참담한 기쁨이 바로 그것이다. 퇴고를 하는 과정에 시에 너무 깊숙하게 침윤되어 잠시 넋을 시에게 맡겨버린 결과다(사랑에 빠진 사람을 콩깍지 씌였다고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렇게 시에 감염되어 있는 동안 당신의 눈은 밝아졌고, 실력이 진일보했다고 생각하라. 하룻밤 만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시를 볼 수 있는 눈으로 변화를 한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1922년 7월 <개벽>에 처음 발표되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업시
고히고히 보내들이우리다.

寧邊엔 藥山
그 진달래꽃을
한아름 다다 가실 길에 부리우리다.

가시는길 발거름마다
뿌려노흔 그 꽃을
고히나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흘니우리다

이 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진달래꽃>하고 상당히 다르다. 1925년 12월에 출간한 시집 <진달래꽃>을 준비하면서 소월은 3년 동안 시를 퇴고한 것이다. 시행을 바꿔 전체적으로 리듬을 유려하게 살렸고, ‘고히고히’는 ‘고이’로 줄였으며(‘한아름’은 ‘아름’으로), ‘그’라는 불필요한 관형사를 지웠다. 특히 3연은 대폭 손질한 흔적이 뚜렷하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앞서 등장한 ‘길’과 ‘뿌리다’ ‘고히’라는 말이 3연에 다시 반복되어 있는 것을 보고 언어의 장인인 소월은 못 견뎠을 것이다. ‘마다’라는 조사는 얼마나 가시처럼 그의 눈에 거슬렸을까? 이러한 퇴고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걸음걸음’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한국적 언어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신도 시를 고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라. 밥 먹듯이 고치고, 그렇게 고치는 일을 즐겨라. 다만 서둘지는 마라. 설익은 시를 무작정 고치려고 대들지 말고 가능하면 시가 뜸이 들 때까지 기다려라. 석 달이고 삼 년이고 기다려라.

그리고 시를 어느 정도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시를 보여줘라. 시에 대해서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농부도 좋고 축구선수도 좋다. 그들을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잠재적 독자인 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이규보도 “다른 사람의 시에 드러난 결점을 말해 주는 일은 부모가 자식의 흠을 지적해 주는 일과 같다”고 했다. 누군가 결점을 말해 주면 다 들어라. 그러고 나서 또 고쳐라.

“글은 다듬을수록 빛이 난다. 절망하여 글을 쓴 뒤, 희망을 가지고 고친다”고 한 이는 소설가 한승원이다. 니체는 “피로써 쓴 글”을 좋아한다고 했고,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시를 고치는 일은 옷감에 바느질을 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고치되, 그 바느질 자국이 도드라지지 않게 하라. 꿰맨 자국이 보이지 않는 천의무봉의 시는 퇴고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2.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6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었다. 간밤의 숙취로부터 채 헤어나지 못해 머리는 지끈거렸고, 뱃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그 날은 모처럼 별다른 약속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놀 수는 없었다. <한겨레>에 이 연재를 막 시작할 무렵이었으니까. 시어머니처럼 엄한 원고 마감 시간을 맞추어야 했다. 나는 매주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휴일에 쉬는 일은 접어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샤워를 하고 나서 맑은 공기로 머릿속을 좀 헹군 뒤에 학교로 향할 참이었다. 술을 좋아하지만 나는 숙취에서 완전하게 풀려나지 않으면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다.

문득 학교로 가는 것보다 작업실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북쪽으로 가야 학교가 있고, 작업실이라 이르는 전주 근교의 누옥은 남쪽으로 가야 한다. 그 작업실에서 글 쓰는 작업을 하기는커녕 몇 주째 둘러보지도 못했다. 마당에 돋아나 있을 풀들과 툇마루에 쌓여 있을 먼지들을 어떻게 하나? 풀을 뽑고 청소라도 하고 방이 숨을 쉬도록 환기라도 해줘야 할 텐데. 거길 가면 새소리로 내 어지러운 머릿속을 씻어낼 수도 있을 텐데. 돌담 밑에 고추를 몇 주 심고 그 옆에 얼갈이배추 씨를 뿌려놓은 게 생각났다. 그것은 농사도 경작도 아니었다. 해마다 버릇처럼 하는 일이었다. 어설프게 흙을 덮어놓은 얼갈이배추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을 본 게 3주 전쯤이었다. 배추는 이제 잎사귀를 한 뼘 정도는 더 내밀었을 것이었다. 아마 애벌레들이 꼬물거리며 연한 배춧잎에다 마음껏 길을 내고 있을지도 몰랐다. 동네 노인들이 이를 보면 또 혀를 차시겠다.


〈머릿속 스쳐가는 ‘시상’ 잡아채, 서너 줄이든 한두 단어든 ‘메모'〉


“쯧쯧, 약을 좀 해야지.”
손바닥만 한 땅에 약이고 자시고 할 것 없었다. 두어 번 풋것을 뜯어먹을 수 있으면 좋았고, 나중에 꽃대가 올라와서 꽃밭 삼아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여겼다. 자주 들르게 되면 나무젓가락으로 애벌레들을 잡아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 별안간 시 몇 줄이 머릿속으로 날아오셨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나는 책상 앞이 아니라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었다.) 큰소리로 아내를 불러 종이와 펜을 갖다 달라고 했다. 한 편의 시가 어떻게 와서 어떤 과정을 거쳐 시가 되는지 <한겨레> 독자들께 낱낱이 보고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떠오른 생각의 씨앗이 무엇이었는지, 메모는 어떤 형태로 남았는지 내 스스로 시작 과정을 한번 기록하고 싶었다. 그 날 아침에 쪽지 위에 적은 메모는 이런 것들이다.

“투기, 재테크/ 한 평 남짓 배추씨를 뿌렸다/ 한 평 남짓… 나비를 키웠다/ 배추밭 둘레 허공을 다 차지했다/ (나비의 생태-얼마나 날까?)/ 앉아라, 물러서라”

배춧잎을 갉아먹고 사는 애벌레를 잡지 않는다면 그 애벌레들은 틀림없이 나비가 될 것이었다. 나는 한 평 남짓한 땅에 배추를 키우지만, 애벌레는 배춧잎의 넓이만큼만 몸을 움직이며 먹이를 구하지만, 나중에 나비가 되면 애벌레는 배추밭 둘레 허공을 다 차지하고 날아다닐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배추를 한 평 키우는 게 아니라 나비를 한 평 키우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갈 수 있는 허공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나중에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키운 나비가 날아갈 그 허공은 모두 나의 것이기도 했다. 이런 욕심이나 호기는 얼마든지 부려도 좋지 않겠는가. 나비를 키움으로써 나는 경계도 말뚝도 박아 놓지 않은 그 허공을 차지할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내 소유의 허공! 변기에 앉아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제목을 ‘투기’로 할 것인지, ‘재테크’로 할 것인지는 차차 결정하기로 했다.

나는 시시때때로 메모한 것을 반드시 컴퓨터 속에 있는 ‘신작시’라는 파일에다 옮겨둔다. 그 파일을 열어보면 메모의 길이는 대체로 서너 줄. 단어 한두 개로 된 것도 있다. 어제 아침에 옮겨둔 것도 있고, 조금 전에 떠오른 것을 적어둔 것도 있다. 7∼8년 전에 메모했으나 아직 시로 날개를 달지 못한 것들도 수두룩하다. 수백 개의 그 메모가 옆에 없다면 나는 시인이 아니다. 그 몇 줄의 메모 때문에 여전히 시인이라고 어디 낯을 내며 나다닐 수도 있다. 그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알 같은 것이다.


〈곰삭아 익을 때까지 기다려라〉
〈‘줄탁동시’ 진통 … 가차없는 퇴고〉


시를 쓰게 되는 날(혹은 어쩔 수 없이 마감에 쫓겨 시를 써야 하는 날), 나는 우선 파일을 열어 메모를 일별한다. 아직 잠에서 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메모가 있는가 하면 자신을 선택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메모도 있다. 컴퓨터 속 메모와 나와의 관계는 ‘줄탁동시’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시의 꼴을 갖추기 시작한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게 되는데, 이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 한다. 그런데 이 ‘줄탁’은 어느 한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병아리가 온전히 하나의 생명체로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만약에 껍질 안의 병아리가 힘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껍질 바깥 어미 닭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아리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이 비유를, 불가에서는 참다운 사제지간의 관계를 말할 때 곧잘 인용하곤 한다.)

6월 어느 일요일 변기 위에서 한 메모는 두어 달 컴퓨터가 품고 있었다. 박제천은 “작품을 써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달려들어 퇴고를 하는 일은 어리석다.(…) 작품을 써내고 난 뒤에는 일단 눈앞에서 치우는 일이 중요하다”(<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문학아카데미)고 했다. 즉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메모는 비교적 일찍 알을 깨고 나온 편에 속한다. 아래는 완성된 시이다.


한 평 남짓 얼갈이배추 씨를 뿌렸다
스무 날이 지나니 한 뼘 크기의 이파리가 몇 장 펄럭였다
바람이 이파리를 흔든 게 아니었다, 애벌레들이
제 맘대로 길을 내고 똥을 싸고 길가에 깃발을 꽂는 통에 설핏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
동네 노인들이 혀를 차며 약을 좀 하라 했으나
그래야지요, 하고는 그만두었다
한 평 남짓 애벌레를 키우기로 작심했던 것
또 스무 날이 지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는 한 평 얼갈이배추밭의 주인이자 나비의 주인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비는 머지않아 배추밭 둘레의 허공을 다 차지할 것이고
나비가 날아가는 곳까지가,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그 안쪽까지가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것


한 편의 시를 고치는 동안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쩨쩨하고 치사한 사내가 된다. 창피할 정도로 별의별 짓을 다 한다. <나비도감>을 들추고, 포털사이트에서 얼갈이배추에 대해 알아본다. 행을 한 번 바꾸는 데 열 번 정도는 이리저리 붙였다가 뗐다가 해본다. 중간 부분 이후에 ‘─것’이라는 어조는 스무 번 정도 썼다가 지웠다가 가까스로 택한 것이다. 왠지 자신감 있는 어조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제목은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투기>보다는 <재테크>가 시의적절해 보였다. 재테크에 목숨을 거는 이들에게 나의 재테크 방법을 자랑하고 싶은 심사도 작용했을 것이다. 수십 차례 고친 뒤에 옆방에 계신 정양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은 중간 행 하나를 지우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있으나마나 한 행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그랬다. 어디 숨고 싶었다. 두 말 없이 지웠다.


안도현 (시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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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탁동시 啐啄同時. 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 병아리가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쪼는 것을 탁이라 하는데 이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부화가 가능하다는 비유에서 나온 고사성어. [벽암록]


23.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좋은 시란 어떤 시를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좋은 시란 이것이다, 라고 정의하는 순간, 모든 시는 그 낡은 기준에 갇혀버리는 나쁜 운명을 맞게 된다. 시가 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양식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좋은 시란 이것이다, 라고 감히 정리해본다면 어렴풋하게나마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새로운 언어로 표현된 시. 둘째, 새로운 인식을 도출하는 시. 셋째, 새로운 감동을 주는 시. 여기에다 시인의 시작 태도가 공자의 말씀대로 ‘사무사’(思無邪) 바로 그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감동은 일차적으로 시인과 독자와의 교감, 즉 소통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시가 다 울림을 갖는 것은 아니다. 허망한 소통보다는 고독한 단절이 오히려 서로를 행복하게 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시를 보는 미학적 관점과 언어에 대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일치할 때 시적 감동은 증폭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언어란 시인과 독자 사이에 놓인 가교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훼방꾼이기도 하다. 저 유서 깊은 ‘낯설게 하기’는 그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자 할 때 여전히 유효한 시적 방법이다. 독자를 편하게도 하고 불편하게도 하는 시, 이것인가 싶으면 저것인 시, 바른가 싶으면 이미 비뚤어져 있는 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면 당신은 표현의 리얼리티 속에서 감동의 요소를 찾으려고 끙끙대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일차적으로 당신은 가장 물기 많은 말, 가장 적합한 어휘를 행간에 배치하기 위해 헤매야 한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언어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만날 때까지 찾고, 지우고, 넣고, 비틀고, 쥐어짜고, 흔들기를 마다하지 마라. 적어도 당신 하나쯤은 감동시킬 때까지 언어하고 치고 받고 싸워라. 완벽한 세계관과 정돈된 문학적 관점이 훌륭한 시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자신의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하나씩 껍데기를 벗고 성장하는 존재이다.


〈텍스트를 시가 되게 하는 건 그 안에 있는 어떤 ‘시적인 것’〉


황지우는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찾아 쓰겠다고 말한 적 있다. “어떤 텍스트를 얻은 문장을 시가 되게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어떤 시적인 것”(<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한마당) 때문이라고. 이 말은 이미 ‘시’로 규정된 모든 규격화된 정의에 대한 부정을 통해 자신과 시를 갱신해 나가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러므로 ‘시적인 것’은 딱히 정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시인에게 모험과 도전을 요구하는 지침으로 이해해야 한다. ‘시적인 것’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손에 잡는 순간 또 달아나버리는 유기체와도 같은 것이다. 이것을 일찍이 간파한 고은 시인은 “시는 심장의 뉴스다”라고 멋들어진 화두를 토하기도 했다.

중국 송대의 시인 강기는 그의 시론집 <백석도인서설>에서 시에는 네 종류의 높은 경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이치가 높은 경지요, 둘째는 뜻이 높은 경지요, 셋째는 상상력이 높은 경지요, 넷째는 자연스러움이 높은 경지다. ‘시적인 것’을 탐구하는 우리에게 꽤 유익한 사색을 제공해주는 시론이다.
그는 먼저 “막혀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통하는 것을 이치가 높은 경지”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이치란 인간의 도리와 자연의 섭리를 두루 포괄하는 개념이다. 정경융합(情景融合)을 중요한 시의 가치로 여긴 동아시아의 시학과 동일성의 미학을 강조한 서양의 시학이 모두 이런 경지를 향한 시적 모색이라 할 수 있겠다.


천둥번개 지나간 곡우날 아침,
때아닌 우박과 꽃잎 사이

들숨과 날숨
부딪쳐 살아 오르며
낯선 우박이 자기를 녹여 꽃잎을 깨우네
낯선 꽃잎이 자기를 찢어 우박을 맞네

잘못 든 길을 알아차리고도
설레설레 봄꽃은 번지네


이안의 <숨길 1>이다. 우박은 꽃잎을 찢는 공격적 주체가 아니고, 꽃잎은 우박에 찢어지는 소극적 객체도 아니다. 엄연한 자연의 질서 앞에 주체와 객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우박은 꽃잎을 깨우고 꽃잎은 우박을 맞이할 뿐이다. 낯선 우박과 꽃잎 사이의 작지만 소중한 소통의 숨길이 우주 전체의 봄을 불러온다는 이치를 말하고 있는 시다. 이때 이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속으로도 분명 “설레설레” 봄의 기운이 스며들 것이다.


〈내 자신의 언어 만날 때까지 찾고 넣고 비틀고 흔들어라〉


두 번째로는 “표현해낸 것이 표면적인 의미를 초월하게 되는 것을 뜻이 높은 경지”라고 했다. 문태준의 짧은 시 한 편(<황새의 멈추어진 발걸음>)을 보자.


무논에 써레가 지나간 다음 흙물이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
그는 한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을 본다
한 획 필체로 우레와 침묵 사이에 그는 있다


표면적으로는 써레질이 끝난 뒤 흙물이 가라앉는 모습이 시의 소재가 되고 있다. 흙물이 그저 가라앉는 게 아니라 “제 몸을 가라앉히는 동안”이라고 말하는 것도 범상하지 않지만, 그것을 “생각이 일었다 사라지는 풍경”으로 확장하는 상상력은 놀랍다. 그리하여 “우레와 침묵 사이에” 있는 존재의 고독과 무상함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황새는 단순한 조류가 아니라 드높은 정신주의의 한 표상으로 읽힌다.(‘써레’와 ‘우레’라는 유사한 음성기호가 동일한 의미로 나란히 서 있는 언어유희도 볼만하다.)

세 번째로 “깊어 분명하지 않은 것을, 마치 연못이 맑아 밑바닥이 다 보이듯이 훤하고 분명하게 써내는 것을 상상력이 높은 경지”라고 했다. 나희덕의 시 <누에>를 보자. 두 딸과 꼽추인 어미 사이에 이어진 보이지 않는 실을 이토록 선명하고 감동적으로 부조한 것은 시인의 상상력이다. 그 실은 급기야 모녀를 바라보는 화자에게까지 연결되고,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다.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꼽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 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이 시인이다. 다음은 김종삼의 <장편(掌篇)·2>인데, 이 시에서도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결된 실을 본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일제 때 10전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밥 한 상에 10전이라니 그리 많지는 않은 액수였을 것이다. 분명 구걸로 얻게 되었을 10전짜리 두 개를 부모의 생일 밥값으로 당당하게, 그러나 가련하게 내미는 어린 소녀의 손목이 보일 듯하다. 그 눈망울도 보일 듯하다. 이렇게 서럽도록 아름다운 시를 읽다가 보면 사랑이니 효도니 인정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낡고 뻔뻔한 소리인지 깨닫게 된다. “특이하지도 않고 기이하지도 않으면서 문채를 벗어 떨치고, 그것이 오묘하다는 것만을 느낄 뿐 그 오묘하게 되는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러움이 높은 경지”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묻자. 시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시적이라는 말을 배반하는 방식을 통해 시적이라는 말을 진화시킬 수는 없을까”(이원, <시와 세계> 2007년 가을호)를 고민하는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안도현 (시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4. 상상력 발전소를 가동하라


모든 사랑은 상상으로 시작되어 상상으로 막을 내린다. 특히 이성을 만나기 전이나 서로 떨어져 있을 때 상상력의 펌프질은 두뇌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된다. 두 사람의 상상력이 접합 지점을 찾았을 때 우리는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 둘 사이에는 상상력이 엇갈려 삐걱거릴 때도 있다. 바야흐로 의심이 싹트면서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에 금이 가는 시점이 도래하는 것이다. 상상력의 신은 끈질기게 훼방을 놓고 연인들은 심각하게 결별을 고려한다.

처음에 상상력은 채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재 속에 숨어 있는 불씨와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 생각의 크기와 밝기도 미약하기 그지없다. “상상력은 대상과 밀착되고 있는 상태를 말해준다. 분석적 관찰의 결과가 아닌 종합적 직관의 결과다”(이형기)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시적 상상력은 직관 중에서도 감각적 직관의 도움을 받는다. 이문재는 감각을 일컬어 “몸과 마음의 경계”이면서 “자아와 타자 사이에 있는 가교”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시에서 감각이 중요한 이유는 시가 “단순한 보기(見)가 아니라 꿰뚫어보기(觀)”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애초부터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인 것은 아니다. 시인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상상력을 풀무질하는 자이다. 시인이 불씨를 살려 강철을 구부리고 녹여 만들어낸 연장을 우리는 시라고 부른다.


〈상상력은 재 속에 숨은 불씨
꺼지지 않도록 풀무질하라〉


만약에 그렇게 해서 시인이 하나의 낫을 만들었다고 하자. 우리는 풀과 곡식을 베는 농기구로서 낫의 실용적 가치를 살피기 위해 그 연장을 요모조모 뜯어볼 것이다. 쇠의 강도와 둥그런 날의 각도는 적당한지, 날은 잘 벼려졌는지, 낫자루를 끼우기에 적합한지를 따져볼 것이다. 시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낫은 실제로 삶을 구체화하고 객관화하는 데 기여한다. 시적 상상력이 허무맹랑한 공상과 구별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의 낫이 농기구가 아니라 인명을 해치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할지 모른다. 시인의 상상력이 또 다른 상상력을 촉발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시인이 만들어낸 낫의 외형을 보면서 그것의 미학적 가치를 따지기도 할 것이다.
질베르 뒤랑은 “상상된 공간은 매순간 자유롭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존재의 지평과 희망을 영원 속에서 재건립한다. 상상계는 우리의 의식이 궁극적으로 의지하는 존재이며, 영혼이 살아 있는 심장이다. (…) 상상력의 기능은 죽어 있는 객관성에 유용성이라는 동화(同化)적 흥미를 부가하고 유용성에 기분 좋은 것에 대한 만족감을 부가한다”(<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상상력이란 “세상과 사물을 맺어주는 비밀스러운 끈”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문인수의 <쉬>는 ‘뜨신 끈’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은 어느 날 정진규 시인한테서 아버지를 안고 오줌 뉜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시의 불씨였다. 불씨를 붙잡고 상상력의 풀무질을 계속한 끝에 부자간의 인연을 오줌발의 ‘뜨신 끈’이라는 경이로운 상상력으로 재구성해낸 것이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시에서 상상력은 비유를 동반할 때가 많다. 바슐라르가 <촛불의 미학>에서 “불꽃은 우리에게 상상할 것을 강요한다”고 말할 때 당신도 무작정 상상을 강요당하고 싶은 적이 있는가? 그가 “불꽃은 젖어 있는 불이다”라거나 “불꽃은 위쪽을 향해서 흐르는 모래시계다”라고 했을 때 당신은 그 매혹적인 은유 앞에서 금세 시인이 된 듯 착각에 빠진 적이 있는가? 그리고 또 그가 “불꽃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아편을 먹는다. 그리고 불꽃은 아무 말 없이 죽는다. 그것은 잠들면서 죽는다”라고 강렬하게 외칠 때, 시의 불꽃에 타서 죽고 싶은 적이 있는가?
상상력은 무엇보다 창의성과 긴밀하게 동거한다. 현대창의성연구소장 임선하 박사의 <창의성에의 초대>를 읽다가 아동의 창의성 교육에 관한 이론이 일상에서 ‘시적인 사고’와 ‘시적인 상상력’을 추출하려는 우리의 관심과 거의 유사한 접근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즉 창의적 사고와 시적 사고는 별개가 아니며 한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창의적 사고의 기능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민감성이다. 주변 환경에 예민한 관심을 보이는 능력을 이른다. 자명한 듯한 현상에서도 문제를 찾아보고, 나와 친숙하지 않은 이상한 것을 친밀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둘째, 유창성이다. 특정한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초기의 아이디어가 최선의 아이디어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한층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것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들로부터 많은 것을 연상하기, 문제 상황에서 가능한 해결 방안을 있는 대로 많이 찾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융통성이다. 고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시각 자체를 변환시켜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상투적이고 고정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전혀 관계없는 사물들의 유사점을 찾아본다든지, 사물의 구체적인 속성에 주목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넷째, 독창성이다. 기존의 것에서 탈피하여 참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나만의 것을 찾고, 기존의 생각이나 가치를 부정하는 사고를 말한다.


〈혹여 불 꺼지면 어둠 속 있으라
눈 닫힌 대신 코와 귀 열릴지니〉


다섯째, 정교성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기존의 아이디어를 한층 치밀한 것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이다. 헝클어지고 조잡한 생각을 다듬고 그것의 실제적인 가치를 고려해서 발전시키는 활동이다.
이와 함께 이 책에서는 창의적 사고의 성향을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자발성, 독자성, 집착성, 호기심이 그것이다. 이런 용어는 “상상력, 독창성, 확산적 사고, 창조성, 발명, 직관, 모험적 사고, 창출, 탐구, 창안”과 더불어 시를 읽고 쓰며 상상력을 공부하는 우리의 잠든 의식을 적절하게 자극한다.

시인들이 때로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기인으로 비치기도 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덜떨어진, 철없는 낭만주의자로 인식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들이 인생의 모범생이 되지 못하고 일탈을 꿈꾸거나 혁명을 갈구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를 쓰는 일은 마음속에 상상력 발전소를 차려 가동하는 일이다. 그 발전소에서 당신은 먼저 머리에 입력된 모든 개념적 언어를 해체하라. 정진규의 말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버리고 ‘어머니의 고봉밥’을 상상하라. 개념어는 삶을 일반화해서 딱딱하게 만들지만 구체어는 삶을 말랑말랑하고 생기 있게 만든다.

때로 상상력 발전소가 이유 없이 정전이 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거나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나는 글렀어, 하고 체념하거나 포기해서도 안 된다. 어둠 속에서는 어둠을 오래 바라보라. 시각이 닫히면 청각이나 후각이 열릴지도 모른다.
당신은 상상력을 위해 자신에게 맞는 필기구를 준비해두고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갈 필요가 있다. 가지고 있는 것의 절반쯤을 과감하게 버릴 필요도 있다. 상상력을 위해서 며칠 동안 세수를 하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은들 어떠리. 시는 놀이가 아니라 상상력의 게임이니까. 상상력으로 승부를 걸고 싶은 당신은 체 게바라의 말을 상상력 발전소의 연료로 써라.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안도현 (시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5. 몇몇 시인들이 들려주는 시작법


“시인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중국의 현대시인 아이칭의 <시론>에 나오는 제일 첫 문장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언어를 다는 저울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므로 시인은 양심을 속이거나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표연히 흩어지거나 순간에 지나가버리는 일체의 것을 고정시켜 선명하게, 마치 종이 위에 도장을 찍듯이 또렷하게 독자의 면전에 드러나게” 하는 시의 기교를 함께 강조한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중시하는 이러한 견해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중국 시론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경융합론’을 펼친 왕부지의 시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情)과 경(景)은 이름은 둘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분리될 수 없다. 시를 묘하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양자를 자연스럽게 결합시킬 수 있어 가장자리를 남기지 않는다. 정교한 시는 정 가운데 경을 나타내고, 경 가운데 정을 나타낼 수 있다.” (류워이 지음, 이장우 옮김, <중국의 문학이론>)고 했다.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도 문장이란 “굳세면서도 막힘이 없고, 시원스럽게 통하면서도 넘치지 않고, 간략하면서도 뼈가 드러나지 않고, 상세하면서도 살찌지 않아야 한다”(<청장관전서>)는 말로 조화와 통합의 문장론을 내세웠다. 이는 에리히 프롬이 시적인 언어를 “내적인 경험, 감정 및 사고들이 마치 외적 세계에서의 감각적 체험과 사건들인 것처럼 표현된 언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마음/말, 진실/기교, 내용/형식, 정/경, 강함/부드러움, 내적 경험/외적 표현 등 모든 이항대립적인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조화와 결합을 이룰 때 좋은 시가 태어나는 법이다. 심지어 시인의 재능/노력도 서로를 격려하고 고무하는 유동적인 것이지 어느 한 쪽으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한 편의 시는 이처럼 시인들의 고뇌의 집적이며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일상속 느낌 그냥 흘리지 말고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그렇다면 시인들은 시를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를 쓰라고 말하고 있을까? 시작법에 관한 현역 시인들의 조언을 몇 가지 경청해 보자.
강은교 시인은 첫째, 장식 없는 시를 쓰라고 한다.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으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한다.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시적 경험이라는 것은 ‘나’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쓸 때 발현된다는 것. 셋째,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며 시작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넷째,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으므로 늘 세상을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다섯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 정신의 무정부 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에서 예술의 힘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익히라고 제안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 말 것, 무엇보다 많이 쓰고 또 그만큼 많이 지우라고 한다.(시인이 <사랑법>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이라고 노래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끝으로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한다고 매우 이색적인 의견을 제출한다. 즉 시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 강은교 시인다운 비결이라 하겠다.

최영철 시인은 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느낌’이므로 이런 느낌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마음속으로 되새겨 보는 게 시창작의 첫 단계라고 한다. 바람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면 속으로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번 중얼거려 보라고, 그 다음 단계는, 바람이 어떻게 시원한지를 느껴 보라고 한다. ‘막혔던 가슴속 응어리를 뚫어 주듯이 시원하다’ ‘바람에 실려 그리운 사람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 모두에게 어떤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그것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글을 남과 다르게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라고 권한다. 그 또한 자신감을 강조한다. 글감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주변에서부터 찾을 것이며, 자신의 부끄럽고 추한 부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미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숨김없이 보여주어야 독자는 흥미와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잡념이 많은 것도 괜찮은 일이며, 연속극이나 신문기사 한 줄에도 쉽게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오히려 시를 쓸 자격이 있다고 등을 두드린다.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 부분을 보더라도 전체 속에서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 그리고 세계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무엇보다 앞세운다. 늘 보게 되는 밤하늘의 달과 별도 시인의 눈에 붙잡히면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하늘로 가 별 닦는 일에 종사하라고
달에게 희고 동그란 헝겊을 주셨다
낮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밤에 보면 헝겊 귀퉁이가
까맣게 물들어 있다
어두운 때 넓어질수록
별은 더욱 빛나고
다 새까매진 달 가까이로
이번에는 별이 나서서
가장자리부터 닦아주고 있다.

―최영철, <밤에> 전문


장옥관 시인은 시적 발상을 획득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일상생활 속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느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붙잡아야 감수성 훈련이 된다. 둘째, 사물들이 항복을 할 때까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셋째, 어린아이의 눈처럼 사물과 현상을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상상력이 커진다. 나의 관점을 버리고 대상의 눈으로 나를 보라는 것. 넷째, 자신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섯째, 가까운 곳에서 시를 찾는 눈이다.


〈'어떡하면 다르게 쓸 수 있을까’
자신의 숨기고픈 얘기서 출발〉


실제로 장옥관 시인이 시로 형상화하는 소재는 대단히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 이를테면 벚꽃 아래로 지나가는 개, 자신이 누는 오줌, 포도를 껍질째 먹는 일, 아스팔트에서 본 죽은 새, 옛 애인에게서 걸려온 보험 들어 달라는 전화……. 그러나 이것들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면 경이로운 존재의 실감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빛을 뿜는다. 시인은 길을 걷다가 장애인을 인도하는 노란 안내선을 보며 놀랍게도 밑창으로 하나하나 핥으며 걷는 길의 등뼈를 발견한다. 신발의 밑바닥이 길을 핥는다는 통찰을 통해 시적 발상이 어떻게 발화하는지 보여주는 시다.



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차도로만 다닐 때는 몰랐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디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장옥관, <걷는다는 것> 전문


안도현 (시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6. 시를 완성했거든 시로부터 떠나라

고등학교 시절, 여학교 시화전에 가기 전에 문예반 선배들은 우리를 세워놓고 이렇게 명령했다.
“반드시 여학생 하나를 울리고 와야 한다.”
선배들의 사주를 받은 우리는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럴싸하게 악동의 표정을 연기했다. 시에 대해 질문이 있다는 핑계로 한 여학생을 불러놓고,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그 여학생의 시를 집요하게 칼질했다. 여학생은 도마 위에 올려진 한 마리 가여운 생선이었다. 악동들의 파상적인 질문 공세에 파들파들 떨다가, 주춤거리며 대답하다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학생이 운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울음을 끄집어냈던 것이다. 시화전시장을 상갓집으로 만들어 놓은 뒤에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그때 우리들이 파놓은 질문의 수렁에 빠져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교복들이여, 부디 용서하시라.).


<시인은 언어의 대변자일 뿐
시는 독자에 의해 창조되는 것>


차라리 그 여학생,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더라면 악동들의 공세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친절한 여학생은 자신의 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설을 하면서 우리들의 마수에 걸려들었던 것. 이 시를 쓴 계기가 무엇이라거나, 무엇을 집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거나, 시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라거나 하는 것들을 그 여학생은 순진하게 진술했을 것이다. 분명히 자신의 시에 대한 겸손하고 친절한 답변을 통해 그 시의 감동을 높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시의 감동이 아니라 시의 몰락을 불러오는 변명이고 화근임을 여학생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 속에 다 있어요.”
그냥 이렇게 한마디 내뱉고 쌀쌀하게 돌아섰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뻘쭘해진 우리 악동들이 오히려 두손들고 줄행랑쳤을 것을!

일찍이 스테판 말라르메는 시인이 언어를 소유해서 부리는 게 아니라 시인 자체를 언어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시인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인은 언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는 자일 뿐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에서 텍스트에서 저자의 권위를 빼앗고 독자의 탄생을 선언한 바 있다. 그렇게 보면 시인이 시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완전한 시는 독자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시를 창작하는 사람은 시인의 개인적인 삶과 시를 별개로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삶은 엉망진창으로 살되 건강한 시를 쓰라는 말이 아니다. 시라는 텍스트의 자율성을 존중해야지 창작자의 사사로운 체험이나 느낌을 가지고 시를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 편의 시는 한 사람의 시인이 쓴 것이지만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에다 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지 시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시를 완성했거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그 시를 잊어버려라. 당신은 그 시로부터 미련 없이 떠나라.


바닥난 통파
움속의 降雪(강설)
꼭두새벽부터
降雪을 쓸고
동짓날
시락죽이나
끓이며
휘젓고 있을
귀뿌리 가린
후살이의
木手巾(목수건)


박용래(1925∼1980)의 <시락죽>이다. 시인은 갔어도 우리는 오늘도 이 시의 언어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본다. 시를 읽을 때마다 행과 행 사이의 건너뜀이 왜 이런 보폭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降雪’은 왜 ‘강설’로 바꿔 쓰면 안 되는지, ‘후살이’는 왜 세간의 ‘세컨드’와 다른 의미인지 생각하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빗자루로 간밤에 내린 눈을 쓰는 마음을 생각하고, 목수건에 오른 때를 생각하고, 지금은 옆에 없는 이 여인의 남자를 생각한다.
시가 다다라야 할 언어의 절제력과 고밀도의 기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우리는 박용래 시인에게 물어볼 수 없다. 아니, 설령 시인이 살아 있다 해도 물어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되리라.(만약에 어떠한 연유로 쓴 시인지를 우리가 묻는다면 시인은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아이처럼 칭얼대시겠지.)


<시의 결점 지적하면 달게 듣고
오독해도 가르치려 들지 말라>


어리벙벙한 시인은 대체로 자신의 언어가 투명하다고 착각한다. 시인이 명징하게 말을 한다고 해서 독자에게 언어가 다 명징하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말을 하기 때문이다. 말하지 못하고 그대로 둔 침묵, 혹은 말과 말 사이의 침묵도 모두 결국은 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막스 피카르트는 “형상은 침묵하고, 침묵하면서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고 <침묵의 세계>에서 쓰고 있다. 그에 의하면 형상, 즉 이미지는 “말하는 침묵”이다. 시가 언어를 통한 표현 수단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는 매우 도발적인 지적이다. “시인의 말은 그것이 태어났던 침묵과 자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 안에 깃든 정신을 통해서 스스로 침묵을 생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시인이여, 누군가 당신 시의 결점을 지적하면 겸손하게 귀를 열고 가만히 들을 일이다. 얼토당토 않은 비판이라도, 돼먹지 못한 소리라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 해도 달게 들어야 한다. 독자가 당신의 시를 오독한다고 독자를 가르치려고 대들지 말 것이며, 제발 어느 날짜에 쓴 시라고 시의 끝에다 적어두지 마라. 당신에게는 그 시를 완성한 날이 대단한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독자는 그 따위를 알려고 당신의 시를 읽지 않는다. 당신이 완성했다는 그 시는 당신의 마음 속에서 완성된 것일 뿐, 독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언제든지 변화하고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우고 보더라도 분명히 당신의 시임을 알게 하는 게 최선임을 잊지 말라.

<끝>


안도현 (시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빛고운 창가
글쓴이 : 빛고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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