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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꽝

전숙 2006. 3. 2. 21:39
 

수필


미나리꽝

                                            맑음 전숙


 

 미나리꽝은 미나리를 재배하는 논을 이르는 말이다. 미나리라는 말만 하여도 그 푸르름이 입안에서 향내를 뿜어내는 듯하다, 요즘은 미나리가 거의 제 철 없이 먹을 수 있으니 먹는 사람이야 부담 없이 그 향과 맛을 즐길 수 있지만 겨울 미나리는 그리 쉽게 우리 밥상위에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유달리 매섭게 추운 날이면 나는 펄펄 끓는 얼큰한 매운탕과 함께 어우러지는 향긋한 미나리가 생각나고, 미나리 향기 위로 울렁댁의 죽음이 미나리를 자르는 날선 낫처럼 가슴 깊은 바닥으로 날카롭게 스쳐지나간다.


 늦가을이면 농촌에서는 모두들 풀어놓은 인연들 거두어들이느라 부산하다. 그러나 겨울 미나리꽝은 이제야 늦잠에서 깨어나 푸릇한 줄기마다 청량한 향기를 키우며, 김장부터 시작해서 탕이며 조림에까지 그 푸르름과 향기를 나눠주느라 바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항상 사람으로 바글거리는 도시와 다르게 농촌은 늘 일손이 부족하다. 실업자가 몇 백만입네 몇 십만입네 하는 것도 농촌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농번기가 되면 죽은 조상귀신이라도 불러들일 마음들인데 나이가 무슨 소용인가. 앉아서 하는 일이면 중풍 걸린 이까지 불려나왔다.


 미나리꽝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가 육칠십 대 아짐들이다.

가끔은 팔순이 넘으신 어르신도 한 몫 단단히 하시는 경우도 있다. 차가운 북풍이 휘몰아치는 겨울날에도 새벽 6 시면 어김없이 꾸벅거리는 어둠을 가르고 승합차가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나온다. 온몸을 고무나 비닐로 친친 동여맨 아짐들이 승합차에 헉헉거리며 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물신이 뭉클 미끌린다. 서로가 손을 잡아끌어준다. 더 이상 공기 한 줄기도 끼어들지 못하게 좁은 공간이 꽉 차면 비로소 승합차는 미나리꽝으로 몸을 돌린다. ‘아이고, 답답혀. 몸들 좀 좁혀보랑께’정원이라는 수적 개념은 농촌에서 인부 실어 나르는 용도로 승합차가 쓰이면서부터 이미 폐기된 지 오래다.

 한 시간가량 논에서 시퍼런 미나리와 씨름을 하다보면 따끈한 떡국이 나온다. 그 때쯤이면 어둑했던 하늘도 아침노을로 곱게 단장을 하고 이제야 단잠에서 깨어난 만물들이 기지개를 켠다. 떡국 국물이 얼어붙은 목 줄기를 적시면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뿌듯한 졸음이 유혹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 십 분의 호사다. 떡국 그릇을 비워내자마자 소화시킬 여유도 없이 물논 속으로 돌아간 아짐들은 고무대야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미나리를 베는 손이 젊은이들의 그것처럼 날렵하다. 자동펌프기가 지하수를 끌어올려 한 바탕 미나리꽝을 휘젓는다. 고무장갑 속에 들어있는 면장갑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는다. 얼어가던 손가락발가락들이 가만히 추위를 내려놓는다.


 대처에서 들려오는 유식한 구호들은 먼 나라 말이다. 최저생계비가 어떻고 하루 노동시간이 어떻고 그런 귀한 말씀들은 아짐들에게는 도무지 모를 일이다. 이 나이에 누가 일하러 오라는 것만도 고맙고 하루에 삼 만 원이면 한달이면 그게 얼만데. 손주들 대학등록금도 보태주고 보약도 한 제 지어먹고 누구누구네 문상도 체면상하게 빼먹지 않아도 되고 전기세며 전화세며 온갖 물납도 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암 그렇고 말고. 입에서 노랫가락이 절로 흥겨워 춤을 춘다.


 미나리꽝으로 일 나가는 아짐들은 더듬더듬 어둠을 헤쳐 가며 집을 떠났다가 다시 어둠을 밟으며 집에 돌아와 적당히 살림 붙이면 그대로 옥장판에 드러눕는다. 기름값이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뛰니 기름보일러는 있어도 언감생심 틀어볼 생각도 못한다. 뜨끈한 옥장판에서 종일 언 몸이 녹으면 여기저기 안 쑤신 데가 없고 물에 젖은 솜처럼 전신이 나른하게 풀리며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듯하다. 새벽이면 풀어놓았던 뼈마디 다시 오도독 소리 나게 부여잡고 머리꼭대기부터 발끝까지 물막이, 바람막이, 추위막이를 위해 허섭스레기 같은 낡은 비닐로 동여맨다. 오늘도 삶의 전쟁터로 진군이다. 진군 나팔소리처럼 미나리꽝으로 아짐들을 실어 나를 낡은 승합차의 엔진소리가 우렁차게 부릉댄다. 검은 연기가 확 뿜어져 나온다. 차에 올라타려던 감기바이러스들이 한바탕 기침으로 볶아댄다. ‘감기약 먹고 나오랑께. 안 묵었는가.’‘글씨, 영감이 잊어 묵고 약을 안 사왔당께’두런거리는 소리에도 미나리꽝의 푸른 정이 담뿍 담겨있다.

 일요일이면 공판장이 쉬므로 공판장사정에 의해서 미나리꽝도 토요일 하루를 쉬었다. 그래서 미나리꽝 아짐들도 토요일이면 개인 일들을 보았다. 물납이며 이런저런 일로 관공서에 다닐 일이 많은데 ‘주 오일근무제’ 때문에 볼 일을 못 보는 때가 많았다. 그래도 그이들은 그것에 불평을 하느니보다는 ‘내 자식들도 쉬는 걸‘하며 꿀꺽 삼켰다. 그렇게 삼켜버린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 모두들 뱃속 어디에선가 곪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울렁댁도 전날 낮술에 아직도 취기가 도도한 울렁양반 붉으죽죽한 얼굴에 일별하고 집을 나선다. 요 며칠동안 진통제를 한 주먹씩 먹어도 좀처럼 복통이 가라앉지 않는다. 몸이 아파서 하루나 쉬려고 하면, 미나리꽝에서 돌아오자마자 옷도 벗기 전에 술값 손 벌리는 영감얼굴이 떠올라서 내처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미나리꽝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무슨 큰 병이 들었남? 약을 먹어도 영 나을 기미가 없구만 잉, 오늘 하루 쉬고 병원에 가볼까?’ 속소리로 중얼대며 울렁댁은 기어이 차에 오르고 만다.


 울렁댁은 올해 팔십일 세다. 남들은 기름보일러를 놓는다고 법석인데 울렁댁은 연탄보일러도 아직 못 놓았다. 그 흔한 자동펌프도 없어서 미나리꽝에서 돌아오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아궁이에 불을 때서 저녁상을 차렸다. 미나리꽝 품삯에 영감 술값 걱정 않으니 그 것 만으로도 한시름 놓은 기분이다. 대처로 나간 자식들은 저희 벌어먹기도 팍팍한지 부모 사는 형편은 몰라라 하는데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용돈 보내달라고 손 벌릴 수도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무자식이 상팔자라 했다. 자식이 없으면 나라에서 노인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돈 없는 자식들 원망할 생각도 없고 그 자식들 차라리 없었으면 하고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건강해서 내손으로 벌어먹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복이요. 요행이었다. ‘그러니, 이런 늙은이 데려다가 밥 주고 일시키고 돈까지 쥐어주니 감지덕지지, 뭘 더 바래.’ 울렁댁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닦으며 ‘보성댁처럼 눈물 구멍이 막혔남. 산전수전 다 겪는 이 나이에 무슨 닭똥 같은 눈물이 나온당가.’ 혼잣소리로 지청구하며 다시 진통제를 털어 넣었다. 설상가상으로 점심 먹은 게 체했는지 하늘이 노래지고 숨도 쉴 수 없게 가슴이 답답해왔다. 아이쿠!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울렁댁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핼쓱하게  핏기가신 얼굴이 미나리꽝 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갔다. 울렁댁의 손에 잡힌 미나리들은 목이 잘리다 만 채로 흐늘거렸다. 울렁댁은 뿌리 잘린 나무처럼 몸을 버렸다. ‘아이고, 울렁댁 뭔 일이당가. 숨 좀 쉬어보랑께.’ 옆에 있던 보성댁이 울렁댁을 안아 올리며 악을 썼다. 보성댁이 흔들어대자 울렁댁은 있는 힘을 다해 용쓰듯 미간이 잠시 좁혀졌다가 이내 풀어져버렸다. 미나리꽝이 한바탕 웅성거렸다. 놀란 미나리꽝주인이 뛰어오고 모두들 달려들어 몸을 버린 채 뻣뻣해진 울렁댁을 안아서 차에 태웠다. 미나리꽝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나리들은 고무장갑 손에서 한 움큼씩 머리카락이 잘려지고 논둑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별일 없겄제 잉, 가슴이 벌렁거려 죽겄네. 사나흘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시더랑께. 내가 병원에 가보시라고 혀도 말 안 듣더니만 쯧쯧, 불쌍혀서 어쩌끄나 잉.’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울렁댁의 몸무게에 주저앉았던 미나리들은 얼른 허리를 곧추세웠다. 바람 한 줄기가 휘파람소리를 내며 미나리꽝을 한바퀴 돌아나갔다.


 병원에 도착한 울렁댁은 숨을 쉬지 않았다. 심장도 뛰지 않았다. 이미 목숨줄 내놓은 지 한참 되었다 싶었지만, 그래도 응급실에서는 울렁댁을 소생 시켜보려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한바탕 수선을 피웠다. 울렁댁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초연한 얼굴로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오히려 눈감은 모습이 그렇게 평온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승에서의 모든 인연들과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팔십이 넘도록 눈감는 순간까지 한시도 쉬지 않았던 갈퀴 같은 손이 울렁댁의 가슴 복판에 포개졌다. 이제 그만 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 생의 가시가 촘촘히 덮였던 할미꽃은 허리가 휘도록 버거웠던 꽃잎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나는 한참 후에야 울렁댁이 일부러 숨을 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울렁댁이 하늘로 돌아간 한 달 후쯤 가슴에서 치밀러 올라오는 대로 나는‘미나리꽝’이라는 시를 썼다. 언제부턴가 그 시를 쓰던 그 순간 울렁댁이 아마 내게 빙의했으리라 믿게 되었다. 그 시를 읽을 때마다 울렁댁의 뜨거운 눈물이 내 눈을 통해서 흘러넘치므로.



미나리꽝

                맑음 전숙


팔십 노구老軀

미나리꽝에서 벗었다

말라비틀어진 삭신 훌훌 벗어 던졌다


아들놈아 딸년아

저승길 노잣돈은 당치않다


방금 내 손에 베인 미나리

북망산천 동행하니 외롭지는 않구나


무자식이 상팔자라더라

나라에서 먹여 살린다더라


나는 복도 많아

아들놈도 딸년도 넉넉히 두었구나


너희 부모 천년만년 살 줄 알고

그리 무심하였더냐

미나리꽝 품삯에 술값 목매던

영감쟁이 불쌍쿠나


아들놈아 딸년아

팔십 노구 미나리꽝에서 벗었다


미나리꽝  순직殉職으로 받은

미나리꽝 표창장,

네 어미 난생 처음 상장賞狀이다


어서 와서 사진 박고 한껏 웃어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