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옆구리들
시린 옆구리들
맑음 전숙
반도 남녘에 수십 년만의 폭설이 내렸다. 그 장관을 넋 놓고 감상하기에는 도처에 상체기가 너무 크다. 우람한 전나무 가지도 앙다물고 잘 버티더니 밤새 휘몰아친 눈폭풍에 그만 손을 놓아버렸다. 쭈욱 찢어져 내린 틈새로 송곳 같은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때 내 옆구리에도 북풍에 실려 온 차디찬 냉기가 오싹 끼쳐왔다. 이렇게 옆구리 시린 적 있었던가? 그것은 북풍의 냉기와는 또 다른 오한이었다. 정에 굶주린, 관심과 애정에서 밀려난 귀퉁이의 외로움이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왜 모든 그리워하는 것들은 서로 다른 방향만 보고 그리는 것일까? 이미 흘러가버린, 스러져버린 것들에 대한 애틋함으로 지천명知天命의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공자님이 사셨던 수천 년 전의 삶이나 첨단디지털시대의 새천년의 삶이나 하늘의 명을 깨닫는 데 똑같은 산수가 적용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지혜란 지식의 발전과는 또 다른 신의 영역인 듯하다. 아무리 뛰어난 학술적인 박사도 고려장의 유래처럼 부모님들의 생활의 지혜 영역은 뛰어넘지 못하지 않는가. 만학의 어르신들이 손자들 같은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루며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암기력은 떨어졌지만 인생경험에 의한 이해력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지천명의 나이가 되자 나는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게 되었다. 우선 눈꼬리 처진 것부터 보기 싫을 뿐 아니라 저무는 세월 속으로 슬며시 삭아 들어가는 모습이 사진 속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나므로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눈두덩이 지방질은 제 욕심만큼이나 부풀어 오르고 허리둘레는 날로 부동산투기로 넓어지는데, 그와 반대로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세상 살아가는 데 자신은 점점 없어졌다. 날개 꺾인 황조롱이처럼 자꾸만 움츠러들고 옆구리에는 솔솔 찬바람이 새어들었다. 옆구리가 시려오면서 무엇인지 모를 것들이 그리워졌다. 들꽃 한 송이도 그냥 지나칠 수 없고 해넘이에 서방정토가 벌겋게 달아오르면 머리털까지 취해서 꼬박이 빨려 들어갔다. 시도 때도 없이 울적해지며 쓸데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얼굴도 모르는 그리운 것들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찾아내보니 그 애잔한 것들이 모두 옹기종기 내 옆구리에서 떨고 있었다. 나는 이 살가운 내 살붙이들을 그동안 어디에 치워두었던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겉포장에만 신경 쓰느라, 나의 분신들이 고샅길에서 떨고 있는 줄도 몰랐다. 한길만 내다보느라, 체면치레 하느라 아깝게 흘린 세월을 어떻게 다시 주워 담을 것인가! 소녀시절의 연분홍빛 꿈은 어느 길로 되돌아가야 다시 만나볼 것인가. 남편에게서도, 자식에게서도, 체면에게서도 이미 따돌림 받았는데 그들은 벌써 저만큼 앞서가는데.......
친구들과 끼리의 신세 한탄을 하다가 우리와 동년배인 어느 여인의 일탈적인 사랑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이야기는 어쩐지 남의 말 같지 않은 게 가슴에 길게 여운이 남았다.
그녀는 아이들 키워놓고 한숨 쉬며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눈앞에 버티고 서있는 중년에 당황했다. 귀밑머리부터 희끗희끗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반백이 되었다. 무심히 보내버린 세월을 생각할수록 허전하고 쓸쓸함에 사무쳤다. 열정을 쏟았던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도 무의미해보였다. 더군다나 남편과의 사이도 소원했다. 중매로 만난 지 한 달 만에 바로 결혼하여서인지, 남편과는 수십 년 살붙이고 살았어도 신혼시절의 쑥스러움이 그늘진 언덕아래 잔설처럼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녀는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이른바 우리 중년전업주부들의 공통된 질병인 <빈 둥지 증후군>과 <갱년기 우울증>에 시달리느라 날마다 회색빛 하늘을 헤매었다. 우울증을 극복해보려고 주위의 권유로 어느 상담모임에 나갔다. 어느 날인가 그 모임에서 알게 된 한 남성과 우연처럼 길에서 마주쳤는데, 동병상련이었던 두 사람은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단풍 고운 가로수 길을 걸으며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그 남자가 낯선 남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예전에 알았던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뭐랄까, 자신과 동류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갑자기 회색빛 하늘이 파랗게 맑아지는 듯 했다.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을 정하고. 몇 번의 데이트 끝에 지리산으로 단풍구경을 갔다. 그 때 두 사람은 누가먼저랄 것 없이 손을 잡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얼핏 뺨이 스쳤다. 두 뜨거운 뺨이 닿은 순간,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그녀의 온몸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녀는 한 가닥 분홍빛이 안개 속에서 아물거리는 환상을 보았다. 그녀는 가슴이 떨려왔다.(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한동안 그녀는 첫사랑에 눈먼 소녀처럼 들뜨고 설레어서 마치 구름 위를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 남자를 생각하면 그 살빛의 부드러움이 떠올랐다. 서로의 쓸쓸함을 나누다보니 그녀의 사랑은 가을하늘빛으로 점점 깊게 물들어갔다. 자신의 마른 가슴에 산불처럼 번져오는 열화를 느낄수록 그녀는 초조해졌다. 남편은 선비 같은 남자라 어렵기만 하였는데, 그 남자는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 친구도 같고 애인도 같았다. 소슬바람에 삼천궁녀들처럼 무더기로 몸을 날리는 낙엽들을 보며, 그녀는 지는 황혼에 타오르는 불노을 같은 자신의 사랑이 한 잎 낙엽 같아 한없이 안타까웠다. 한편 꿈꾸는 듯 행복하면서도 한편 죄의식이 그녀를 괴롭혔다. 짙푸른 하늘을 뒤덮으며 갈빛으로 넘실대는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며 그녀는 웃다가 울다가 하였다. 사랑을 찾아 가정을 뛰쳐나오기에는 그녀는 너무 이성적이었다. (여기까지 듣자 우리는 이야기의 결말이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상대남자는 독신이었다나 봐, 누군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눈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한참동안 그리움과 연민이 그녀를 괴롭혔다. 유행가마다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제까지 무심코 흘려들은 가사들이 모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듯하였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씩 그 남자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자신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래도 남자가 신사였던 모양이지? 우리는 마지막 멘트를 했다.) 아쉽게 떠나보낸 사랑에 시달리느라 잠 못 드는 회한의 밤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장승처럼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설핏 잠든 남편 얼굴을 보았다. 그 순간 남편의 볼록한 뺨이 빛났다. 남편 뺨이 홀로 보름달처럼 빛나며 그녀를 유혹하였다. 그녀는 저절로 몸이 숙여져 남편 뺨에 자신의 뺨을 대어 보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남편의 체온이 살갑게 전해왔다. 갑자기 남편에 대한 애틋함으로 가슴이 젖어들었다. 그동안 남편과 다정하게 스킨쉽을 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남편 피부에 대해 그녀가 아는 것은 턱밑의 까칠한 느낌뿐이었다.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 부드러움 때문이었는데......, 그녀는 한편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무엇이었나? 따뜻한 애정표현 한 번 주고받지 못하고, 수십 년 부부라는 끈으로 맺어져 살아온 자신과 남편이 동시에 가엾게 느껴졌다. 무심한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녀는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 섬광처럼 깨달아지는 것이었다. 그 사랑이 그 남자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잔뜩 가슴에 쌓아두었던 자신의 정처 없는 그리움이, (어쩌면 그 그리움의 정체는 남편의 다정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수십 억 년 땅속에서 썩어온 기름처럼 결정체로 달구어져 있었다는 것을. 그 남자살빛의 부드러운 느낌은( 그 남자의 다정한 마음인지도 모르지만.) 건드리기만 해도 혼자 타버릴 자신의 숙성된 기름 가마에 던져진 한 알의 불씨에 불과했다는 것을.
일탈의 사랑은 해피엔딩이 아니었지만 여인의 삶은 의외의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그녀는 눈물 젖은 얼굴로 남편의 뺨에 입을 맞추고 남편 품으로 파고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남편은‘안 하던 짓 하면 빨리 죽는다.’는 농담을 하며 아내를 더욱 꼭 안아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무의식 그늘에 남아있던 남편에 대한 잔설 같은 쑥스러움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옆에 있던 보물들을 그때야 서로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들 부부가 조금만 더 일찍 서로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들 마음속의 사랑을 표현했더라면 우리 모두의 가슴 졸인 그녀의 일탈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하마터면 한 가정의 평화가 깨질 뻔하지 않았는가. 후유~ (빨리 집에 가서 평생웬수 남편에게 잘하자! 구호를 외치며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이 어떤 열매를 맺을 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었던가. 어떤 면에서는 그 집 장맛 본 사람이 말 물어낸다는 옛말처럼 아는 사람끼리 사랑을 나누기는커녕 오히려 더 흠집 내고 손가락질 할 때도 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스스럼없다고 툴툴거리고 독한 말로 상처를 주고 하물며 폭력을 쓰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살인사건의 원인 중 제일 많은 것이 존속 살해라는데 처음에는 작은 오해에서 미움이 싹트고 결국에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서로 다른 쪽을 보는 사랑은 아무리 사랑이 깊을지라도 그 열매는 한 방울의 사랑거름도 얻어먹지 못하니 말라비틀어지고 결국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쭉정이처럼 사랑에 목말랐던 그녀가 기적적으로 마지막 단꿀을 찾아낸 것에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텔레비전이라는 요물단지가 생겨나기 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여름밤이면 마당에 모깃불을 지펴놓고 평상에 누워 가족끼리 오붓하게 이야기꽃을 피웠었다. 어머니께서는 부채로 모기를 쫒아주시며 자장가처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 “옛날 한 옛날에 며느리를 몹시 괴롭히는 시어머니가 있었단다. 시어머니에게 너무 시달린 며느리는 하루는 점쟁이를 찾아가서 우리 시어머니가 어떻게 하면 빨리 돌아가시겠느냐고 물었지. 점쟁이 하는 말이 날마다 밤을 다섯 개씩 시어머니 밥그릇에 아무도 몰래 넣어드리면 백일 되는 날 죽는다고 하였단다. 옳지 되었다며 며느리는 쾌재를 부르고 날마다 시어머니에게 아주 맛있는 알밤을 꼭꼭 넣어 드렸단다. 구십구일 째 되는 날에 며느리가 다급하게 점쟁이에게 쫓아와서 하는 말이 우리 시어머니 돌아가시지 않게 해달라고 울며 사정을 하였단다. 점쟁이는 웃으면서 계속 밤을 드리면 돌아가시지 않는다고 하였대. 며느리가 지극정성으로 맛있는 밤을 드리니 시어머니도 감동하여서 며느리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게 되고 그 사랑맛을 알게 된 며느리도 이제는 시어머니 없이는 못살 것 같았던 게지.”
그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고 들었던 그 이야기가 이제는 새록새록 가슴에 들어와 별처럼 박히는 것은 내가 며느리 노릇도 해보고 이제 며느리 들일 나이가 되니 두 사람의 입장이 다 이해되는 것 때문이리라. 점쟁이의 도움 없이 미리 알아서 서로의 시린 옆구리들을 감싸주었더라면, 미움보다는 사랑이 먼저 싹텄을 텐데. 아쉬웠지만 나 자신도 항상 악마의 유혹에 먼저 넘어가면서 누구를 탓하랴.
외나무다리 건너듯 가파르게 생의 반 이상을 지나왔으면서도, 아직도 좁아터진 아량 활짝 열어젖히지 못하고 나에게 기대오는 것들을 가슴으로 보둠아 주기 보다는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슬며시 밀어내고 만다. 또 불화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항상 네 탓만 하다가 스스로 고립이라는 함정으로 빠져버릴 때도 있다. 공자님과의 수천 년 시차나 어머니와의 수십 년 시차나 사람 사는 정은 결코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 발자국이 뚜렷하게 내 체중 담아내는데, 작은 실수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비난하고 욕하다 보면 그 욕과 비난도 결국 나 자신에게로 폭설처럼 쏟아져 내려 공든 탑 다 무너지고 말텐데. 내 남편과 내 아이들에게‘붙이’라는 미명하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남들에게는 잘 보이려고 웃는 얼굴로 새살거리다가도 가까운 붙이들에게는 참지 못하고 못된 성질 다쏟아내고 만다. 합리화하자면 내 가족에게마저도 가면을 쓰고 싶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오롯이 바라건대 나를 달구고 달구어서 순하고 순하게 정화하여 미움과 질시의 감정들을 다 녹여내 버리고 나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다른 누구에게라도 진심어린 미소와 포근한 정을 나누어 줄 수 있는‘참나’로 이 생生이 다 가기 전에 거듭나고 싶은 것이다. 다시는 나 때문에 시린 옆구리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옆구리가 시리다 못해 얼얼하게 아려온다. 어머니와는 사십팔 년을 같이 살았다. 어머니 마흔에 나를 낳으시고 뒤늦게 얻은 막내딸 안쓰러우셔서 지극한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어머니께서는‘네 큰언니 친정에서 고생시켰더니 시집가서도 고생 하더라’시며 공부 외에는 아무 일도 안 시키셨다. 어머니의 사랑을 한없이 받다보니 어느새 길들여져 나는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먹었다. 결혼시키신 뒤에도 못나고 게으른 딸 미덥지 않으셔서 살림 도맡아 해주셨는데, 당신 몸 고달프신 것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외손자들까지 다 거두어주셨는데. 나는 어머니께 무얼 해드렸던가. 짜증과 응석과 한없는 욕심으로 흡혈귀처럼 어머니 마지막 진액까지 다 빨아 먹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사랑 만 분의 일이라도 깨달았다면 어머니께 그런 불효 안 했을 텐데. 어머니는 그림자처럼 항상 내 곁에 계시려니 하고 효孝는 뒷전으로만 미루어 두었었다. 얘들 큰 다음에, 조금만 더 여유 있어지면 그때 잘해드려야지....... 미루고 미루다가 어머니는 속절없이 떠나버리셨다. 딸에 대한 헌신적 사랑으로 온갖 바라지 해주시던 어머니 생각만 하면 오뉴월에도, 꽁꽁 얼어붙은 고드름에 찔린 것처럼 옆구리가 시리게 아려오는 것이다.
졸시 ‘만만한 엄마’로 티끌만큼이라도 어머니께 용서를 구하고 싶다.
만만한 어머니
맑음 전숙
그리운 어머니,
당신은 제 평생 그리움이십니다
아무리 마셔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젖줄이십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젖줄이 이미 다 말라붙어
평가슴이 된 지도 모르고
사막으로 변해버린 어머니 모래알 가슴에서
젖감질난 듯 끝없는 갈증을 달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타박도 않으시고
마지막 한 방울 진액까지 불끈 짜주셨습니다
하여도, 어머니
저는 세상에서 어머니가 제일 만만하였습니다
일 분만 지나면
후회할 말과 행동들을 참아내지 못하고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고
어머니 애간장을 후벼 팠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시므로
못되게 굴어도 내게 손가락질 안 하실 테니까
고발도 안 하시고, 미워하지도 않으실 테니까
어머니가 편하고 만만하였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제 자식들이 못되게 굴 때마다
업보인가 하여
분꽃 씨앗 같은 어머니 속내
풀어헤치고 흘러오는 강물에
회한의 눈물을 쏟으며
속수무책으로
저도 만만한 엄마가 되어갑니다
어머니, 이 밤 못 견디게 어머니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