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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

전숙 2005. 12. 12. 19:48

    <오래된 나무> - 맑음 전숙- 자본주의 바다에는 자본만이 출렁인다는데 살아가는 하늘마다 떠오르는 해도 다르고 내리는 빗줄기도 다르다는데 왕후장상의 씨는 같아도 떨어지는 밭에 따라 쳐다보는 하늘도 바뀐다는데 자본이 날뛰기 훨씬 전부터 뿌리내리고 어린 생명들 지켜온 손익계산은 태초부터 먹통인 오래된 나무를 마주하면 괜스레 눈물부터 앞선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가가 가슴 가득 끌어안아보면 등 뒤로 더욱 포근히 껴안아주는 앙상한 뼈마디 눈을 감고 슬며시 기대어보면 당신 힘으로 다스리기에는 너무 오래된 살붙이들 오줌 지린 냄새, 매캐한 묵은 땟국물 고랑켜 사이로 알록달록 배어있고 한 걸음 뗄 때마다 우수수 살비늘 쏟아져도 축 처진 젖가슴 만질수록 몽니 없는 부드러움 살갑고 합죽한 웃음 너머 삭아버린 구멍 난 이빨들 엄숙한데 생生의 밭 한고랑 맬 때마다 아래턱 쩍쩍 벌어지는 악물었던 관절 열리는 고통 산후수발 한 번 받지 못해 땅바닥까지 기어 나온 아기집 닳아 뭉개진 팔자 반듯한 놈 하나 없는 사리 서걱거리는 발가락 매듭까지 뻥 뚫린 애간장 깊숙이 주먹 넣어보면 껍질만 바스락거리는 쓸개주머니 안팎으로 엉겨드는 개미떼에게 진작에 저녁공양으로 넘겨준 살집 한 재산 남은 것은 고향의 쓰러진 집 한 채 만지기만해도 바들거리는 오래된 나무는 혹여 삭풍에, 메마른 가슴에 파고든 까치집 흔들리는지 목하 노심초사 하시며 눈물로 백일기도 중이시다 20051212