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으로 걸어가는 팽나무를 만났습니다 나무는 숲쟁이를 가로지르더니 송신탑에 걸쳐두었던 푸른 옷을 싸목싸목 입었습니다 땀으로 범벅 진 하늘을 늘어뜨려서 이내 얼굴을 닫아걸었습니다 나는 짐짓 어깨를 툭 치며 웬 시치미? 하고 농을 걸었습니다 나무는 긴 그리메를 드리울 뿐 입도 벙긋 안하더군요 무덥고 찌뿌뚱한 여름날에는 나무도 하안거에 몰입하기에 사지가 꼬이는 모양입니다 한낮의 졸음바람 소록소록 몰려들고 한바탕 죽비 쏟아집니다 그래도 오백년 동안 나무가 넌출넌출 닦아온 그늘은 여전히 참 시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