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 캔의 꿈
-맑음 전숙-
아무렇지도 않게 밟혀보았니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재활용품 트럭에서 가위눌린 채 소리 질렀어
나도 꿈이 있었어!
억센 손아귀에서 폐지처럼 구겨질 때
나의 꿈도 같이 구겨져버렸지
캔 공장 컨베이어 벨트를 돌아 나오며 가슴 벅찼어
어느 귀여운 꼬마가 나를 비우면
내 몸에 다시 뜨거운 혈액을 채워줄 거야
귀여운 꼬마를 기다렸지
바람은 꿈이 되고 꿈은 이루어진다잖아?
자판기 유리진열대에 올라앉으며
심호흡을 하고 배를 한껏 부풀렸지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모습
당신도 보았으면 아마 탐났을 거야
마니아들의 비상구 없는 허기처럼
나는 알루미늄 깡통
마음대로 사라질 수도 없는 바코드 찍힌
자동화공장의 나사못 부품 한 개
언제든 대용품으로 다시 끼워지는
핵우산 속에 갇힌 한 마리 개미
발버둥 쳐 도망쳐도 실험실 속 유리관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니
막다른 골목에서 교활한 족쇄가 웃고 있었어
노비문서에 각인된 먹물이
한풀이 춤을 추고 있었어
어느 목마른 이의 목을 적시면
나는 이미 재활용되기 위해 구겨질 운명
차라리 꿈도 꾸지 말았어야 했어
그 때 누군가가 속삭였어
우리는 영원히 부활하는 거야
너의 꿈은 별빛처럼 계속 날을 수 있어
지구가 소멸해도 다른 별에서
알루미늄 깡통으로 재생될 걸
웬 날벼락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도돌이표 노래라면 차라리 그만 부르겠어
아, 꿈이여 꿈이여
돌연 변이여,
열려라 참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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